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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Nov 21. 2021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유년 시절의 그리움,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에세이는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쓰는 글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 번쯤 일기를 써 본 적이 있다면 자신의 일기에 녹아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짙은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매일같이 글을 써 오던 소설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 또한 작가의 삶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생각과 성격이 등장인물이나 대화 속에 언듯언듯 드러납니다만, 에세이는 언듯 드러나던 작가 자신이 전면에 드러나는 글인 것이지요. 박완서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또한 소설가 박완서의 생각이 일상이라는 소재 안에 녹아들어 짙게 드러나는 글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 한국전쟁,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급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격동의 시기를 살아 간 작가인만큼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그의 에세이에 녹아 있습니다.


물론 짤막한 이야기가 가득가득 들어 있는 에세이인 만큼 하나의 이야기로 이 책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짙게 배어나는 감정이라면 그리움인 듯합니다. 유년시절을 일제강점기로 보내고, 푸르른 젊은 시절은 6.25 전쟁의 상흔과 함께 보낸 그에게 왜 그리움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감정이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정확하게는 그 자신만이 알겠지만, 아마 그에게는 그 시절이 책 제목에 있는 진실과 가장 가까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격동의 시기를 지난 오늘날에는 물론 그의 유년시절과 같은 궁핍함도 없고,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별을 해야 하는 일도 없지만 그러한 안정적인 삶에서 오히려 작가는 진실을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전처럼 끈끈한 정이 보이지 않고, 한창 순수할 시기인 어린아이들이 순수함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며 작가는 서글픔,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어린 손주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는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그리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유년 시절, 시골의 풍경, 옛날 집, 아이들을 보며 그 시절,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는 글이 가득합니다.


책의 제목은 에세이 중 하나의 글에서 드러납니다. 작가로서 박완서의 마음가짐이기도 하지요.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항상 진실을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 그의 소설과 에세이에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어쩌면 얻고 싶은 것을 이루고, 성공하고, 발전한 오늘보다 가진 것은 없더라도 집 밖의 풍경이 소중하고, 사람과 사람이 마음으로 부대끼던 그 시절에 더 진실이 가득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나이가 들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도, 진실을 멀리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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