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장만한 첫 '우리 집'에 대한 기억
어머니가 손빨래하는 욕실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쫑알거리며 이야기하던 오후의 햇살, 연탄보일러와 아궁이가 있던 재래식 부엌 옆 옥색 입식 싱크대가 있던 주방에서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빨간 홍옥을 씻을 때 나는 달콤한 냄새, 그 옆에서 하나씩 받아 홍옥을 우적거리며 한자리에서 두세 개는 먹어치우던 주방의 공기, 부모님 방 이불속에 엎드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를 들을 때 석양 무렵의 달큼한 향기, 창가에 책상이 있고 방문 옆 오른쪽 공간에는 5단짜리 책장이 있고 왼쪽 공간에는 검정색 영창피아노가 있던 나와 막냇동생이 함께 쓰던 방에 누워 읽던 <빨간 머리 앤>, <해저 이만리>, <장발장>, <톰 소요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작은 아씨들>, <안네의 일기>의 재밌는 먼지와 침자국들, 새벽 2시면 화장실 가고 싶다고 깨우던 동생을 데리고 간 대문 옆 마당 재래식 화장실 앞에서 동생이 불러달라던 노래들, 그 노래의 멜로디.어머니가 부침개를 할 때면 뜯어오라던 방아잎이 있던 대문 바깥벽에 붙은 작은 화단 풀꽃의 노란빛, 겨울이면 얼어붙은 고드름을 가지고 놀던 남동생이 뛰어내리던 집 앞 커다란 바위의 질감. 그 시절 아버지는 바빴고 어머니도 바빴지만, 그 공기와 냄새들은 사뭇 특별하고 만족스러운 시간들로 남아 있다. **
197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그 시기에 아버지는 부산 대표 산업이던 신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삼화고무 주식회사. 한때 그룹이었고 정수장학회를 설립해 박정희에게 빼앗긴. 성실하고 머리가 좋았던 아버지는 국민학교 6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지만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근대화 한국에는 아버지처럼 성실하고 일머리 있는 일꾼이 필요했던 것. 똑똑한 아버지는 글씨도 잘 쓰고 계산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해서 산업연수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 온 문이 열리고 잠금장치가 있고 네 개의 다리가 있는 티브이가 있었고, 일제 코끼리 밥통이 있었다. 집장사가 날림으로 지어 겨울이면 유독 추웠던 부산 개금동 집의 기억이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남동생은 3학년, 다음 해 학교에 들어갈 막내는 유치원에 안 보내준다고 떼를 쓰던 6살이었다.
아버지가 승진할 때마다 아버지 회사사람들이 집에 모여 회식을 하고, 몇 잔의 소주에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나의 상장을 자랑하곤 했다. 막내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고, 남동생은 구석 어딘가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술 취한 손님들이 가고 나면 아버지는 코를 골고 부모님 방에서 주무시고, 어머니는 늦게까지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며 뒷정리를 했다. 그 집은 부모님이 결혼생활 11년 만에 23번의 이사 끝에 장만한 첫 '우리 집'이었다.
* 오드리 로드의 <자미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자미> 스타일로 한 문단 써 보았습니다.
** <자미> 217쪽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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