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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Nov 14. 2021

한동일, 믿는 인간에 대하여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누군가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고, 누군가의 믿음은 그 혼란스러움에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었던 시기에 믿음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가족, 내 이웃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반면 어떤 전쟁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고 그 끝에서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왜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해 인간의 상식을 모두 부숴버리던 시기에 누군가는 신을 더욱 믿고 의지했지만, 또 누군가는 누구보다 신에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성직자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신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혼란은 그 자체로 믿음을 키우기도 하고,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거대한 혼란을 맞이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믿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라틴어 수업으로 알려진 한동일 작가의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라틴어 수업에서 그가 라틴어를 우리 삶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던 것처럼, 믿음과 우리 삶의 의미를 또 한 번 자연스럽게 연결 지어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상황은 믿는 인간뿐 아니라 믿지 않는 인간에게도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믿는 사람은 수많은 가치가 섞여 뒤죽박죽이 된 사회에서 나의 믿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눈앞의 현실은 나와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갇혀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상황을 보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재난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을 믿고, 선한 것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믿음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믿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커집니다. 오랫동안 신을 믿어 온 저자에게도 오늘날의 상황은 마냥 편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여러 구절과, 경험을 통해 믿는다는 것에 대해, 또 오늘날 믿음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꽤 많은 이야기에서 저자는 믿음이란 결국 인간이 행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신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로, 인간이 원해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는 인간이 유한하기에 영원한 존재와 소통하기를 바라 왔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동시에 자아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유한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존재, 그래서 인간은 불안합니다. 불완전하기에 불안한 존재인 것이죠. 그리고 불안한 인간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인간의 믿음은 만들어졌습니다


완전하지 않아서 믿음이 생겼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없을 때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기도하지 않는 세상이 될 때, 그때야말로 인간 세상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믿는 존재인 인간에게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믿음이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이렇게도 이야기됩니다.

'어느 시대든 인간은 특별히 거룩하지도, 그렇다고 속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성에 대한 호기심 등과 같은 본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에서 불쑥 솟구치는 속된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능과도 같은 이러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특별한 점이기도 하지만 그 특별한 사람들도 종종 이러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순간 모든 가치를 잃고 전락하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가진 모순적인 속성이 믿음을 만들었다면, 자신들이 만들어 낸 믿음에 대해 인간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믿음이란 결국 인간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이 책에서는 믿는 인간에게 마치 자신의 믿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믿는 일이 인간이 하는 것인 만큼, 그 믿음을 어디로 이끌어갈 것인지도 인간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불안, 모순적인 성격을 믿음은 잊게 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잊게 해 줄 뿐이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던 불안과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모순을 잊을 수 있지만 그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잠시 마취되는 것과 같습니다.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마취가 풀렸을 때 아픔은 배가 되는 것처럼 결국 믿음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완전한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믿었다면, 자신의 믿음을 어디로 이어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단단해진 마음을 가지고 내 가족에게, 이웃에게 무엇을 할지, 우리 사회를 어떤 사회로 만들어갈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가 믿음의 완성이 아닐까요.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래서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면 이제는 그 천국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믿음의 파도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높은 지점은 더 높아지고, 낮은 지점은 더 낮아집니다. 저자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즉, 완전히 다른 세상에 대한 희망은 사회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불안정할수록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더 크게 물결치고 있는 오늘날의 믿음과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 아니 갈망이 넘쳐 나는 시대입니다. 믿는 인간에 대한 성찰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갈망보다는 어떤 하늘과 땅을 원하는지, 그 하늘과 땅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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