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Jul 30. 2022

긴 감상 2

불확실한 사회와 과정의 중요성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는 과거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인류가 처음 등장한 이후, 마치 안개를 걷어내는 것처럼 불확실한 것들을 확실한 것들로 바꿔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세상의 비밀을 밝혀 나가는 것과 반대로 인간 사회는 점점 더 불확실한 곳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점점 더 다원화되고, 더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사회의 변화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확실한 미래'는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누구나 성공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얻을 수 있었다. 굳이 조선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로라하는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고시, 그에 준하는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면 성공이라는 미래를 거의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대학만 잘 나와도 성공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자란 지금의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좋은 대학, 대기업, 전문직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젊은 세대가 윗 세대의 말을 들었을 때 사회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그들에게 사회는 더 이상 확실한 미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도 미래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또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직 자격증도 취득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대기업에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다. 더 이상 사회는 '이것을 하면 저것이 된다'는 식의 확실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불확실성에 놓인 건 성공뿐만이 아니었다. 다원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억눌려 있던 수많은 가치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만들었다. 어제까지 별 일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식되기 시작하고,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문제가 되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필요했다. 물론 예전처럼 이것은 그냥 이것, 저것은 그냥 저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모든 가치판단은 작은 것 하나 확실하지 않다. 같은 문제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옳은 것들도 등장한다.


물질적인 성공도, 정신적인 가치도, 더 이상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과학에서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말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다. 무질서도가 늘어나기만 하듯이 사회의 불확실성도 늘어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불확실성의 안개가 자욱한 사회에서는 한 번의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성공하고 싶다면 꾸준히 성공해야 하고, 옳은 가치를 따라가고 싶다면 매 순간 모든 정보에 귀를 기울여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사회가 요구하는 자세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확실성의 사회에서는 좋은 결과가 좋은 과정을 보장한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좋은 과정이 확실성을 거쳐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해왔다. 그리고 확실성의 사회를 거쳐 온 우리 사회도 결과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좋은 과정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과정은 옳지 않았으나 우연히 좋은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결과만을 좇기 시작하면 그 과정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에 같은 과정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좋은 결과는 더 이상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하고,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좋은 평가와 함께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우리가 길러야 할 태도, 갖춰야 할 철학이다.

작가의 이전글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