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인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에 대하여
철학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먹고, 마시고, 자면서 본능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켜간다. 그렇게 본능적인 삶을 평생 살아갈 수 있었다면 인간에게는 고민도 없었을 것이고, 궁금증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도 없었을 것이다. 본능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인간은 어느 순간 지적인 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자아가 생겼다. 더 이상 인간은 먹고, 마시고, 자는 것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왜 존재하고, 이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와 같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아를 갖기 시작한 인간에게 본능적인 욕구는 더 이상 그의 삶 자체를 충분히 설명해줄 수 없게 되었다. 삶의 이유는 그것을 생각하기 이전에는 존재할 필요가 없었고, 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삶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 순간 이미 그것은 마치 있었다가 없어진 것과 같이 인간에게 커다란 공허함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없었던 삶의 이유를 그것을 지각한 순간 마치 잃어버린 듯하게 느낀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태어난 이유,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자아를 가진 인간은 끝없는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눈을 뜬 인간의 자아가 찾은 첫 번째 근거는 신이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이 세계와 우리의 존재는 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신이 정해주었다. 이 땅과 우리를 만든 신의 의지에 반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되었다. 열심히 살아가고, 천벌을 받을 일을 하지 않고, 신을 믿고 기도하는 삶은 인간에게 삶의 이유를 주었다.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생과 사는 모두 신의 뜻이었으며,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도 신의 뜻,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홍수가 나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가더라도 괜찮았다. 그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에. 물론 그때도 이 세상과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했던, 철학을 하려 했던 사람들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철학자도 있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너머에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해서 우리는 그 세계의 그림자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철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물론 그러하듯 끝에 가서는 결국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물은 어디서 왔고, 이상적인 세계는 누가 만든 것인가, 그렇게 모든 것은 신에게 귀결되었다.
그렇게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던 시기를 지나 인간은 다시 회의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 존재였지만 더 이상 신의 세계를 그 자체로 믿고만 있지 않았다. 신이 존재하더라도 신이 만든 이 세계를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이성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은 이제 인간이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을 직접 해결하기 시작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어떤 생각도 결국 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 이성은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 갔다.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할 수 있는 세계가 점점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끝까지 이어갈 수는 없더라도 하나의 생각에서 출발해서 세상을 설명하고, 자신이 설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 이성은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회의하고 또 고민하며 스스로의 궁금증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인간 이성은 그렇게 거침없이 신의 영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을 시험했고, 성공했다. 이제 이성을 가진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연 속의 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거칠 것이 없었던 인간은 결국 넘어졌다. 거대한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게 만들었고, 그 높은 위상을 가지던 인간 이성은 그것이 만들어 낸 무기로 인간을 효율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신의 옆자리에서 이 세상을 설명하고 인간에게 권위를 부여하던 이성은 그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이제 이 세상과 그의 삶을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신의 지위도 흔들렸고, 그 자리를 대체하던 인간의 이성도 답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유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아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 과거의 철학이 무너졌다고 해도 철학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성의 시대를 지나 그 실패를 맛본 인간은 이성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성을 너무 믿어서, 이성에게 너무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앞만 보고 달려와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성이라는 정답지에 가려진 수많은 선택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성과 대립하던 가치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감성이 제 위치를 찾기 시작했고, 질서에 가려져 있던 무질서도 존중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이 범람해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 시대의 철학이 해결했던 문제를 새로운 시대의 철학은 해결하지 못했다. 이전 시대의 철학은, 물론 그 철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졌지만 그 당시에는 세상을 설명하는데 혼란을 주지 않았다. 신의 시대에 신은 모든 일의 정답이었고, 이성의 시대에 이성은 모든 문제의 정답이었다. 하지만 신도, 이성도 무너진 시대에 무수히 많은 가치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인정받지만 정답이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철학을 가지고, 자신들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와 같은 철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궁금증은 남아 있지만 속 시원한 정답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현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한 번에 설명해줄 만한 정답지도 없는 상태에서, 이제는 단 하루를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오늘의 답은 내일의 오답이 된다. 이전에 내가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1과 0으로 표현되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상은 과학으로, 또 숫자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이 이 세상을 모두 설명해주려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숫자로 표현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우리는 그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숫자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 맞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도, 이성도 잃어버린 우리에게, 숫자로 도배되어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한 시대가 찾아왔다.
인간이 궁금증을 버릴 수 없는 존재라면, 우리는 철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