시대 인식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하여

by 장혁

인간이 자아를 가지면서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고, 여기서 시작된 것이 철학이라면 결국 철학은 그들이 사는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은 항상 동일하지 않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인간은 존재했지만 그 인간들이 느끼는 세상은 달라졌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자연이라는 존재도 인간이 활동 영역을 넓혀 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스스로 달라지는 것뿐 아니라 그들의 주위 환경까지 바꿔가며 인간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했고, 그 변화를 느끼는 인간들은 세계를 시대로 나누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살아간다. 철학이 시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학문이라면 과거의 철학은 과거의 시대에 어울리는 생각이다. 그것이 태어난 시대에 그 철학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인간의 자아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에 대한 해결책을 어느 정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시대를 벗어나는 순간 그 철학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분명히 철학이라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점도 없지 않지만 철학이 보편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철학은 사는 인간은 유한하다. 철학을 하는 인간 자체가 유한하기 때문에 보편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확인할 수 없는 이상이 된다. 철학의 보편성은 인간 존재인 철학자의 한계로 인해 시대의 보편성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안정적인 국가 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제각기 권력을 잡은 수많은 귀족들이 싸움을 일삼던 시기에는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옹호할 수 있는 철학이 세상에 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에 규칙과 체계가 갖춰진 상태에서는 그 규칙을 벗어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탈규칙적인 철학이 세상에 새로운 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시기에는 신이 모든 것의 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시대를 풍미했던 모든 철학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낡은 사고방식, 당연한 사고방식이 된다.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전 시대를 살아간 철학자의 생각은 그 사람의 위대함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시대 자체가 이전 시대의 철학자가 보여준 가치관 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철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특별한 생각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의 생각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철학은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한 가지 단어가 복잡성인 만큼 우리 시대를 정의한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대를 정의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 우리 시대에 대한 인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한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뚜렷한 방향성이랄 것이 없다. 마치 뿌리에서 시작한 나무가 위를 향해 무럭무럭 솟구치다가 어느 정도 시기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나가듯 지금의 우리 시대는 수많은 방향으로 가치를 뻗고 있다. 복잡성, 다양성, 이전 시대와 다른 우리 시대의 이러한 가치는 결국 하나의 정답이 없는 시대를 상징한다. 우리 시대는 정답, 즉 정해진 답이 없는 시대이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부정적인 결론으로 인식된다. 누군가 당신에게 '우리 시대는 정답이 없는 시대이다'라고 말한다면 아마 '아니 그건 당신이 정답을 찾지 못했을 뿐이야'라는 생각이 들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에게 정답이랍시고 불확실한 것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에게 정답이란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인간이 가진 이러한 본능적인 인식을 부정한다. 우리는 확실성의 시대를 넘어 불확실성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아니, 이미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꽤 많이 이행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이행했지만, 우리가 가진 인식은 아직 불확실성의 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불확실한 답이 눈앞에 제시되었을 때 우리에게 드는 생각이 여전히 불편하다면 우리는 아직 불확실성의 시대에 걸맞은 인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확실성의 시대는 확실한 한 가지 답이 있는 시대이다. 답이 있다면 그 외의 것은 오답이다. 그래서 확실성의 시대는 이분법의 시대가 된다. 내가 답이라면 상대는 오답이다. 상대가 맞다면 내가 틀렸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개념은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는 정답, 하나는 오답이 된다. 선과 악, 성장과 분배, 좌와 우, 모든 가치는 자신의 짝을 가지고 경쟁한다. 그뿐 아니라 이분법적으로 나뉜 모든 가치는 서로서로 결합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성장을 선과 연결시키고 분배를 악과 연결시킨다. 반대로 또 누군가는 성장을 악과 연결시키고 분배를 선과 연결시킨다. 애초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수많은 가치는 양쪽으로 나뉘어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한 덩어리를 이루며 구분된다. 근대 이래로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왔다. 인간 이성은 선이 되었으며, 이성과 하나의 세력을 구축한 많은 가치들은 하나로 구분되어 그들만의 이데아를 구축했다.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내려온 서양 철학은 확실성의 시대를 지배했고, 근대 이래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서양의 확실성은 모든 세계를 확실성의 시대로 편입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은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불확실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인간의 본능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한몫을 했다.


확실성의 시대는 근대 시대의 수많은 철학을 낳았으며, 산업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확실성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변화, 정보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정보화라고 부를 수도 있고 디지털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확실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디지털이라는 개념은 0과 1로 표현되는 것들이 뭉쳐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 시대에는 결과 자체가 0과 1로 표현될 수 있는 시대였다. 0과 1로 표현되는 결과는 정답이 있는 확실성의 시대와 어울렸다. 0과 1로 나뉘는 결과에서 한쪽이 정답, 다른 한쪽은 오답이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은 아이러니하게도 0과 1이 만들어내지만 그 결과 자체가 0과 1로 드러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0이 몇 개 있고, 1은 몇 개 있는지와 같은 '양'이 결과를 표현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결과는' 0 혹은 1'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결과는 '10개 중 0이 4개이고 1이 6개이다'와 같은 구체적인 양을 표현한다. 이 결과는 40%는 0이며 60%는 1이라는 의미와 같고 그것은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아직 확실성의 시대에 어울리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결과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받아들일 수가 없다. 40%와 60%로 나뉘었다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이 정답인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확실한 1과 1의 가능성이 과반을 넘는 상태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의 모든 결과는 이렇게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불확실한 상태 자체를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아직 불확실성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에 남아 있지만 세상은 이미 불확실성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디지털 기술, 통계, 이들이 결합한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은 모두 불확실성을 그 결과로 가지는 기술이다. 물론 디지털 기술의 원자재가 되는 데이터의 개수가 늘어나고 균질해질수록 불확실성은 감소하고 이러한 불확실성의 감소를 통계나 머신러닝 기술이 뒷받침하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지에 대한 지식이 이들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은 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 낸 기술은 이 세상을 불확실성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우리의 세계 인식은 아직 불확실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체계는 여전히 확실성의 세계에 남아 있다. 우리는 아직 세계를 두 가지 가치관으로 나눠 바라보고 있고, 이분법적인 가치관 하에서 하나의 가치를 정답, 다른 하나의 가치를 오답으로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는 성장이라고 하면 무조건적인 정답으로 인식하고, 또 누군가는 분배를 무조건적인 정답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더 이상 무조건적인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 정치, 경제, 법 그 외의 인간 사고방식이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뤄야 할 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영역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논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학문인 철학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해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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