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은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세수도 안 하고 잠옷 차림에 코트만 걸친 채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어제 봐둔 카페가 있었는데 문이 닫혔다. 주말에는 모닝메뉴를 판매하지 않나보다. 다행히 바로 옆에 파스쿠찌가 보였다. 여기서 조식을 해결할 겸 글을 쓰기로 했다. 한 시간만 글 쓰는 여유를 가져야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창가 쪽을 바라보니 갈월동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몇 번 다녔더니 그새 익숙해졌다. 다음에 또 여길 오게 되는 그날, 나는 얼마나 더 달라져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원하는 삶의 균형을 잘 이루며 살고 있겠지. 난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동에서의 그날이 떠올랐다.
‘해브유에벌씬디스?’
눈에 띄는 외국인에게 큰소리로 외치며 이리 와보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실뭉치처럼 동그랗게 말아진 생소한 떡을 팔고 있었다. 그런 음식은 나도 처음 보는 터라, 따라서 구경하러 가고 싶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몸이 말했다. 그만 좀 걸으라고. 그때는 다리에 있는 통증이 계속 뇌로 전달되고 있었다. 다리는 직진을 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계속 옆을 향해있었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 그 떡집이 생각난다. 그 떡의 맛은 어떨까 궁금하다. 지나고나니 꼭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혼자 서울을 여행해보겠다고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의식 속에서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발목을 잡았다. 두렵다고, 위험하다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기다려, 다시 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에게 오빠는 비교적 정확한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은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 수많은 인파들 속에 홀로 남겨진 어린 시절의 나는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어깨는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눈앞에서 엄마와 오빠를 놓쳤다. 한참 동안이나 수많은 인파들 틈에 끼어 꼼짝 못하고 그곳에 서 있어야 했다. 오빠가 다시 나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
서울에서의 첫 기억은 내게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잊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어린 내가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나는 뭐가 그리 두려웠을까. 새로운 곳에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건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기도 하는 건데. 서울도 ‘별것’ 아니었는데.
좁고 얕았던 나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주는 것은 새로운 공간도 있지만,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람’이다.
경복궁에서 어느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외국인에게 궁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유창하진 않지만 천천히, 그러나 정확한 발음으로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커플로 보이는 외국인 두 명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문화적, 언어적 지식을 고루 갖춘 그의 성품, 연륜이 느껴진다. 60대의 나는 어떤 어른일까.
타인들의 대화를 듣는 시간 속에서 결국 알아차린 것은 내면에 잊고 있었던 바람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마지막 밤 나와 함께 했던 꼬북칩, 감귤, 그리고 유튜브. 흥미를 찾아 떠난 길의 마지막에 서 있음을 깨달은 순간 무척이나 아쉬웠다.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잠은 자야 하지만 왠지 잠들고 싶지 않은 저녁이었다. 허리를 한껏 펴고 스트레칭을 했다. ‘아쉽다’ ... 그래도 다음이 있으니까. 그저 마음에 드는 곳에 잠시 머물며 동네 한 바퀴를 걸어보는 것. 아침에 일어나 책 한 권과 함께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글을 쓰는 삶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다. 물론 돈벌이는 해야겠지만.
새삼 내가 선택한 이 모든 환경이 감사하다.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단한 것이며,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시도한 것까지 모두 다.
감사하는 마음은 나를 옳은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