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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l 05. 2016

제주올레길 탐방(03)

제7코스: 속골 – 아왜낭목 / 제8코스: 아왜낭목 –  대평포구


 ■  제주올레길 탐방(03)


셋째 날 당초일정은 한라산 등정을 계획했으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7코스]로 일정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선잠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찾아간 천지동 늘풍년식당(☏ 733-1914)은  맛난 소머리 해장국밥 만큼이나 주인 아주머니의 미모와 인심이 훈훈한 곳이었다.

 ▷  제7코스(02) : 서귀포여고 - 아왜낭목


속골/ 수봉로/ 법환포구/ 일강정바당올레/ 서건도 앞/ 강정포구/ 월평포구/ 아왜낭목


시원한 장국으로 전날에 피로를 떨쳐버리고 8시 40분 시작하는 [7코스]는 서귀포여고에서 차도를 따라 해안가로 들어서며 [속골]로 향한다. "속골 해안가" 올레길에는 여섯 개의 "STORY 우체통"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붉은색 5개와 초록색 1개의 우편배달통은 왼쪽부터 미락원(함께 오고픈 이에게), 가족애(가족에게), 우정(친구에게), 지고지순(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대의(큰 뜻을 품은 사람에게), 그리고 초록색은 보내지 못한 편지를 넣는 우체통이라 한다.


     

빨간색 우체통에 넣은 편지는 1년 뒤에 보내지고, 초록색 우체통의 편지는 아예 보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젊은 날에 낭만과 추억을 되찾은 느낌이다. 바닷가 우체통은 등기나 소포를 보낼 수는 없지만 여행지의 사연이나 느낌을 작은 엽서나 편지로 적어 보낼 수 있는 운치가 남아있는 곳이다.


회갑을 넘겨 오면서 편지를 써본 시절이 언제였던지, 너무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우편배달통에 그리움과 정겨움이 절로 배어난다. 어둔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긁적여 놓고도 차마 보내지 못했던 연애편지가 몇 통이었던지 낡은 기억이 새로워진다.



이어지는 [수봉로]는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이라 한다. [수봉로]는 세번째 코스 개발시기인 2007년 겨울, 올레지기 김수봉씨가 염소가 다니던 길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생태길 [수봉로]

[수봉로]를 따라 나지막한 경사를 오르니 "범섬"이 이전보다 많이 가까워진 듯 보인다. 이어지는 길은 [법환포구]로 검은 현무암들이 즐비한 바닷길을 끼고 제주해녀 체험센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물질을 배우기 위한 초보 해녀들의 실습장인 듯 보인다.


멀리 바라보이는 [범섬]

[법환마을]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국내 최남단 해안촌으로 현재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이라고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맑고 시원한 용출수가 곳곳에서 솟아나고 바람과 바다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으로 최영장군 승전비가 세워져 있다.


제즈해녀 체험공원

당시 마지막 잔당들이 [범섬]에 웅거해 항거하며 최후까지 버티다가 범섬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10여일 만에 항복한 역사적인 격전장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영장군 승전비]를 세우게 되었다 한다.


안내표지석에 의하면 고려공민왕 때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최영장군이 마지막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고 한목호(牧胡)는 13세기 원(元)이 제주 목장관리를 위해 파견한 몽골인(胡)이다.


최영장군 승전비

탐라국은 1105년(숙종10) 고려 행정구획인 군(郡)으로 개편돼 독립적인 국가가 사라지게 되었고, 1295년 고려에 귀속되면서 지명을 제주로 고치고 목사(牧使)를 파견하였다. 1273년(원종14) 탐라에 머물던 “삼별초 난” 군사를 진압한 원나라는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목호]를 보내 말을 기르게 했다.


제부마 방목지

명나라와 국교를 강화한 공민왕이 제주 말을 명으로 보내려하자 목호들은 원나라 말을 명에 보낼 수 없다며 제주목사와 명의 사신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고려는 최영장군을 앞세워 각 도의 군사를 불러 모아 진압하였다.


당시 제주 목호세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파병된 전함이 314척이었고 병사가 2만 5,600명 이었다 한다. 목호의 잔당을 토벌할 때 진을 친 곳이 [법환포구]이며 당시 군사들의 막사가 있었다하여 “막숙”이라고도 부른다.  이어 발길이 다시 머무는 [두머니물]법환마을강정마을의 사이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법환포구

이곳은 2마을 면이 물이라 하여 머리 (頭), 낯 (面), 화할 (怡)를 뜻하고 있다 하는데, 옛 부터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은 고기잡이를 위한 바다경계 이권충돌로 싸움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해녀나 어부들이 상호 조심하며 인사를 나누고 화합을 다짐하던 지역이라 한다.


