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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Dec 19. 2023

영자 씨의 새 옷

어디 여행이라도 갈 사람처럼

- 내 오늘 옷 하나 맞췄다.

= 잘하셨네요.

- 아버지 보낼 때는 정신이 없어가꼬 내가 미리 챙기지 몬해서 그기 영 맘에 걸리가꼬. 갈 때도 무신 옷 입고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 적당한 걸로 했어요. 깨끗한 걸로. 아버지 잘 생겨서 잘 어울렸어.

- 사람 일이 하루아침에 우찌 될지 모르는데, 느그들 당황할까 봐 시장 가서 하나 맞춰놨다. 연한 분홍색으로. 

= 잘하셨네요.

- 원래는 집에 있는 한복 입을라 캤는데, 갈 때는 그거 몬 입는다 카대. 친구는 백만 원짜리 했다는데, 내는 21만 원에 이쁜 걸로 하나 했다. 

= 네. 잘하셨네요.

- 내 이제 할 거 다 했다. 김장도 했고, 메주도 쑤어 놨고, 옷도 맞춰 놨고. 


영자 씨가 옷을 맞췄다길래 그 옷은 아니기를 바랐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옷이었다. 나는 울음을 삼켰다. 영자 씨 답다. 새 옷을 산 영자 씨 목소리가 들떠 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갈 사람처럼. 당장 어디라도 갈 사람처럼.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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