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Nov 20. 2021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대의 간극에 대해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은 그가 살아온 시대가 겪은 혼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흔치 않은 지식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시점을 소설 속에 그대로 담고 있기도 합니다. 소설 '그 남자네 집'은 이러한 박완서 소설만의 시대 묘사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으면서도,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 시대 속에 살아가던 사람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놓치지 않은 작품입니다. 6.25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또 그렇게 현실적이면서도 마음의 문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나와 그 남자인 '현보' 사이의 애틋하고도 정신적인 관계,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남편 '민호'와의 안정적이고도 현실적인 결혼, 이 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편답게 결혼 생활은 그리 풍족하지는 않아도 어렵지는 않았지만 유별난 시집살이는 주인공을 지치게도 만들고 권태로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권태로움이 이어지던 어느 날, 우연히 현보의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그 소식만으로도 권태로움을 잊게 됩니다. 마치 오래된 첫사랑을 다시 떠올린 것 같은 떨림과 애틋함이 살아납니다. 자신이 결혼해서 떠난 뒤 현보가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현보를 만나게 되지요. 타의라면 그의 누나가 힘들어하는 그를 한 번 만나서 이야기만 해달라는 것 때문이겠고, 자의라면 자신의 권태로움을 탈출하고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궁금증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그리고 결혼을 한 상황에서도 그를 만났던 이유는 아마 후자의 영향이 컸겠지요. 아무튼 그들은 만났습니다. 주인공이 장을 보러 시장에 갔을 때 동행하며 장을 보기도 하고, 간식을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짬을 내 종종 만나던 중 주인공은 현보와 여행을 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권태로움이 커질수록 현보와의 관계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더욱 커진 것이죠. 그리고 여행 당일 아침, 현보는 출발 장소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자 서서 그를 기다리면서 주인공은 상심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결혼을 한 자신의 행동에도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을 앓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안정적이고도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되지요. 그러던 어느 날 현보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됩니다. 여행을 가기로 한 그날 쓰러져 병원에 가게 되었고, 뇌 속에 벌레가 들끓고 있었다는 것이죠. 6.25 전쟁의 상흔이 그에게 남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그 남자와 주인공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애틋하게 저물어 갑니다. 더 이상은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만들어진 것이죠.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이어나가고, 현보는 현보 나름대로 살아갑니다. 이제는 현보도 자신의 가정을 꾸리게 되지요. 그들의 첫사랑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끝이 납니다.


물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한 결혼이더라도 이미 결혼을 한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난다는 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 내에서도 주인공은 이러한 도덕적 고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러한 도덕적 관점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바람대로 이뤄갈 수 없었던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기에 남게 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겠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람과 시대 사이의 관계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던 때, 그 마음이 남아있던 자리에 대해 쓴 이야기가 바로 '그 남자네 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동일, 믿는 인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