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주년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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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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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고 온 시집에는 청년 시절의 그가 있다. 1987년 여름의 좌절과 청년의 불안, 미숙함이 담겨 있다. 그는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왔다며 국밥집 테이블 위에 시집을 가지런히 올린다. 시집 옆에 소주도 한 잔 올린다. 마치 젊은 날에 대한 참회 혹은 기도처럼. 치기로 충만했던 그는 청년이란 황지우의 시를 읽고 외워야 하는 줄 았았다며, 지식인이 되고 싶었던 도시 주변부 청년의 소박한 신념을 회상한다. 그는 젊은 날 외웠던 시구를 천천히 읽는다.
삼십 년 전, 철없던 청년 둘은 무모한 결혼을 하고,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아이를 낳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아픈 아이를 돌보고 아프지 않은 아이도 돌보며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을 전쟁처럼 살아내느라 다 잊고 살았다. 심연에서 차고 넘치는 문장과 눈물을 묻고 살았다. 시집을 잊었다. 시를 잃었다. 좁은 집으로 이사 갈 때마다 시집은 폐지로 쌓였다. 폐지가 된 시집이 나무가 되었나. 청년들은 온몸으로 나무가 되었다. 나무는 푸르른 사월 하늘을 무수히 들이받았다. 그랬더니 꽃이 피더라. 무수히 꽃이 피고 또 지더라. 그렇게 다음 계절에 이르렀더라. 푸르른 사월을 지나 가을 깊숙이 도착했더라. 나무는 단단해졌더라.
*결혼 30주년 저녁에(20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