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끝나면 '봉우리'를 듣겠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글렌 구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적당한 선곡이다. 김민기 씨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골라 BOSE 스피커에 연결해서 듣는다. 김민기의 음악을 들으면 깊은 상념에 빠질 것 같아서.
20대 초반, 나는 김민기 음악을 많이 들었다. 양희은의 목소리로. 우울하고 힘든 날이면 학교 방송국에서 헤드셋을 끼고 그의 음악을 무한반복해서 듣곤 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일은 힘들었지만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어서 축복이었다. 수업하고, 생방송하고, 한숨 돌리는 시간에 ‘봉우리’를 들었다.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뭇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나는 지금 고갯마루에 있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를 보며. 김민기 씨의 부고는 한 시대가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순간,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다. 만약 20대 초반 ‘봉우리’를 듣던 그 시절에는 이 책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44쪽)
50대 중반, 지금은 스스로를 돌아볼 때이다. 남은 시간은 내 영혼의 떨림을 따를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고전어 교사다. 그는 평생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했다. 출근길, 다리 위에서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는 여인을 구하고 포르투칼어로 쓰인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이 그를 리스본행 열차를 타게 했다. 그레고리우스는 책의 저자를 찾아, 아니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도망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프라두의 인생 조각을 맞춰가는 여정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과 조우한다. “말씀의 신성함과 위대한 시의 숭고함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도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221쪽) 이런 통합적 인간을 프라두가 원했듯이 그레고리우스도 원한다.
이제 그레고리우스는 “생각으로든 행동에서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지 않을 의무, 자신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편을 들 준비자세, 시를 고쳐졌고 그 시가 진실이 되도록”(285쪽)할 것이다. 사유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시(詩)를 쓰면서, 시적인 사유와 사유하는 시가 존재하는 바로 이곳, 이 시간을 낙원으로(438쪽) 만들면서 말이다. 이 여행을 통해 그레고리우스는 ‘말은 시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 수가 있으며, 변화하는 말의 빛 속에서는 같은 사물도 아주 다르게 보인다는 것’(529쪽)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라틴어(25쪽)가 아니라, 사물을 비추는 말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는 리스본행 여행에서 세상을 보는, 자신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
사실 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몰랐다. 바흐의 곡 중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좋아했을 뿐인데, 김미옥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263쪽에서 글렌 구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만났다. 며칠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마침 이 책에서 에스파니아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423쪽)이 나오니 반가울 수밖에. 이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끝나면 김민기의 ‘봉우리’를 듣겠다. 세상에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간 김민기 씨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날들이 시적인 사유와 사유하는 시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여행이 되기를 빈다.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이 봉우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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