따라서 두머니(頭面怡) 물이라 불러지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두머니물은 파란하늘과 끝없는 바닷가에 칠흑 같은 검은 자갈이 연출하는 이색적인 평화로움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해녀체험 풀장

다시 놀멍 쉬멍 해안 길을 따라 [일강정바당올레]를 향해 걷는다. 거친 야생풀들과 검은 현무암이 뒤엉킨 투박한 길을 지나다 이름 모를 야생화와 바위틈새 고개를 내민 초록풀잎을 바라보며 피로를 날려 보낸다.


두머니물”과 “서건도” 해안구간은 길이 험해 사람이 지날 수 없었던 곳 이였는데 2009년 (사)제주올레가 험한 돌밭을 직접 손으로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을 만들어 제주올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올레라는 의미를 담아 일강정바당올레로 칭했다 한다.

 

일강정바당올레

옛 부터 제주에는 물이 없어 논농사가 거의 없지만 강정동(江汀洞)은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좋아 임금님께 진상하리만큼 좋은 쌀이 생산됐기에 제주 최고라는 의미에 “일강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옛 명성에 걸 맞는 아름다운 올레가 일강정바당올레인 셈이다.



이어지는 [서건도]는 조수간만 차에 의해 한 달에 10차례에 걸쳐 앞바다가 갈라지는 제주판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는 작은 섬으로 알려져 있다. 섬 이름은 땅이 너무 척박한 데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고래가 물 빠진 구덩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썩어죽어 ‘썩은섬’이라 부르기도 하며 부도(腐島)로 표기한다고도 한다.


서건도 전경

하지만 실제로는 섬의 암석이 잘 썩는 응회함으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이 정확해 보인다. [서건도]를 지나 강정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풍림콘도 앞 원두막에는 "바닷가우체국”이 있어 이채로움이 더해진다. 강정천을 지나 [강정포구]에 걸쳐있는 "강정마을"은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언론에 많이 알려진 마을이다.


바닷가 우체국

평화로움이 배어 있는 모습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주민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가능하면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강정천]을 배경으로 한 추억을 사진에 담은 뒤 11시쯤 포구인근 강정마을 슈퍼에 들러 잠시 막걸리로 피로를 달랜 뒤 다시 걷다보니 월평(月坪)포구 표지판이 보인다.


강정천

제주올레 [월평포구]는 “달빛을 은은하게 품은 작고 아름다운 포구”로 묘사돼 있다. [월평포구] 주변에는 자연이 만든 [바다목욕탕]이 있는데, 탕(湯)은 바다 속 화산암들로 기묘하게 둘러싸여 욕조모양을 만들고 있다. 엄마품속 같은 평온한 월평포구에 어둠이 내리면 월광(月光)에 비춰질 곱다란 선녀들의 달빛품은 자태를 떠올려본다.


월평포구 바다목욕탕

반가운[ 7코스] 종착지를 눈앞에 두고 [굿당산책로]에 들어서는데, 깎아진 밭을 끼고 야자수 사이를 걷기도하고 소나무 숲을 지나기도 한다. 이곳은 먼 옛날 [월평마을]에 안녕을 기원하던 굿당이 있어 그 곳을 찾아가던 길이라고 한다. 남은 길을 재촉해 12시 20분, 7코스 종착지인 [아왜낭목]에 다다른다.  


▷  8코스 : 월평 아왜낭목 대평포구  


올레 [8코스]는 서귀포시 월평마을 [아왜낭목]을 출발해 [중문관광단지]를 거쳐 안덕계곡의 [대명포구]에 이르는 총 17.8km 해안 길로 6시간이 소요된다.


아왜낭목/ 약전사/ 대포포구/ 주상절리안내소/ 배릿내오름/ 예래생태공원/ 논짓물/ 대평포구     


오전에 출발했던 [7코스]는 당초거리를 잘못 계산해 일정시간이 1시간이상 늦어졌기에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화훼마을로 지정된 [아왜낭목]에는 아왜나무 군락지가 있다. "아왜나무"는 주로 남해 바닷가 산기슭에 분포하는 교목(喬木)으로 방풍림으로 쓰이는데, 오래전 어촌마을에 달의 정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심었다고 한다.

 

아왜나무

제주방언으로 보면 “”이 나무를 뜻하니 “낭목”은 나무가 있는 동네어귀를 지칭한 것으로 여겨진다. 흰색 꽃으로 단장한 월평마을 아왜나무 향기가 싱그러운 유월 바람을 타고 코끝에 전해지는 느낌을 간직한 채 무거워진 발걸음을 위로하며 [8코스]를 시작한다.

