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그룹 영어토익반> (202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전체적인 영화의 대략적인 플롯만 본다면, 국내에서는 올 초에 개봉된 토드 헤인즈의 <다크 워터스 (Dark Waters)> (2019)를 연상시킨다. 조직적으로 수십 년간 폐기물질 유출을 이어온 듀폰을 고발하는 <다크 워터스>는 영화 내내 무겁고도 진중한 톤으로 대형 로펌 변호사인 롭의 고통과 번민을 보여준다. 보통 기존에 개봉된 실화 기반의 기업 고발 영화들은 <다크 워터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지함을 지속하며 사실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업 고발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기존 영화들과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역시 우연히 공장의 페놀 유출을 목격한 자영(고아성)이 유나(이솜), 보람(박혜수)과 함께 진실을 파헤쳐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이 영화는 그 이야기의 구심점을 90년대 고졸 출신 여성 사원으로 둔다. 단순히 커피를 타고 담배를 사주며 구두를 닦아주는 등 이들은 지나치게 불필요한 허드렛일을 할 뿐이며, 기업과 사회는 고졸 여성들을 마치 잉여자원처럼 활용할 뿐이다.
고졸과 대졸 차이로 인한 차별도 존재하고, 관성적으로 담배 심부름 따위를 시키며, 능력과 입사년도는 상관없이 남성만이 먼저 승진을 한다. 차별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당시에도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또한 단지 그 형태가 다를 뿐, 여전히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영화적 장치로서의 차별은 현실에서 여성들이 끊임없이 겪고 있는 차별과 동일시되며 영화 밖으로 확장한다. 관객들은 코믹의 요소를 느끼면서도 영화의 내용을 단순히 영화로서만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감 있게 수용한다.
이러한 사회 내 약자이자 기업 내 최약체인 여성을 통해 영화는 여러 부조리를 동시에 건드린다. 잘못된 행태에도 조사 결과를 조작하여 피해자들을 방관하는 기업을 고발하며, 적합한 능력과 기회를 갖고 있는 그들에게 부조리한 업무만 시키는 현실 또한 지적한다. 즉, 영화는 양립할 수 없을 법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발하며, 그 모두를 바꾸기를 희망한다.
한편, 관객들이 내용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영화의 설득력은 캐릭터들의 입체감을 통해서 더욱 살아난다. 단순히 영화의 주인공들에게만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않고, 등장하는 모든 여성인물들에게 특징들을 세세히 부여함으로써 이 서사의 주인공이 단순히 자영, 유나, 보람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 모두임을 나타낸다. 물론 세 주인공의 성격이 기존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는, 3인 이상 주인공일 경우의 전형성을 보인다. 하지만 세 주연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가 진부함을 상쇄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이 여럿임에도 특정 한 인물에게 집중하지 않고 영화의 종결부까지 균형감을 유지하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다만, 영화 내내 매끄러웠던 것과는 다르게 후반부는 아쉬움이 남는다. 봉현철 부장(김종수)의 죽음과 관련하여 잉여의 서사를 통해 필요 이상의 신파를 부여하기도 하며, 회사 매각과 관련하여 반전과 함께 극적인 상황들이 과도하게 연출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일종의 통쾌함을 부각하기 위해 남자 직원들이 주주 동의서 박스를 들고 오거나, 남자 직원들이 급작스럽게 회장실로 밀고 들어가려고 하는 등의 연출은 극히 과잉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올해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특히나 인상적이고 의미가 깊은 영화다. 최근 양질의 여성 서사 영화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올해에는 손익분기점을 넘은 <정직한 후보>를 시작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 <프랑스 여자>, <69세> 등 다양한 주제에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담은 수작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일련의 흐름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남배우가 아닌, 20~30대 여배우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증명이 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