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씨의 사생활
영자 씨와 마주 앉았다. 집밥을 고집하는 영자 씨도 이날은 외출을 했다. 왼쪽 무릎이 아파 걸음이 불편한 영자 씨는 아이처럼 걷는다. 아장아장 천천히 걷는다. 주말 저녁 식사를 위한 외출, 칼바람을 헤치고 온 우리를 위해 담근 복분자 술도 곁들였다. 붉고 달콤했다.
"내 보고 사귀자던 그 남자가 여자친구하고 있대. 내가 다 봤다 아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혼자 식사를 해결하던 영자 씨는 동네 복지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혼자 먹는 것은 외로웠다고 했다. 챙기고 돌볼 사람이 없어져 낯설다고 했다. 노래교실 때문에 오래 다녔던 복지관에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오전에 성당에서 미사 드리고, 3천 원짜리 점심식사를 친구들과 함께 먹고 귀가하는 것이 영자 씨 루틴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복지관 친구들도 알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남편과 사별한 영자 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다. 사귀자고 했단다.
"내는 남자라면 진저머리 난다. 손주 빼고 남자는 마 다 싫다."
키 크고 잘 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가난하고 까칠했던, 성실하지만 가부장적이고 효자였던 남편과 55년을 살았던 영자 씨에게 남자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존재다. 남편을 사랑했지만 남편 때문에 힘든 결혼생활이었다. 그런데 남자가 사귀자고 했단다. 80대의 잘 생긴 할아버지가.
"아이고 싫다 마. 이 나이에 자유롭게 살아야지. 55년 장 씨 집안 종살이 이제 마쳤는데 무신 남자고. 나는 싫다. 마 싫다. "
영자 씨는 혼잣말을 한다. 계속, 계속한다.
부산집의 행정처리가 몇 가지 남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딸과 합가 해서 잘 살고 있다는 신고를 하고 싶은 영자 씨와 부산에 갔었다. 관광객 모드로 부산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부산은 나의 수치이자 그리움의 장소이다. 붉은 심장은 집에 두고 서늘한 머리만 가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미사-점심-저녁-다음날 점심 식사로 이어지는 영자 씨 스케줄 덕분에 나의 매니저 역할은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영자 씨는 복지관 친구들을 만난다며 복지관으로 갔고, 한가해진 나는 영도에 있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중앙역 5번 출구에서 영도 방향으로 올라오는데 바다 냄새가 훅 밀려왔다. 그래. 이 냄새다. 부산 냄새, 엄마 냄새, 그리움 냄새. 모처럼 자유시간이라 전시보고, 바다 보며 혼자 점심을 먹고, 부둣가를 천천히 산책하고, 정박된 고깃배를 마주하고 커피를 마셨다. 부둣가 창고를 개조한 커피전문점 안은 왁자지껄하다. 연인과 함께 온 사람, 친구들과 온 청년들, 나들이 온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있어도 충만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우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마침 부산은 날도 따듯했다.
왔던 길을 거슬러 바다 위의 다리를 건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노래 때문일까? 혼자였기 때문일까? "부산에 가면,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듣는데, 심장이 뛰었다.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아버지는 계시지 않고, 엄마 집은 철거되는 부산은 조금 슬프고, 많이 낯설다.
2박 3일, 부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오고 나서도 영자 씨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복분자 술 때문이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영자 씨에게 달콤한 복분자주를 권했기 때문이다.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애 이야기, 사생활 이야기. 그 할아버지는 영자 씨에게 퇴짜 맞고 다른 할머니에게 사귀자고 했고, 두 사람은 커플이 되었다고. 다시 찾은 복지관에 갔더니 그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더란다. 남자는 영자 씨를 보았고, 여자는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옷을 초라하게 입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영자 씨는 말했다. 가장 좋은 겨울 코트를 챙겨 입고 가시더라니.
복분자 술 한 병을 비우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은 차고 얼굴은 붉다. 나는 보드라운 영자 씨 손을 잡고, 영자 씨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다. 달도 휘영청 밝다.
"잘했수. 그놈의 남자 이젠 지겹지, 지겨워. 나랑 재밌게 삽시다."
두 여자는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