 

8코스 출발지 [해안누리길]

길을 따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약천사(藥泉寺)는 30여m 드높은 삼단지붕이 바다를 향해 비상하듯 활짝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다.


약천사

[올레길]을 걷다보면 매번 마주치는 제주 바윗돌이 저렇듯 까맣게 타들어간 까닭이 무엇일지 스스로 선문답(禪問答)을 해보며, 그 옛날 귀양길에 올랐던 숫한 선인(先人)들의 응어리진 속내가 저리도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것이란 생각에 머물러 본다.



4년간의 위리안치(圍籬安置)에 피를 토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던 광해(光海)의 처연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에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구멍까지 숭숭 뚫린 것인지 제주는 슬픈 옛 역사를 또렷치 기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길을 따라 나타나는 [주상절리]를 감상하다보면 이내 [대포포구]가 나타난다. 대포는 “큰개”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곳 포구는 작고 한적해 보이는 포구이다. 중문단지 축구장을 지나면 좌측언덕 해안가에 "대포연대"가 있다. 연대(煙臺)는 옛날 봉수대 역할을 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해송 숲 사이로 먼 바다와 중문단지 경관을 바라보기에 좋은 전망대이다.


대포연대

오후 2시 [지삿개] 인근  “대기정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길이 끝날 즈음 각진 기둥이 겹겹이 쌓인 웅장한 [지삿개 주상절리대]가 나타나는데 검은 기둥에 부딪혀 퍼지는 하얀 파도가 멋진 색의 향연을 베푸는 듯 보인다. [주상절리]는 화구에서 바다로 밀려내려온 용암이 바닷물에 닿아 굳어지며 형성된 사각과 육각의 긴 기둥모양이다.


지사갯 주상절리

[울릉도] 주상절리가 아담한 규모를 지니고 있는 반면, 이곳의 주상절리는 국내최대 규모라고 한다. 바다에 서있는 일반 바윗돌과 달리 지삿개 주상절리는 화구로 다시 솟아오를 듯 힘찬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


지삿개 주변에는 군데군데 “토겡이”이라는 웅덩이가 있는데 이러한 주변 환경 때문에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웅덩이에 남아있다고도 한다.


      

이어 [배릿내오름] 입구를 지나는데 "배릿내"는 천제연(天帝淵) 사이로 은하수처럼 깊은 내가 흐른다하여 성천(星川)이라 부르던 곳이 [배릿내]가 되었다 한다. 16시경 [중문관광단지]를 거쳐 자연생태 마을인 [예래생태공원]을 지나 [논짓물]에 이른다. 제주에서 “물”이란 지명은 대부분 용출수나 지하수가 나오는 지명이다.



제주도는 용출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해안에 위치한 용출수는 바닷물이 아니라 담수가 솟아나오기에 대부분 [노천목욕탕]이 만들어져 있다. 짠물에서 물질을 하고 나와 담수로 몸을 씻기 쉽도록 한 것이다. 이곳 논짓물은 다른 노천탕과 달리 남녀를 구분하는 벽이 없는 "노천탕"의 형태라고 한다.


논짓물 천연해수욕장

이어지는 [하예포구]에는 "진황등대"가 우뚝 세워져 있다. 이 등대는 일본에서 성공한 강진황씨가 고향마을에 세웠다하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연으로 길손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진황등대

지칠 대로 지친 발길이 작은 포구에 닿으며 7시경 [8코스] 길이 끝나는 [대평포구]에 이르는데 저녁 빛이 잔잔한 일몰이 내려앉는 포구를 품은 “용왕난드르”가 마을전설과 함께 일행을 맞이해준다. 용왕난드르는 용왕 아들이 살았던 길게 뻗은 드르(들판) 지형을 의미하는 말로 대평리의 옛 명칭이라 한다.  



대평포구는 바다와 노을빛이 어우러진 포구로 자연이 품어안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작은 마을이다. 어느새 잔잔한 물결위에 등대불빛이 깜박이며 색다른 포구의 야경이 빚어진다.



일행은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중문단지]로 나와 33km를 강행했던 지친 다리를 달래려 “귤향기펜션”에 이틀간 숙소를 정했다. 당일 [7~8코스]를 10시간 가량 걸어야했던 일행들의 지친 귓가에는 올레길에서 만났던 해녀들의 가쁜 숨비소리가 아련하게 스쳐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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