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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an 29. 2022

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개 신문 기사를 통해 법을 접한다. 물론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외의 사람들도 종종 법적인 일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보고 듣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기사를 통해 법을 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는 자주 의문이 들곤 했었다. '왜 저런 판결이 나왔지?', '고작 저 정도밖에 처벌하지 않는다고?'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또 기사를 보다 보면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의문이 떠오르는 듯하다. 몇몇 사람들은 보다 과격하게 그 의문을 표현하기도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문제다', '자기 자신한테 일어난 일이라면 저렇게는 안 할 텐데...'와 같은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에게 멀리서 보는 법은 그리 와닿는 개념이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법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멀리 있다. 보통 사람들은 헌법을 제대로 읽어 볼 기회도, 법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역사와 절차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배워 볼 기회도 흔치 않다.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 머리로는 이해할 기회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의 의문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인 문유석 작가는 법조인이었고, 그러면서도 책과 대본을 쓰는 대중적인 작가였다. 그래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법에 대해 가지는 의문을 이해하고, 법을 바라보는 법조인과 일반인 사이의 간극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듯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의문, 그리고 법이 각자의 신념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며 법이란 무엇이고, 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법은 무엇인가, 작가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최소한의 선의'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법학자가 말했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점이다. 도덕이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선의는 내가 타인을 위해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그 규칙을 지키는 이유는 타인을 위해서가 된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품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타인에게 베풀어 줘야 하는 최소한의 선의, 그게 구현된 것이 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깐, 다시 말하면 법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한 '약속'이라는 뜻이다.


  법이 사람들 간의 약속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가지는 의문을 꽤나 해소해준다. 대개 사람들은 법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완전할 것 같은 체계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법이, 그리고 법조인이 갖는 사회적 위치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단순히 법이 죄를 지은 사람들을 처벌하기 때문에 그러한 위엄을 가지기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 있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법도 자연의 산물은 아니다. 인간 사회가 생존을 이루기 위한 집단에서 시작하여 문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위해 만들어 낸 규칙이다. 계급 사회의 문제점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약속하게 했고, 절대군주제의 폐해는 자유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그리고 잔혹한 전쟁, 그 안에서 벌어진 참상은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은 새로운 시민사회의 근간이 되는 약속, '헌법'에 쓰이게 되었다. 세상은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원화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자잘한 약속들이 늘어나다 보면 그 약속들이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약속을 가지고 주장할 때를 대비해서 약속들 간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헌법은 그 위계질서의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깐 우리가 맺은 모든 약속들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런 헌법조차도 사람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헌법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은 아마 변하지 않겠지만, 그 가치들 사이의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초에 유럽에서 헌법의 기초가 마련될 때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더 높은 계층이나 왕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가진 것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다른 문제가 될 것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자유'의 가치를 약속했다. 그 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우리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약속하는 이유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물론 논란이 분분한 과도기적 시기에 있지만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인공지능과 같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평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대립하고 있지만 어떤 가치를 두고 더 많이 다투게 되었다는 것은 그것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헌법조차도 완전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다른 하위 법과 비교해서 더 중요하고 안정적이긴 해도 언젠가 인간 사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또 다른 가치를 약속한다면, 혹은 기존에 약속했던 가치의 중요성이 줄어든다면 달라질 수 있다. 헌법 정신의 끝에 있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도 인간들의 약속이지, 자연에 쓰여 있지는 않다.


  법이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법을 만들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약속은 바꾸기 어렵고, 또 한 번 약속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기 때문에 하나의 법이 가진 목적뿐 아니라, 그 법을 시행하면서 나타나는 파급력, 그리고 부작용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자유를 인정하되, 불가피한 상황에는 공공선을 위해 자유를 제한할 수 있게 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으로 제약하는 방법만 인정한다. 누군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으로 하여금 그에게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지켜주게 한다. 사형 제도가 필요한지는 그것을 시행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부작용보다 큰 지, 혹은 우리 사회가 사형 제도가 있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법은 자신이 인간을 사이의 약속으로서 가지는 무게 때문에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이 주고, 뺏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최소한으로 줄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법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한 듯하다. 우리의 감정은 처음에는 강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그러들게 되어 있다. 법은 감정적인 행동이 실수로 이어졌을 때의 문제를 더 두려워한다. 그러니 더 신중하게 되고, 감정과는 멀리 떨어진다. 하지만 법은 이성적이고 인간은 감성적이라고 해서 법이 항상 옳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도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법에 대해 느끼는 감정적 괴리를 법은 더욱 고민해야 한다. 사회는 바뀌기 때문에 법도 필요하다면 바뀌어야 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변함없는 약속이라는 건 쉽지 않은 말이다.


  법이 약속이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우리는 법에만 의지할 수 없다. 그것을 만들고 지켜가는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법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고민해야 한다. 법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법이 가진 딱딱함, 단점만 부각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물론 법에 대해 고민할 때는 그 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야 하고, 원칙을 벗어나면 안 된다.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가치를 미리 정해놓고 법을 이에 맞춰 인용한다면 논리적인 것처럼 보여도 우기는 것과 다름없다. 자유는 헌법적 가치가 맞지만 국가는 공공복리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다. 법은 나름의 역사와 논리를 바탕으로 짜여 있는데 그중 일부만을 가지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요즘 영화의 악당에는 이런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확실한 악보다는 그의 주장을 듣다 보면 선과 악이 모호하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타노스는 증가하는 인구, 감소하는 자원 상태를 볼 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절반이 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절반이 사라지게 할 때 나름 평등한 방법을 택한다. 인종, 종교, 성별, 지역, 정체성 등 어떤 것에도 무관하게 사라질 사람을 선택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확률 위에 올려둔다. 그에게는 이유가 있고, 공평한 방법을 택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원칙이 중요하다. 공공의 복지도 중요하고 평등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우리 사회, 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을 버리는 한 그 아래 어떤 가치를 지켜낸다 하더라도 옳지 못한 일이다.


  법이 약속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법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약속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이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실현하고, 또 개선해나가야 하는 것이 약속을 하는 사람들의 과제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우리의 약속을 어떻게 바꿔 가게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약속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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