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나스카(Nasca)
6월 11일 여행 나흗날, 사라진 문명 중 외계인이 그렸다는 설로 의견이 분분한 [나스카 라인]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페루의 이튿날을 맞는다. 이른 아침 7시에 경비행장으로 이동하기위해 서둘러 6시에 식사를 마쳤는데 웬일인지 보슬비가 내린다. 이 때문에 항공사로부터 비행 출발지연이 통보됨에 따라 기약 없이 숙소에 머물게 됐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며 혹시 지상에 그려진 대형그림을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10시30분 첫 비행스케줄이 정해져 9시 호텔출발을 통보받았다. 나스카에는 연중 1~2회 정도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때마침 그 귀한 비를 대하니 혹시 천재일우 (千載一遇)가 아닐지 더 큰 행운을 기대해 보았다.
버스를 타기위해 밖으로 나오니 좁다란 이면도로에는 90년대 대우차 모델인 티코와 마티즈 등 오래된 중고소형차가 즐비하다. 페루는 수도 리마를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대부분 소형 중고차를 몰고 다니는 듯 보인다. 나스카 Casa Andina 호텔 앞, 버스정류장에는 콘도르의 문양이 패여 있어 페루의 전통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 나스카(Nasca)
페루남부에 위치한 나스카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453km 떨어져있다. 태평양연안과 안데스산맥사이 해발 620m에 자리한 나스카는 황량한 땅으로 이어진다. 다만 근교에 잉카문명 이전인 9세기경 번성했던 프레잉카(preincaico) 유적이 있을 뿐이다. [잉카문명] 이전 [나스카 문명]은 BC 700년경 페루남부 나스카 강을 중심으로 번성했었다.
나스카지역은 [파라카스 문명]의 전통을 이어받아 물고기, 새, 곤충 등을 묘사한 다양한 색의 토기를 사용했다 한다. 15분을 달려 비행장에 도착하자 여행사 부스로 들어가 승객들의 몸무게를 일일이 측정하는데, 개인중량에 따라 비행탑승인원이 정해진다. 따라서 줄을 서서 경비행기에 오르다보면 부부가 함께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탑승은 6인승과 10인승으로 나뉘는데 비행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조정사가 직접 몸무게에 따라 탑승좌석을 정해준다. 비행출발은 인원체크 후 통상 2시간정도 기다리는데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은 오후까지 기다리게 된다고 한다. 남는 시간 일행들은 경비행장 밖에 늘어서있는 기념품가게를 기우적대며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나스카라인은 30여개의 지상화 중 12개 그림을 둘러보게 되는데, 이른 아침 보슬비는 멈췄지만 흐린 날씨 탓에 비행이 늦어질 듯 보여 마음을 느긋이 가져본다. 다행히 11시를 넘기며 첫 비행에 오르게 됐는데, 흐린 날에 첫 비행은 시험비행으로, 하늘에 올라 지상화가 보이지 않으면 곧바로 하강해 다음비행을 다시 기다린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계속 경고음이 울린다. 나스카의 조그만 경비행장은 국제공항 이상으로 검색이 까다로웠다. 일행은 활주로로 나와 부조정사의 주의사항을 듣는데, 흐린 날 첫 비행이 까다로워 이륙이 지연되는 바람에 개인별로 각자 조종석에 올라 멋진 기념사진을 담아내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
11시 40분 세스나(Cessna) 기에 2명 조종사와 함께 6명이 탑승해 하늘로 비상(飛上)하는데, 행운을 빌었던 탓인지 이내 구름이 걷히며 파란하늘이 여객(旅客) 일행을 반긴다. 비행 관람코스는 [고래]-[삼각형]-[우주인]-[원숭이]-[개]-[콘도르]-[거미]-[벌새]- [펠리컨]-[앵무새]-[사람 손]-[나무] 순서로 좌우 2번씩 돌며 30분간 비행을 한다.
소음을 내며 날아오른 경비행기의 부조종사는 헤드폰을 통해 “오른쪽 우주인", "왼쪽 원숭이”라며 한국어로 설명을 전한다. 조종사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최대한 상세히 보여주려는 듯 기체를 선회하며 곡예비행을 반복한다. 하나의 그림은 100m~300m에 달할 만큼 거대해서 하늘위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나스카 유적이 산재한 장소는 총 1,000㎢가 넘는데, 수천 년 전부터 전해온 이 유적이 1940년대에 들어와서야 발견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한다.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나스카 평원의 드넓은 사막표면이 발아래 펼쳐지는데, 급선회를 반복하는 비행기는 나스카라인에 경이로운 그림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기하학적인 선이 보이는 듯 하더니 어느덧 나선형으로 꼬리를 말아 올린 원숭이와 콘도르 등 다양한 지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대평원을 캔버스삼아 그려진 단순한 그림들은 BC 900년경부터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막대기를 이용해 사막표면을 30cm정도를 파서 그 속에 있는 밝은 색의 흙이 드러나 보이도록 했다.
