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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Dec 15. 2023

우리는 연결된 존재, 욕망하는 존재

전세 사기 폭풍이 지나간 빌라에서

딸이 이사를 했다. 월세가 부담된다고 전세로 옮기겠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계약기간까지 있다가 그때 결정하자고. 하지만 말릴 수가 없다. 매번 그렇지만 내가 졌다.


내 집에서 1.2km, 걸어서 15분 거리, 북한산 자락 아래 공기 좋고 깨끗한 빌라를 얻었다. 그녀는 혼자 이사를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오피스텔 짐을 뺄 때는 친구와 둘이서 했고, 이사 들어갈 때는 결국 나와 함께 이사를 했다. 그녀는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을 알아보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 등 절차를 진행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더니 은행 담당자가 본가가 바로 이 동네인데 왜 전세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하느냐,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대출이 불가하다고 했다. 본인 돈도 아니고, 청년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인데, 개인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은행 직원이 가타부타할 것은 아닌데 그는 선을 넘고 있었다. 반대하는 이사였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싶어 따지려고 다가갔더니, 그녀는 다시는 안 볼 사람인데 얼굴 붉혀서 뭐 하겠냐며 쿨하게 일어났다. 근처 다른 은행에 가서 상담을 했다. 이번에 만난 은행 직원은 당연히 되지요, 하면서 필요한 절차와 서류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을 해 주었다. 결국 그 은행에서 청년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원룸을 탈출했다.


학교 앞 다가구 주택의 방 한 칸, 4월에도 발이 시렸던 그 방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이 집은 현관문을 열면 중문이 있고, 방이 2개에 주방 겸 거실, 욕실이 있는 전형적인 빌라 구조다. 세탁실도 따로 있고, 냉장고, 세탁기, 인덕션, 천장 에어컨이 빌트인이다. 지은 지 2년이 조금 넘어서 깨끗하고, 단열도 잘 되는 모양인지 따뜻하고, 방음도 잘 되어 조용하고, 채광도 좋다. 주차도 집마다 한 대씩 가능해서 주차 시비도 없겠다. 바로 뒤가 공원이고, 언덕을 내려가면 구립도서관이 있다. 홍제천도 있어 사람 살기에 좋은 동네다. 집을 잘 구했다.

 

가구 배치를 하고, 짐 정리를 했다. 1인 가구라도 필요한 건 다 있어야 한다. 정리할 것과 사야 할 것들을 정하고, 서랍마다 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욕실-주방-세탁실 순서대로 정리하는 사이, 그녀는 이불 빨래를 하고 왔다. 허리가 아프다. 인터넷 설치까지 했으니까 오늘치 노동은 여기까지, 쓰레기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나왔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젊은 노인이 인사를 한다. 동대표란다. 재활용 쓰레기는 이렇게 버리고, 음식쓰레기는 저렇게 버리라고 알려준다. 주차도 안내해 주고.

 

- 여기가 전세사기가 한번 훑고 지나간 빌라예요. 이 두 동에서 전세사기가 8집이 났다니까요.

= 아. 그래요?

- 집값이 확 떨어지니까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못해줘서 난리가 났지. 아주 난리가. 결국 3명은 교도소 갔어

= 아...

- 302호는 괜찮아요. 주인이 대출받아서 보증금 해 줬잖아. 이제는 한 바퀴 다 돌았어. 세입자가 경매로 산 집도 있고. 이제 들어올 사람, 나갈 사람 정리됐어요. 보증보험 들었죠?

= 네. 다 들었죠. 은행에서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 잘했어요. 보증보험 안 든 집은 아주 난리가 났었거든요. 결국 집주인 2명은 자살했어. 보증금 감당을 못해서. 젊은 친구들이.

 

이 이야기를 그녀가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새 집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그녀가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이미 들어버렸다.


계약할 때 부동산에서 만난 집주인이 생각났다. 30대 후반 여성. 그 여성과 딸은 연결되어 있다. 그 여성이 잘 살아야 딸도 무사하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 집이 무사하게 해 주세요. 집주인이 잘 살도록 해 주세요. 직장도 잘 다니고, 대출이자도 잘 갚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전세사기범이 된 집주인들이 생각났다. 보증금 차액 5천만 원을 만들지 못해서 교도소를 가고, 생을 마감했다는 그들. 그들은 악인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욕망이 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돈 천만 원 투자해서 빌라 주인이 되고, 재건축 추진 중이던 지역이니까 아파트 분양권도 받을 수 있겠지 기대했을 것이다. 기획부동산에서 그렇게 설명했을 것이다. 나라고 자유롭겠는가? 나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이 부동산 버블 안에서 욕망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투자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 성공하지 못하면 무능한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 말이다. 그런 그들이 전세보증금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악인이 되었다. 결국 죽음으로 몰렸다.

 

다음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빌라 주민들이 주말에 점심을 먹자고 한다고, 주민회의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늦잠 자야 하는데 하면서 투덜거린다. 나는 “어려운 일 겪었으니까 잘해보자는 거겠지, 한번 가봐, 이웃끼리 알고 지내면 좋지”라고 했다. 그녀는 빌라 커뮤니티에 주민으로 발을 내딛는 중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시민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이 빌라 공동체가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경험이 그녀를 또 어떤 어른으로 성장시킬지도.


#전세사기 #욕망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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