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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n 06. 2022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낭만적 사랑의 일대기

제목은 마치 사랑의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할 것만 같은 철학 책 같지만, 이 책은 사랑의 과정을 한 번 거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에세이다. 조금 덧붙이자면 보통 사람들보다는 생각이 많은 누군가가 썼다는 차이가 있다. 저자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고, 흔들리고, 그렇게 끝이 나는 사랑의 과정을 아주 많은 생각을 덧붙여서 이 책에 썼다.


주인공은 비행기 안에서 클로이를 만난다. 모든 낭만적인 사랑이 그러하듯 그들의 만남에는 필연적인 우연이 있고, 우연은 그 만남을 운명처럼 여기게 만든다. 필연적인 우연은 참 모순적인 표현인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모순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세상 모든 일은 여러 우연이 겹쳐서 벌어진 사건이다. 물을 조금 흘린 것도 '그 시간에 물을 마시려고 할 확률', '물컵이 거기 있을 확률', '물컵을 실수로 칠 확률'을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아주 우연적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많은 우연한 일들이 모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세상 모든 일이 그럼에도 우리는 그걸 운명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순간 모든 일은 운명이 된다. 그러니 거기엔 필연적인 우연이 존재하게 된다.


필연적인 우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속속들이 그 사람도 좋아하는 것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말도 잘 통하고,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나와 반대로 갖추고 있어 알맞게 채워주는 듯하다.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운명을 암시한다.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렇게 낭만적인 사랑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들은 한두 번 더 만나서 이야기하며 상대의 말속에 숨겨진 뜻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한다.

아주 작은 부정적 암시에도 마음이 무너지다가, 그 표정을 알아챈 상대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주면 기분이 하늘 끝가지 올라가기도 한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려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그렇게 알아낸 상대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나를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몇 번의 만남을 가진 뒤에 그들은 연인이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으레 그러하듯, 상대방은 나에게 과분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의 장점은 작아지고 단점은 커 보이는데, 상대의 장점은 커지고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쁘다. 때때로 이런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사람이 이런 나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그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인 간에 너무 다 보여주지 말고 밀당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기쁨의 순간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찾아온다.


자신의 우상이 자신과 나란히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때로는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것보다 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에서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 그를 봤을 때 과분하다고 느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틀린 음정이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설렘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의 차이가 불쑥불쑥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커다란 가치관까지, 그들이 운명이라는 사실에 반기를 드는 일이 눈에 띄게 된다. '같다'는 생각이 사랑에 빠질 때 그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시키는 역할을 하듯, '다르다'는 생각은 사랑이 멀어질 때 그 속도를 빠르게 만든다. 다름은 관계를 흔들고, 흔들린 관계는 다름을 더 많이 찾고,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다름과 흔들린 관계는 이렇게 서로를 밀고 당기며 낭만적 사랑의 끝을 앞당긴다.


아무튼, 연인이 된 후에 틀린 음정이 조금씩 들리게 되더라도 사랑이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둘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연인으로서의 추억을 쌓는다.


자유를 인정하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서  알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주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가 찾아 준 아름다움에 맞춰 나를 바꾸기도 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는 말을 상대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상대방과 함께 할 것들을 떠올리며 기뻐하고,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둘만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하고,

둘만의 단어를 만들어서 주고받는다.


그 시간의 한편에서는 불안감도 커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보이던 둘의 차이는 점점 더 자주, 크게 보이기 시작하고 둘 사이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이 항상 같을 수는 없듯이 두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한 명의 마음이 더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다. 다름과 흔들리는 관계가 서로를 끌고 당기듯,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도 관계의 악순환을 만든다. 마음은 숨길 수 없다. 좋아하는 마음이 숨기기 어렵듯,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숨기기 어렵다. 전처럼 환하게 웃어주지 않고, 뭘 먹을지, 어딜 갈지 고민하지 않고, 스킨십도 줄어든다. 마음이 숨기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상대방은 조급해진다. 전에 그 사람을 웃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기도 하고, 좋아했던 것을 맥락을 신경 쓰지 않고 가져오기도 한다. 어디든 새로운 곳을 가보려 하고, 상대방이 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숨기며 손을 뻗는다. 문제는 이 모든 행동에 조급함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급함은 인위적이고, 인위적인 것은 더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마음이 먼저 식은 사람에게 상대방의 이런 조급한 행동은 더 독이 된다. 안 그래도 마음이 식고 있는데 예전만도 못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가끔은 그 조급함이 너무 커져서 혼자 화내고, 토라지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의 낭만적 사랑은 저물어간다.


그러다 결국 망가져가는 상대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사람, 혹은 조급함에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지쳐버린 사람 중 한 명이 먼저 둘의 이야기를 꺼낸다. 완전히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건 많지 않다. 마음을 숨길 수 없듯이, 이별의 징조도 숨길 수는 없다. 누가 먼저 이야기했더라도 상대는 어렴풋이 생각했던 장면을 마주할 뿐이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전부 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 그리고 클로이는 이런 낭만적 사랑의 과정을 지나온다.


그들이 겪은 것처럼 낭만적 사랑은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낭만적 사랑이 끝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는 특별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의 과정은 특별함을 우리의 바로 옆, 일상적인 곳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정이다. 특별했던 누군가는 사랑의 과정을 통해 특별함을 잃는다. 낭만적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필요로 하는 특별함을 낭만적 사랑 스스로 지우게 된다. 그래서 영원할 수 없다.


그러면 영원한 사랑이란 건 불가능할까? 애초에 낭만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2년 남짓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결혼을 하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영원한 사랑이 불가능한데 결혼은 무슨 소용이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하는 약속은 무슨 소용일까.


아마 답은 그 밖에 있지 않을 듯하다. 사랑의 시작에 분명 낭만적 요소가 빠질 수는 없다. 특별함이 낭만적 사랑의 준비물이듯 낭만적 사랑 없이 둘의 관계가 특별해지기는 어렵다. 다만,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낭만적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의 형태가 결심 일지, 책임감 일지, 그 외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낭만이 끝난 이후에 긴 시간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애초에 낭만은 짧아서 낭만이다. 긴 낭만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낭만이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 줄 뿐 사랑의 끝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한 답은 낭만이 아닌 스스로가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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