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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l 24. 2022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새로운 장소가 주는 의미에 대하여

종종 지금의 삶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생활은 벽에 부딪힌 듯한 내 삶을 바꿔줄 거라는 기대를 기대를 갖게 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네 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이다. 짧은 여행부터 보다 긴 어학연수까지 각자가 떠나 있었던 기간, 겪은 일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 부족한 이곳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으로 향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새로운 장소에서의 만남은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기분을 전환시켜줄 것만 같았던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생각만큼 원래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여행은 기대와는 다른 복잡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주인공 현주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고 싶은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마치 이 공간, 이 환경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오고, 새로운 일을 불러 이 지난한 현재를 바꿔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우리는 새로운 장소로 향한다. 원래의 것들을 놓고 새로운 것을 원한다. 물론 이 환기의 과정이 답답했던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꽤 많은 경우에 그건 잠시일 뿐이다.


새로운 장소는 내가 있던 곳과 다를 것 같지만 그건 멀리서 보았을 때일 뿐, 시간을 들여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곳 역시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고, 한동안 더 좋은 사람을 만난 듯한 기대에 빠지지만 그 역시 가까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도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결국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던 새로움은 잠시나마의 환기를 우리에게 안겨줄 뿐 삶은 장소만, 주인공만 바꿔서 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움은 우리 일상을 환기하는 데 분명히 도움을 준다. 지난한 일상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막힌 것처럼 느껴지는 삶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오는 새로움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환기일 뿐이다. 그것들이 줄 수 있는 건 변화를 위한 자극이다. 결국 그걸 진짜 새로움으로 만들어나가는 건 우리 자신이다. 일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새로운 장소에서도 나는 과거를 찾을 것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과거의 관계를 답습하게 될 뿐이다. 그러니 여기가 원래의 장소인지, 새로운 장소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모든 장소는 새로워질 수 있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 제목은 모든 곳이 새로워질 수 있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당신은 왜 그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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