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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Dec 19. 2023

무모한 자매, 무모한 도전

생애 첫 김장, 난리법석 김치 완성

“아들, 심부름 좀 해. 어서 가서 배추 절일 통 큰 거 하나 사와. 빨리”

배추를 절일 ‘다라이’가 집에 없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자매는 당황했다. 두 손이 자유로운 아들에게 큰 통을 사 오라고 했다. 김장하는 날, 절임배추 20kg는 물을 빼두었고, 김장 양념도 완성했고, 알이 꽉 찬 배추 4 포기는 다듬어 두었다. 다듬은 배추는 절여서 내일 양념을 하려고 했는데, 김치 양념을 하려고 하니 통이 없다.  큰 통에 절일 배추를 몰아넣고, 작은 통에서 양념을 하기로. 그러려면 큰 통이 필요하다.


이 난리법석은 배추 10 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버지 이름에서 ‘원’, 아들 이름에서 ‘빈’을 딴 원빈농장에는 동생이 가을 내내 키운 배추가 몇 포기 있었다. 서리도 내리고 추워졌기 때문에 배추를 수확해야 했다. 12월 1일 배추를 거두고, 12월 2일 주말을 맞아 김장을 하기로 했다. 김장이라고 해봐야 절임배추에 영자 씨가 보내준 양념을 버무려서 김치통에 넣기만 하는 것이었다. 올해부터는 영자 씨 김치를 받아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내 손으로 김장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원빈농장의 동생 배추는 조연이었다. 동생이 농사지은 거니까 아까워서 김장하는데 쓰기로. 그런데 원빈농장 사장님이 그 배추로는 김치 못 담근다며 당신이 농사지은 배추 10 포기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10 포기의 실감이 없었다. 알배추 정도로 상상했는데 웬걸 들 수가 없다. 무겁다. 동생 배추는 알이 하나도 차지 않아서 깃털처럼 가벼운데, 이 배추는 웬만한 아이 몸무게다. 영차영차, 겨우 차에 싣고 돌아왔다.


- 이 배추 어디다 절이지?

= 절일 큰 통이 없는데?

- 김치 담으면 넣을 은 있어?

= 헉. 김치냉장고 여유공간을 봐야겠다.

- 영자 씨 양념 부족하면 어떡하지?

= 우리 사고 쳤나 봐. 하하


무모한 자매의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감기몸살까지 걸렸는데 이를 어쩌지? 남편은 2박 3일 출장을 가서, 그나마 보조 셰프도 없는 지경이다. 일단은 저녁을 간단히 먹고, 약을 먹고 잤다. 한숨 자면 낫겠지 싶어서. 결전의 날, 12월 2일 아침 컨디션은 어제보다 낫다. 작전 개시. 그렇다면 절임배추부터 버무리고, 배추 2통은 미리 예약한 미장원 송원장에게 보내고, 배추 4 포기 정도만 절이자. ‘다라이’ 사이즈에 맞춰서. 새로 절이는 배추는 내일 양념을 하고, 오늘은 절임배추까지만. 영자 씨 양념에 황태 다시물과 연시 6개, 새우젓, 고춧가루, 고추씨, 매실액, 찹쌀풀, 마늘, 생강을 넣어 희석시킨다. 양념도 다 준비되었다.


힘들어도 김장날이니까 아들을 위해서는 수육을 준비하고, 동생을 위해서는 배추전, 무전, 굴전을 준비한다. 배추를 다듬어서 우거지 거리, 배추전 할 거를 따로 준비해 두고, 통을 꺼내어 소금물을 만든다. 배추를 씻어서 절인다. 아들이 사 온 큰 통에는 배추를 절이고, 작은 통에는 김치양념을 두고 무치기 시작한다. 생애 최초로 김치 양념을 해보는 동생도 척척한다. 하나만 무쳐 수육과 전을 두고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양념을 무친다. 하나씩 이쁘게 김치통에 담는다. 1통은 동생에게, 2쪽은 후배에게, 2쪽은 미장원 송원장에게 보낸다.


일단 여기까지. 주방을 정리하고 감기약 먹고 한숨 자자. 저녁에 다 절여진 배추를 건져두고, 내일 양념을 하면 된다. 남은 배추 3 포기는 주말에 백김치를 담는 것으로.(그때까지 배추야 견뎌줘.) 동생의 깃털 배추는 우거지를 하면 되겠다. 어찌어찌 무모한 도전도 중반을 넘겼다. 배추 10 포기를 무시한 결과다. 생활의 지혜를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이겠지. 또 한수 배운다.


어쨌든 결론은 김치가 맛있다는 것이다. 아들과 둘이서 전과 수육, 김장김치를 두고 저녁을 먹었다. 점심과 같은 메뉴인데도 맛나다. 김치가 맛있으니까 다 괜찮다.


2023년 12월 2일 생애 첫 김장 담그기


맛있는 김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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