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6코스] 시작점인 서귀포 [쇠소깍]은 효돈동(孝敦洞)의 옛 이름으로, 효돈촌 하구에서 솟아나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깊은 늪을 이루고 있어 [쇠소깍]으로 불렸다고 한다. “쇠소”는 쉐둔(牛屯)의 소(沼)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깍”은 하구(河口)를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전설에는 “이곳에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용소(龍沼)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지며 가뭄이 들면 마을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는데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는 지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아침8시 숙소를 나와 먼저 관광지인 쇠소깍 계곡을 들러본다. 쇠소깍에는 18℃ 용출수(湧出水)가 있어 깊은 늪지와 함께 멋진 계곡이 형성돼 있다. 효돈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에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진 기암괴석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 신비로움에 발을 떼지 못하고 잠시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들어 본다.
아름다운 쇠소깍 계곡 풍경
탐방 둘째 날 시작되는 제주올레길 [6코스]는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총13.5km로 4~5시간 소요된다. 쇠소깍 용출수가 합류하는 하효강과 멀리 2개의 등대를 바라보며 걷는 해안도로에는 제주해녀 조각상과 검은 돌로 쌓아올린 소박한 쇠소깍 돌카페가 정겨움을 더해준다.
쇠소깍 돌카페
이어 하효리 갯가인 소금막을 지나 쇠소깍 등대 항포구 뒤쪽으로 걷다보면 넓은 바다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나타나는데 이 바위가 바다를 향해 집게발처럼 우뚝 솟아있는 [생이돌]이다. 바다철새나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생이돌
[생이돌]의 “생이”는 새를 일컫는 제주방언으로 생이돌 위에는 갈매기를 비롯한 가마우지 새들의 똥이 쌓여 하얗게 색이 변해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생이돌]은 모자(母子) 바위라고도 불리는데 먼 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푸른 바다가 출렁이는 생이돌 옆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제주도가 화산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려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이 초승달처럼 생긴 게우지코지이다. [게우지]는 전복내장을 일컫는 “게옷”을 의미하며, [코지]는 “곶”의 제주방언으로 이곳 형상이 전복내장 모양을 닮았다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게우지코지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에 담아두고 걷다보니 돼지를 껴안고 있는 돌하루방 옆에는 “놀멍, 쉬멍, 보멍, 감서”가 쓰여 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해변 길 바닷가에는 해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숨을 내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종달새 울음소리처럼 들려오는데 순간 해녀들의 고달픈 삶에 무게가 엿보여지는 듯 느껴진다.
놀멍, 쉬멍, 보멍, 감서 표지석
굴곡 없는 평탄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숲길이 시작되는데 길가에 피어있는 수국이 수줍은 듯 고운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울창한 숲은 해를 가리고 있다. 이어 [제지기오름]이 나타나는데 이곳 오름은 평탄할 것만 같던 6코스를 잠시 겁먹게 하는 예상 밖의 길이었다.
제지기오름 계단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350m거리를 걷다보니 이내 85m 정상에 오른다.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보목포구"와 무인도인 “섶섬”과 “문섬” 그리고 마을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이 [오름]은 남쪽중턱 굴이 있는 곳에 절과 사찰을 지키는 절지기가 있었다하여 "절지기오름"으로 불리다가 "제지기오름"이 됐다 한다.
오름 정상에서 [본 보목포구]와 [섶섬]
오름을 내려온 시간은 9시 30분, 구멍 뚫린 현무암 보도블록을 따라[보목포구] 해안길이 이어지는데 왼쪽에는 눈앞에 "섶섬"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은 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LIKISS VILLAGE”가 이국적인 분위로 다가온다. 어느새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는 [구두미(龜頭尾)포구]에 도착해 돌계단을 올라 해안으로 나간다.
라이키스 빌리지
[구두미포구]를 지나 이어지는 곳은 제주의 숨은 비경 [소천지]이다. 소천지로 향하는 좁다란 숲길을 걷다보면 나뭇잎사이로 간간히 드러나는 바다풍경에 예가 낙원이란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10시경 도착한 소천지(小天地)는 백두산 천지를 축소해 옮겨다 놓은 듯 천지를 빼닮아 있는데 그 규모기 작아 눈에 잘 뜨지 않기에 착한사람 눈에만 보인다고도 한다.
소천지
길 따라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스킨스쿠버 아가씨가 잠수를 준비하고 있어 함께 기념사진도 담는다. [6코스]는 바닷가 숲길과 해안도로가 반복되다보니 도로 옆 소나무 잔디길을 걸으며 지루함을 달래본다.
이어 백록정(白鹿亭) 표지석을 지나 나무 그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멀리 "문섬"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보기도 한다. 보목 하수처리장을 지나 2시간 40분 걸어 도착한 곳은 토평동 어촌계 "해녀의 집"으로, 이곳 [검은여쉼터]에서 쉬어간다.
쉬는 곳마다 빠지지 않는 제주막걸리로 목을 축인 뒤 갓 잡아 올린 소라회도 맛보고 물도 보충한 뒤 다시 길을 나선다. 검은여쉼터의 [여]는 제주방언으로 바닷가 "바위섬"이라 전한다. 쉼터 옆 KAL관광호텔을 끼고 길을 나서는데, 호텔에는 널따란 잔디와 야자나무 아래 텐트촌도 있다.
검은여쉼터(우측)
"소정방폭포"를 향해 남방나무 가로수 길을 가는데, 때마침 슬쩍 비치는 빗방울이 길손들에 더위를 식혀준다. [소정방폭포]는 작은 규모이지만 시원하게 내리꽂는 물줄기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나게 한다. 이곳 폭포 물줄기는 계곡인근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용출수가 근원을 이룬다고 한다.
