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산행보다 산책, 달리기 보다 걷기를 즐긴다. 지하철보다 버스를 즐긴다. 특히 머리가 복잡할 때, 스트레스로 편두통이 찾아올 때 산책은 특별하다. 벤야민도 산책을 즐겼다. 벤야민 뿐이랴, 루소도, 칸트도, 리베카 솔닛도, 산책의 계보는 그렇게 흐른다.
벤야민은 왜 “일방통행로”를 걸었을까? 일방통행, 그것은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역주행 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질주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재현불가능해 보이는, 도시산책자가 아직 습관이 작동하지 않은(120쪽)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 느끼는 현기증을 사유하고, 진지함 속에서 순진한 체하는 지폐가 가득한 지옥의 전경(151쪽)을 보면서 운명의 메시아를 기대한 것은 아닐까? 지속적인 것을 보지 않고 어디에서나 길을 보는 파괴적 성격(179쪽)의 소유자가 되어, 항상 교차로에 서서 그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면서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산산히 부수는(179쪽) 도시산책자 말이다.
벤야민에게 도시는 풍경화이기도 했고 숙소이기도 했다. 도시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간판들, 도로의 이름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집들, 노점들, 술집으로부터 메시지를 듣는다(리베카 솔닛, 318쪽)*. 벤야민에게 이 배회의 기술을 가르쳐준 도시는 파리였다. 학생 시절 미로 속에서 최초의 흔적을 드러낸 벤야민의 꿈을 실현시킨 곳도 파리였다. 벤야민의 도시 사랑은 낭만주의에 대한 거부이면서 모더니즘을 향한 열정이었다(리베카 솔닛의 책, 319쪽). 매혹적인 공간 구성물인 도시를 산책하면서 벤야민은 “19세기의 수도” 파리를 관찰하고, 그 공간 안에서 사유했다. 벤야민은 루소의 산책이나 칸트의 산책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산책을 한 것이다.
벤야민의 도시 산책을 리베카 솔닛이 뒤따른다. 그녀는 벤야민과 같은 도시산책자(플라뢰르)는 상품과 여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고 생산자가 되라는 압력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상업 문화, 자본주의 문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매혹되는 양가적 인물이라고 하였다(위의 책, 323쪽). 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닌 벤야민은 파리에서 군중과 상품을 경험했다. 계층이 뒤섞여 있는 혼종적 도시 파리에서의 산책은 일종의 오락이었다. 또한 도시 산책은 꿈에서 나온 것들, 무의식적‧비자의적 정신의 자유 연상, 충격적 병치, 요행과 우연, 일상의 시적 가능성을 중시한 초현실주의의 지향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벤야민은 파리라는 공간 구성물 안에서 사유했다. 그는 산책하며 초현실주의적 개입, 유대 메시아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구원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매일 매일이 심판일인 다중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벤야민에게 과거를 기억하는 것, 그것을 통해 혁명적 기회를 포착하여 인플레이션, 파시즘, 상품화의 열차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이것이 그를 산책하게 했고, 사유하게 했다. 그것이 1928년이었다.
2024년, 나는 서울의 낡은 동네를 산책할 것이다. 홍제천을 걸으며 운동하는 노인들의 몸을 볼 것이고,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주상복합건물이자 군사시설이었던 유진상가를 관찰할 것이다. 채소도매시장이었다는 인왕시장을 볼 것이고, 젊은 노인들이 춤추러 오는 댄스홀을 지날 것이고, 그들의 뾰족 구두끝을 볼 것이고, 술 취한 가난한 남자의 뒷모습을 볼 것이고, 여름동안 다 자란 오리의 자맥질을 볼 것이다.
나의 도시 산책은 어떤 사유에 다다를까? 몸일까? 늙음일까? 빈곤일까? 아니면 생명일까? 이 산책이 다 끝난 다음이면 나는, 나의 사유는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일지 나도 궁금하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