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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an 02. 2022

채사장, 소마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대서사

  소마는 중세 유럽의 가톨릭 문명과 그들이 이교도라고 불렀던 동방 문명과의 충돌을 배경으로 주인공 소마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는 소설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서 출발해 여러 인문 교양서를 성공적으로 집필한 작가 '채사장의'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인문학 책을 쓰는 동안에도 항상 뚜렷한 관심사와 질문을 보여왔다. 그가 교양서를 통해 언듯 내비쳤던 질문, 자아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이 소설은 주인공 소마의 삶을 통해 정면으로 느끼게 해 준다.


  소설은 소마의 어린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일생을 그린다. 작은 마을 안에서 그들의 신을 섬기는 따뜻한 부모님과 함께 신비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던 아이는 이름 모를 서양 세력에 의해 부족도, 가족도 모두 잃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남은 아이는 그의 세상을 짓밟고 불태워버린 사람들의 손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아이는 분명히 그들과 달랐기에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또 그림자 같은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다르다는 것은 결국 아이를 그들의 품에서도 떠나가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아이는 기사가 되고, 청년이 되어 진정한 성장을 이룬다.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소마는 성장했다.


  성장한 소마에게 시련은 더 이상 고통만은 아니었다. 시련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사람에 대해, 사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련은 그냥 지나가는 고통이 아니었다. 시련을 함께하고 덜어주는 동료를 만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소마는 깨어난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달으며 자신의 세상에 의미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동료와도 엇갈리며 소마가 인간적인 삶으로 깨어나는 일은 그렇게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가 기사의 신분으로 처음 나간 전쟁에서 소마는 다시 한번 깨어나게 된다. 눈앞의 참혹한 장면은 그를 깨어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시련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이 그의 삶에 있어서 좋은 일이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제는 복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긴 세월을 전쟁과 죽음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소마는 다시 자신이 태어난 세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웠지만, 그만큼 고통을 준 그들의 세력을 정복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황제가 된다.

소마는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모든 의미를 잃었다. 그의 삶에 부여된 의미는 복수와 정복이었는데, 그게 끝이 난 뒤에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사치와 향략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마는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죽어가며 다시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소마는 끝이 난다.


  소마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장대한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생각해볼 만한 요소가 많은 소설이다. 소마의 세계는 어떠했나. 그의 세계는 그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할 때마다 변화했다. 어린 시절의 소마에게 세계는 신비로움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짓밟힌 이후 그의 세상은 닫혔다. 까만 어둠 속에서 그에게는 세계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그의 세계에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화도, 소통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랬던 그의 세계는 그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며 소마는 자신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년기 이후로 닫혀버린 그의 세계는 그의 내면세계와 함께 깨어났다.


  이제 새로운 세상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따뜻하고, 지키고 싶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그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그 세상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며 다시 한번 무너지게 된다. 그에게 세상은 다시 의미를 부여할 것이 없는 곳이 된다. 그때 한 번 의미가 들어섰던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복수라는 의미다. 이제 소마에게 세계는 복수가 되었다. 복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마는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의미가 유한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의 세상도 유한했다. 그 복수를 마친 뒤에 그의 세상은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무한한 의미와 무한한 세계를 얻은 순간은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순간에 그는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되었다. 존재하는 그 자신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다른 사람도, 복수도 더 이상 목적이 되지 않고 그 자체가 세계가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의 삶은 금방 끝이 났지만, 그에게 무한한 세계가 찾아온 순간은 그때가 아니었을까.


  무수히 많은 의미가 교차하는 오늘날, 당신의 세계는 당신의 의식이 바라보는 대로 결정된다. 당신이 부여하는 의미가 세계가 된다. 유한한 세상을 살아갈지 무한한 세상을 살아갈지는 당신이 세상에 부여하는 의미에 달려 있다. 그러니 당신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가. 소설 소마가 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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