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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l 10. 2016

제주올레길 탐방(04)

한라산 백록담


■  제주올레길 탐방(04)

     

제주탐방 나흗날 한라산 [백록담] 등정에 나선다. 5시에 기상해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6시 20분 [중문단지]를 출다. 사흘간 이어진 무리한 트레킹으로 지친 일행들은 누적된 피로로 기상시간이 늦춰지길 바랐지만 한라산등정 특성상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  한라산 백록담

 

1시간을 달려  성판악에 도착해 휴게소에서 김밥과 물을 준비하고 빠질 수 없는 막걸리도 챙겨 넣는다.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보 구름에 가있을 백록담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7시 30분 성판악을 출발한다.


성판악/ 속밭대피소(4.1km)/ 사라오름입구(1.7km)/ 진달래밭대피소(1.5km)/ 백록담(2.3km)


한라산탐방로 안내판에는 해발 1,950m에 [백록담]이 있는데, [성판악휴게소]가 해발 750m에 위치해 있으니 실제 [한라산]은 1,200m를 오르는 셈이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9.6km는 일반인의 경우 4시간 30분정도 오르게 된다.



성판악입구에서는 8시 30분 이후에 등산을 통제하며 진달래대피소에서는 12시 30분 이후 정상에 오르는 것을 통제한다. 정상에서는 오후 2시 30분까지 하산해야하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야한다. 성판악코스 초입인 네모 문기둥을 통과하면 가늘고 키 작은 나무들이 길을 따라 있는데 가파르지 않은 길이 이어진다.



첫 번째 쉼터인 [속밭대피소]가 나올 때 까지는 평지 자갈길과 나무 미끄럼방지 턱이 있어 걷기 무난하다. 작은 나무길이 끝나고 나면 높다란 나무길이 나오며 올라갈수록 길이 조금씩 험해지고 가파러 지지만 삼나무 숲길 향기를 맡으며 삼림욕을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뒷동산 같은 숲길이 있고 울창한 전나무 숲길과 간간히 누워있는 고목(古木)과 함께 키 낮은 풀들이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라산만의 독특한 풍광(風光)을 이루고 있다. 한라산은 백록담에 관한 몇 가지 설화가 전해지는데 거신(巨神) 설문대할망 자주 등장한다.



"설문대할망"은 얼마나 몸집이 컸는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한 발은 [마라도]에 다른 한 발은 제주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다. 빨래를 할 때는 [성산일출봉]을 빨래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았다고 한다.


설화로 전해오는 [설문대할망]

어느 날 [한라산]에 머리에 베고 누웠는데 꼭대기가 뾰족해 잠을 잘 수 없어 주먹으로 산 정상을 내리쳤는데 이때 움푹하게 패여 백록담이 됐다는 것이다. 이때 잘라 던져버린 부분은 제주도 서남쪽에 산방산(山房山)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산은 해발 345m밖에 되지 않는 용암이 굳어 생긴 작은 돌산이다.



그런데 산방산 밑 둘레 길이가 절묘하게 한라산 정상 지름과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더욱이 바위재질이 한라산 정상부와 같은 조면암(粗面岩)이라 하여 한라산에서 잘려 떨어졌다는 전설에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한다.


속밭대피소

이러한 설문대할망 전설은 옛 부터 물질을 비롯해 밭농사와 집안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던 강인한 제주여인을 상징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 [속밭대피소]를 지나서부터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있는 돌계단의 연속이다.


투박하고 거친 돌계단 길

성판악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샘터를 지나면 머지않아 [사라오름입구]와 함께 사라오름 분화구를 볼 수 있는 탐방로가 나온다.  지친 심신으로 탐방로는 포기하고 1시간가량을 더 오르니 어느새 평탄한 길이 나오며 10시 30분 [진달래밭대피소]에 다다른다.


진달레대피소

잠시 탁 트인 전망대 정상에 도착한 착각에 빠지며 휴게소에 머물러 쌓인 피로를 풀어본다. 이곳에는 한라산 명물인 컵라면과 커피, 생수 등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정상을 향해 남은 2.3km를 향해 출발하는데, 이후부터는 그늘이 없는데다 경사도 높고 이어지는 돌길이 녹녹치 않은 구간이 펼쳐진다.