소정방폭포
[올레안내소]를 거쳐 B코스인 나무데크 길을 빠져나오니 정방폭포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폭포로 다가가 기념사진을 담은 뒤 중턱에 머물며 잠시 시간을 묶어두고 멍게, 해삼에 한라산 소주를 곁들여 본다.
정방폭포
이어 서복(徐福)공원을 따라 길을 재촉해 "밤섬"이 바라다 보이는 서귀포항에 1시 30분 도착해 시내 추자도맛집을 찾아 제주특산 “자리물회”로 지친 기력을 보충해본다. 추자도가 고향이라는 주인아주머니 손맛 때문인지 일행들은 이곳 자리물회 맛이 단연 으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서귀포항을 지나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거쳐 가는데 폭포는 입장료를 내고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야 하는 곳이기에 이번 여행은 올레길 탐방에 초점을 맞춰 그냥 지나치며, 새연교를 건너 "새섬"으로 진입해 주변경관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려 폭포전망대에 오른다.
새연교
2009년 개통된 [새연교]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다리” 에 의미라고 한다. 이어 길가 별빛옥상 카페에서 바밤바로 더위를 식힌 뒤 [삼매봉오름]을 오르는데 지친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피로감이 더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지연폭포]
삼매봉(三梅峰)은 정상에 봉우리가 3개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 전망대 남성정(南星亭)에 오르니 서귀포 신시가지와 새섬, 범섬, 문섬, 섶섬 등의 무인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성정
[삼매봉]의 경사진 계단 길을 내려오면 [6코스] 마지막 관문인 "외돌개" 주차장이 보인다. 삼매봉 남쪽기슭 앞바다 20여m 높이에 [외돌개]는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할망바위”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루방을 외치며 통곡하다 바위가 됐다고 한다.
[삼매봉]에서 바라본 무인도
올레길 [6코스]는 해안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금막]과 [서귀포 시내]와 [천지연 폭포 위 산책로]를 걸으며 아름다운 해안과 도심을 함께하는 올레길이었다. 또한 기암들이 엮어내는 경관과 코발트블루 제주바다의 탁 트인 전망이 함께 어우러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이었다.
▷ 제7코스(01) : 외돌개 솔빛바다 – 돔베낭길
외돌개/ 돔베낭길/ 서귀포여고
제주올레 [ 7코스]는 외돌개를 출발, 법환포구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해안올레로 외돌개 [솔빛바다] 입구에서 월평 [아왜낭목]까지 총14.7km로 약 5시간 소요된다. 7코스 시작점 [외돌개]에도 간세표지판과 파란화살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출발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를 훌쩍 넘어있다.
올레길 7코스 [솔빛바다] 입구
올레길에 파란화살표는 반갑기도 하지만 간혹 일탈하고 싶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탐방첫날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 자연경관에 절로 탄성을 질렀지만 둘째 날을 반나절 넘기니 나이 탓인지 감흥도 다소 줄어드는 듯싶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보이는 푸른빛 찬란한 바다와 그 푸르름에 내려앉은 하얀 빛 무리는 형언할 수 없는 감흥으로 전달돼 다시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7코스]는 해안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고 하는데, 바다위에 홀로 곧게 서있는 [외돌개]부터 어찌 저리 생성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솔빛바다와 [외돌개]
바다속 둥그런 연못을 연상케 하는 풍경은 동화 속 선녀들이 몸을 적셨을 법한 신성함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외돌개]와 함께 멀리 바라보이는 "범섬"과 "푹풍의 언덕"을 3대 절경으로 꼽고 있다고 한다. 절벽 위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한쪽으로 서귀포 바다와 무인도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멀리 바라보이는 [범섬]
[외돌개]를 지나 구불구불한 해안절벽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위치에 따라 주변풍경도 함께 따라 바뀐다. 눈앞에 범섬이 따라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문섬이 고개를 내밀며 환상적인 무인도 해안절경이 펼쳐지는데, 길게 뻗은 주상절리(柱狀節理)의 해안절벽아래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동굴이 곳곳에 눈에 띈다.
주상절리인 [폭풍의 언덕]
한쪽으로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신선함을 마음껏 호흡해본다. [7코스]가 시작되는 [외돌개]에서 [돔베낭길]까지 코스는 2.6Km로 대부분 길이 나무데크로 잘 정비돼 있어 편안히 걸을 수 있다.
구간의 매력은 돔베낭 계단을 올라 바다를 낀 [해안절벽]과 [소나무] 및 [야자수]가 울창한 숲이다. 제주어로 "돔베"는 도마를 뜻하고 "낭"은 나무이기에 [돔베낭 골]은 도마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의미인 듯하다.
돔베낭길
하지만 지금은 옛 돔베낭 골은 찾아볼 수 없으며 골짜기라기 보다는 바닷가 절경에 가까운 곳이다. 이 구간은 [제주 올레길] 전체를 통틀어 한적하게 걷는 길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걷는 유일한 올레길 구간이라고도 한다.
유월 초여름을 머금고 있는 올레길은 진한초록으로 물들어 있는 풀숲 자연의 싱그러움이 배여 있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 뒤로 푸른 바다가 마냥 머물러 있기에 길손들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풋풋한 풀냄새에 바닷바람을 쐬며 걷다보니 어느새 [돔베낭길]의 끝부분을 지나 [서귀포여고]가 나타난다.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지만 사전예약 없이 방을 잡는 것이 용이치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서귀동 갈치전문점으로 소문난 “네거리식당”에서 저녁을 마친 뒤 찜질방에서 묵어가기로 했다. 객지 찜질방에서의 일박은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선잠으로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