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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Feb 26. 2022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 뒤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밀레니얼 세대는 불만이 많고, 그에 비해 노력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또 미래를 대비할 생각은 없고 오늘의 소비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 혹은 '요즘 애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생각은 대체로 이렇다. 그러나 이유 없는 결과는 없듯이 요즘 애들이 요즘 애들 다운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정말 불이 붙은 것처럼 번아웃을 겪고, 데고 타버리다가 그들 세대를 특징짓는 생각과 행동을 갖게 된 것이다. 책 '요즘 애들'은 밀레니얼 세대가 겪는 번아웃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워낙 다양하고 많은 사례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자세히 읽고 기억하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지만, 뭐 요지는 이렇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들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일궈놓은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했던 방식으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같은 방식으로는 같은 결과를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 방식에 자신을 갈아 넣던 밀레니얼 세대는 실망스러운 결과에 자신의 탓을 하기도 하다가 또 지치고 결국 요즘 애들에 이르게 되었다'


요지는 이게 전부다. 그 외에는 이러한 이유로 요즘 애들이 되어버린 그들의 특징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 문제는 그들 세대의 잘못이 아니고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세상이 달라져서 그런 것이니 자책하지 말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라고 하며 마친다.


그런데, 세상은 왜 달라졌을까?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혹은 한국으로 치면 6.25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된다. 부머 세대는 이때 태어났으며 이 무렵 전 세계는 하나의 신앙을 갖게 된다.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전후에 폐허가 된 세계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지만 모든 시스템이 장점과 함께 단점을 갖듯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하나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모든 것의 상품화'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하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품으로 다뤄진다. 심지어 사람까지도.


  '다른 시스템 하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냐'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세상 모든 일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딱 잘려 있지 않다. 정도의 문제이며 자본주의가 인간적인 것까지 상품화한다는 면에서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하다는 면은 부정할 수 없다.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장경제 하에서의 효율 추구는 인간의 자기 소외를 가속화시킨다. 과거에 구두를 만들던 장인은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낸 구두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경제는 분업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구두 공장 직원은 수많은 구두의 한 부분만 담당하게 되면서 어떤 구두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단지 완성된 수많은 구두라는 상품만 남을 뿐 개인은 뒤로 소외된다.


  아무튼 이러한 '상품화'가 자본주의의 특징이고 단점 중 하나인데, 문제는 여기에 경제 성장 둔화가 겹쳐질 때 드러난다. 모든 것의 상품화는 우리 자신도 교환 대상인 상품으로 평가되게 만드는데 나라는 상품의 평가 가치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의 가치, '가격'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상품의 세계에서 나라는 인적 '자산'의 가치는 나를 소유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 경제적 효익'의 크기로 평가되는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가 버는 돈이 나의 가치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내가 버는 돈도 나날이 커진다. 그러니 내가 상품으로 평가된다고 해도 그다지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가치도 나날이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기쁨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상품화된 세상에서 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영원히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시장에서 바라보는 상품으로써의 내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상품 시장에서 나는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하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희미해지는 듯하다. 앞선 세대가 느끼는 번아웃의 감정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호황기에 일을 시작해서 자본주의가 가진 상품화라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처럼 느끼며 나의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소득이 감소하고 은퇴할 때가 다가오면 나라는 상품의 빛은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다음 선택은 '내 것의 상품가치를 키우는 일'이 된다. 바로 자녀 세대의 상품으로써의 성공이다. 그렇게 자녀 세대는 시작부터 상품이 된다. 앞선 세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받아들였던 상품으로써의 나, 그리고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한 삶의 방식이 자녀 세대에서 재현된다.


  이때 문제는 경제라는 것이 언제고 호황기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전후에는 재건을 위해 생산해야 할 것도 많고 전쟁을 겪으면서 개발된 기술이 사회에 적용되면서 자연스럽게 고도성장, 호황을 누릴 수 있다. 내려앉고 나면 튀어 오르는 것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까지도 고도성장기는 아니어도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쓴 표현과 같이 그 시기에는 사회 전체에 '틈'이 많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출하지 않아도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틈을 메워 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 동력도 꺼지고 사회 전체에 남아 있던 틈도 다 메워진 때부터 경제는 정점을 지나 하락하기 시작한다. 


  상품으로써의 '나'라는 생각과 정점을 지나 하락하던 경제가 교차하던 시기, 밀레니얼 세대는 그때 태어났다.


  그 뒤는 뻔하다.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는 자녀가 좋은 상품이 되도록 갈고닦는다. 사회가 좋은 가격을 매기는 능력이라면 뭐든 갖출 수 있도록 학원도 보내고, 캠프도 보내고, 책도 읽게 한다. 물론 사회가 좋은 가격을 매겨 주지 않는 능력이라면 그럴 이유는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연스럽게 '상품으로써의 나'개념을 받아들이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상품 시장에서 가격의 하락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 실패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상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나의 가격이 낮다면 그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 세대는 그들의 가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불황기에는 노력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요즘 애들'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그것은 '필패하도록 설계된 전투'였다.


  가장 큰 문제는 상품으로써의 나라는 사고방식을 밀레니얼 세대가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그렇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교과 내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다. 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 실험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시험을 봐서 성적으로 나의 가치를 평가받고, 더 좋은 성적을 낼수록 더 좋은 대우를 받던 기억은 우리 마음속에 남게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밀레니얼 세대는 그들을 고통에 빠트린 '상품으로써의 나'를 가장 굳건하게 믿는 세대가 된다. 그러니 답도 그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더 노력하고, 더 배우고, 더 많은 스펙을 쌓아서 재평가받으려 한다. 물론 여지없이 필패다.


  현상에는 원인이 있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풀어야 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이 세상에 나쁜 세대는 없다. 요즘 애들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 어른이라면 애들을 볼 게 아니라 애들을 뒤에서 떠밀고 있는 시스템을 봐야 한다. 물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시스템은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효율이 증대되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누릴 수 있다. 먹을 것도 많아지고 손 하나 까딱하면 수많은 일을 힘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가졌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선한 것이고 건드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시스템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있던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선의 여지가 있다.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고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포기한 채 살아가야 하겠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의 상품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고쳐볼 수 있다. 시험에 나오지 않고,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효율적이지는 않더라도 사회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우리가 합의한 선에서 그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혹은 시장이 모든 것에 교환을 통한 가격을 매기려 할 때 우리 스스로 시장이 침범할 수 없는 선을 그을 수도 있다.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을지 몰라도 돈으로 살 수 있게 했을 때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거래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지만 그게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기에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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