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의 고요가 혹시 너의 비명을 가뒀을까

천 개의 바람이 울던 날

by 장지연 작가


천 개의 바람이 울고

앞마당 가득 바람이 찾아와

펼치는 푸른 춤사위

작은 잎들은 동요하지만

내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대나무 울음 요란하고

위태로운 몸부림은

하늘과 땅에 긴 획을 긋는다


내 안의 동요는 오직 고요

투명한 창 밖의 소요는

끝내 가닿을 어느 날의 시름일 터


나는 저 몸부림과 흐느낌을

건조한 눈으로 그저,

그저 가만히 다독인다


그런데 손이 자꾸만 떨려




[행간의 온도]



고요라는 이름의 몸부림


어지러운 속을 달래려 딸아이와 구례의 한적한 한 마을로 숨어들었다. 며칠 쉬러 가자는 말로 포장했지만, 실은 아이와 나 사이에 생긴 서늘한 균열을 메워보고 싶었다. 마주 앉아도 겉도는 말들, 깊은 대화를 시도할수록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 그 막막함을 안고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외지고 오래된 시골집이었다.


마루 위로 햇살이 따스하게 번지던 아침, 창밖으로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 보였다. 낮은 담 너머 대나무숲은 그 바람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처절했다.
마치 락커가 격렬하게 헤드뱅잉을 하듯 위아래 좌우로 댓잎을 흔들어 댔다. 그 거친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아이와 소통하지 못해 내 안에서 들끓던 응어리들이 일제히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저 바람 속에 섞여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창 안의 정적 속에 머물렀다.
두꺼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니, 밖의 비명도 안에서는 그저 소리 없는 영상처럼 흘러갔다.

대나무의 울음은 무음의 율동이 되었고, 바람의 난동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그 기묘한 괴리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 안에서 이렇게 요동치던 소란도 어쩌면 아이에게는 아무 일 없는 고요로 보였을지 모른다는.

닿고 싶어 몸부림치던 마음이 유리창 너머의 풍경처럼 멀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밖은 여전히 천 개의 바람이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요란한 몸부림을 바라보았다.

창과 창 사이에 생긴 이 거리의 이름을 아직 붙이지 못한 채 그저 서 있었다.


유리창은 생각보다 투명했고, 그 투명함이 우리를 더 멀리 데려다 놓고 있는 듯했다.
나는 여전히 창 안에 있다.
그런데,
손이 잠시 떨려.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듯 막막할 때가 있다. 내 안의 폭풍이 당신에겐 평온한 풍경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라며, 구례 '천 개의 향나무 숲' 근처 한옥에서 길어 올린 마음을 전한다. 당신의 고요 뒤에 숨은 소란도 오늘은 평안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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