1,800m쯤을 오르니 정상까지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진 길이 나오는데 계단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맑은 하늘과 함께 나무가 없는 확 트인 초원지대가 나타나며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어 정오(正午)에 올라선 1,950m [백록담]은 “하도 높아 꼭대기에 올라 손을 뻗으면 은하수가 손에 잡힌다”는 속설을 가진 남한 최고의 봉우리임을 확인시켜준다.



[성판악] 출발지의 흐린 날씨로 걱정을 하며 정상에 올라보니, 청명하게 개인 푸른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일행을 반긴다.  하지만 정상(頂上)은 [한라산]에 걸쳐있는 새하얀 구름밭에 가리어 멀리 제주산하의 아늑한 풍경은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옛날 백록담은 구름 속에 둘러싸여 천혜의 신비를 간직한 채 신성한 샘물을 마시는 하얀 사슴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국립공원 한라산의 [백록담]은 한해 이곳을 찾는 30여만 등산객의 발길이 잦아지며 자연의 순환이 끊기고 말았다한다.


백록(白鹿)

현재 등산로 휴식년제에 따라 [어림목]과 [영실코스] 등반을 일부 통제하고 있다지만, 백록담 화구(火丘) 일부는 정상부와 바닥사이에 수백 개 바윗돌로 채워진 돌길이 형성돼 있고 황토 빛 바닥을 드러낸 한라산 정상은 호수의 신비감이 온데간데없다.



2015년 올랐던 백두산 天地는 해발 2,750m로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데 그 까닭은 천지는 아래에서 지하수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칼데라(Caldera) 호이고, 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눈발이 심하고 안개와 비가 잦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백두산 천지

천지 산정(山頂) 담수는 3개 샘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지하수가 70%이고 자연강수는 30%로 이뤄져있다 한다. 천지에 지하수 비율이 큰 것은 지하심처 마그마가 열을 방출하며 냉각과 고열과정에서 생긴 대량의 수증기가 지하온천수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라 한다.


이에 반해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는 화산토로 이뤄진 섬이기에 흙 자체가 다져지지 않는 푸석푸석한 토양과 돌로 형성돼있고, 현무암으로 생성된 한라산백록담은 물이 고이기는 하지만 화산토 밑바닥으로 고인물이 쉽사리 빠져버리기 때문에 여름철 우기에는 물이 많다가도 건기에는 이내 말라버리는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

또한 지난날 백록담 남벽과 북벽은 사람들이 호수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다닌 길이 빗물로 파이고 토양침식도 발생됐다는 것이다. 향후 기후변화에 따른 강수량부족으로 [백록담]의 모습은 더욱 황량(荒涼)해질 수밖에 없을 듯 보여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일행은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이뤘다는 뿌듯함을 담아 백록담 기념사진을 남기고 김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1시경 하산 길에 나선다.



나흘째 이어진 강행군으로 지친 발목을 감싸주고자 등산화 끈을 다시 동여맨 뒤, 희뿌연 구름 속을 뚫고 거친 돌을 내밟으며 하염없이 모진 길을 내려와 5시 20분 [성판악]에 도착했다. 탐방 후 빠듯한 일정으로 힘들게 걸었던 제주올레 여정(旅程)을 되돌아보며 [백록담]에 관한 학술지를 찾아보니 담수에 관한 기록이 소개돼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들은 백록담 수심을 파악해 2∼3m로 기록한바 있고, 1601년 김상헌의 남사록(南史錄)과 1875년 최익현의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에는 수심이 무릎에서 허리정도라고 기록하여 작은 연못정도로 표현했다고 한다.       


구름속 연무에 잠겨있는 하산길

한라산국립공원  연구소가 조사한 학술탐사는 100여회에 걸친 평균수위 측정결과 담수깊이가 1.62m임을 밝힘으로써 백록담 평균수심이 1m 내외를 유지하는 것이 정상이라 했다.


따라서 비가 많은 해는 만수위(滿水位)를 보이고 가뭄이 극심할 때는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통상적인 현상이라 한다. 하지만 자연재해인 집중호우, 강설과 결빙, 해빙에 의한 백록담 암벽붕괴 방지대비책 등은 끊임없이 강구되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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