걷어낸 검은 돌들은 옆에 둑처럼 쌓아놓는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나스카라인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성 건조기후덕분에 지금껏 그림이 살아남아 있다. 거인 손으로 그린 듯 한 그림들은 공중에서 내려다봐야 전체윤곽이 드러나는데, 평원을 뒤덮은 검은 돌과 흙을 긁어낸 그림이 무슨 목적으로 그렸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지상에 남겨진 이 거대한 그림이 원주민의 설화에 담긴 하늘을 나는 조인(鳥人)이 그린 것인지 또는 외계인이 교신을 위해 그린 것은 아닌지 그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이드 의견으로는 이 도형들이 나스카의 도자기나 직물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안데스문명의 오랜 전통에서 나온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
페루의 나스카가 전 세계 여행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여전히 인류가 궁금해 하는 고대신화를 통해 현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스카 라인]이라는 나스카 문명의 지상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역사학자 폴 코소크(Paul Kosok) 덕분이었다.
그는 1939년 페루 해안지방의 고대 관개(灌漑)시설 연구를 위해 나스카를 방문했다가 하늘에서 우연히 드넓은 평원에 새겨진 기하학적 도형과 선을 발견하고, 비행기를 전세 내어 지상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들을 확인한 뒤 지상화 존재를 발표했다. 이후 독일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가 연구조사를 통한 결과물을 기록으로 남겼다한다.
세스나(Cessna)를 타고 하늘에서 나스카 지상화를 둘러보며 현대과학으로 풀리지 않는 지구의 불가사이 한 현장을 찾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충족감이 뿌듯하게 채워졌다. 하강 후 나스카라인 비행인증서를 받고 조정사와 함께 기념사진도 남겨보는데, 페루에서의 이틀간 체험은 내게 색다른 경험이 되어 멋진 스토리텔링으로 탄생할 듯싶었다.
늦은 오후시간 점심을 마친 뒤 버스에 올라 리마로 돌아가기 위해 북쪽으로 7시간을 달려가는데 페루 관광버스는 장거리를 이동하기에 운전기사 2명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는 것이 특이해 보였다. 또한 고속도로는 온통 사막길이기에 휴게소가 없고 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주유소 겸 휴게소가 단 1곳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투어버스에는 간이화장실이 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나스카인근 고속도로 풍경은 온통 돌사막으로 펼쳐져있다. 저 멀리 보이는 돌산은 검정과 붉은색 및 갈색 등 다양한 빛깔을 띠고 있다. 하지만 황량하고 척박한 돌사막에도 간간이 푸른 밭을 일군 옥수수 군락(群落)이 보이기도 한다.
돌아가는 길에 내일 방문하게 될 쿠스코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가이드의 충고가 제법 장황하다. 쿠스코 일정은 무엇보다 고도적응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여야 하고 생수를 많이 마시라고 한다. 특히 술은 금기사항이며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권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페루의 6월 날씨는 0℃~30℃이며 초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초순기준으로 리마는 17~22℃, 이카와 나스카는 12~33℃, 우르밤바는 3~19℃인데, 쿠스코는 0~17℃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쿠스코에서는 아침에는 점퍼, 오후는 티셔츠, 저녁은 패딩점퍼를 준비하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한다.
이어지는 가이드설명에 의하면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철저한 백인화에 실패한 곳은 페루와 볼리비아 단 2곳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 페루인구는 원주민 45%, 혼열인 35%, 백인 15%. 동양인 5%라고 한다. 페루언어는 에스파냐(Espana)어와 잉카언어인 케추아(Quechua)어 및 아이마라(Aymara)어를 사용하고 있다.
장거리구간을 촉박하게 이동해야하는 일정에 지친 여객들이 곤히 잠들어있는 사이 단 한번 쉼 없이 논스톱으로 7시간을 달려 19시30분 리마에 도착했다. 하루일정을 돌아보니 오직 나스카라인 30분을 보기위해 새벽 5시에 기상해, 5시간을 대기하며 세끼식사 3시간을 포함해 차안에서 8시간을 머물며 총 16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오후 8시경 한인식당에서 등심으로 식사를 마치고 첫날 묵었던 쉐라톤 호텔로 다시 돌아와 다음일정을 준비하는데, 내일도 쿠스코 공항으로 가기위해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한다고 하니 페루여행은 정말 힘든 여정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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