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Machu Picchu)
점심식사를 마친 오후시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마추픽추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등성 도로를 달려 14시경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다. 마추픽추 매표소에서도 출입 시 여권을 제시하고 확인을 받아야한다. 가파른 길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니 홀연히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장엄한 산봉우리와 옛 도시 모습에 전율(戰慄)이 일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여행객들이 흐린 날씨나 안개와 구름에 가리어 온전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없다했는데, 이번여행은 나스카에서 비를 만난 천재일우 때문인지 신비로운 마추픽추의 속살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어느 한 곳 가려진데 없이 깨끗이 드러나 있고 뒤로는 와이나픽추(Wayna Pikchu)가 우뚝 서있다.
신기한 것은 [마추픽추]가 향해있는 하늘은 회색구름이 두텁게 드리워져 있는데 [와이나픽추] 위에는 하얀 뭉개구름 위로 파란하늘이 열려있다. 같은 공간임에도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각기 다른 하늘이 열려있는 듯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상을 오르다보면 유적지를 감상하기 좋은 작은 오두막이 세워진 전망대가 있다.
오두막에서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면 사방이 험준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하늘에 떠있는 듯한데, 와이나픽추(2,800m)는 마추픽추(3,000m)와 마주하고 있다.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나이든 봉우리“를 의미하며, 맞은편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마추픽추가 다소 높기에 더 늙었다고 생각한 잉카인들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 마추픽추(Machu Picchu)
남미여행을 떠올린다면 단연코 세계7대 불가사의 최고로 [마추픽추]를 꼽을 것이다. 따라서 걸어오르기도 힘든 산꼭대기에 세워진 잉카제국의 공중도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여행자들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방송 “꽃보다 청춘”으로 소개가 됐지만 아직도 생경(生梗)한 페루는 그 수고가 아깝지 않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마추픽추는 페루남부 안데스산맥의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의 공중도시로, 15~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던 잉카족이 살았던 곳이다. 지금의 마추픽추는 400년 동안 숨어 있다가, 탐험가이자 예일대교수인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1911년 왕궁과 신전을 발견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발견당시에는 이곳에 2~3가족 정도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180여구의 유골이 발견됐는데 이중 남성유골은 없었다한다. 여러 가설 중 전쟁에 대비해 만든 피난용 도시 또는 잉카귀족의 여름휴양지 등 특별한 목적에 기능도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물끄러미 공중도시를 바라보며 어떻게 높은 산 정상, 넓지 않은 공간에 거대한 돌을 쌓은 도시를 세울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해 보일뿐이었다.
마추픽추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안데스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하며 울창한 삼림과 뾰족한 봉우리들로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다. 천혜의 요새에 자리해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우르밤바 강이 입구를 차단해 접근이 용이치 않았기에 “숨겨진 공중도시“라 불리며, 1956년 발굴을 시작해 1974년 복원이 완료되면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이 전체의 30%에 불과하다고 하니 여전히 70%는 어둠속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추픽추는 복원이후 수많은 방문인파로 유적훼손을 우려한 유네스코가 페루당국에 관광객통제를 요청해 매일 한정된 인원만 입장시킨다. 하지만 인근 원주민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유적보존대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한다.
공중도시는 [와이나픽추]와 [마추픽추] 사이에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평탄해 자연지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건설한 것을 알 수 있다. 태양 신전과 콘도르 신전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배치돼있다. 무수한 석축과 건축물, 3,000여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도시 앞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마추픽추의 너른 조망대에는 세계여행객들로 분비고 있는데, 곳곳에 "라마"와 "알파카"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라마와 알파카들을 풀어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의 자연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동물이었다. 수많은 여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귀찮게도 하지만 아랑곳 않고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멋진 풍광을 마음껏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30분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저곳 방향을 달리해가며 마추픽추의 공중도시를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 소중한 추억을 담아낸다. 사진풍경 속 마추픽추는 신전과 주거지를 중심으로 총면적이 5㎢에 달한다. 유적주위는 높이 5m, 너비 1.8m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건축물의 벽은 제각기 어긋난 모양의 돌들을 “ㄱ”자, “ㄷ“자 모양의 형태로 깎아 정교하게 맞췄다는데, 가까이 가서 바라볼수록 잉카인들의 토목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마추픽추 도시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만 밑에서는 위에 도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분명 경이로운 마법의 도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성벽주변은 곡식과 작물을 재배했던 산비탈 계단식 밭과 지붕 없는 주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잉카 테라스라 불리는 작물을 키우는 계단식 밭은 각 계단의 높이가 무려 2m나 된다. 계단은 홈을 파 수도관을 만들고 석벽은 돌의 요철 홈을 조합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게 쌓았다.
궁전이나 제사를 지내는 신전은 큰 돌을 쌓아올린 석조물로 세워져있고 평민 집은 일반 돌을 섞어 지었다. 주거지역과 신전사이에는 돌을 깎아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이 건설돼 있다. 공중도시에는 태양의 신전과 콘도르 신전 외 농사를 위해 만든 해시계 등 많은 유적이 있다. 마추픽추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해시계인 인티우아타나이다.
▶ 인티우아타나(Intihuatana)
오두막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2단과 3단으로 깎은 커다란 장의석(葬儀石)이 있고, 이어 계단을 내려가면 사다리꼴 모양의 정교한 돌문이 나온다. 이 출입문을 통과하니 신전, 궁전, 광장, 주택 등이 모여 있는 커다란 유적지가 나온다. 이 유적지의 꼭대기에 인티우아타나라 불리는 제례용 석조물이 있다.
넓은 바위위에 높이 1.8m, 너비 36cm의 돌기둥이 솟아 있다. [인티우아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해시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잉카인들에게는 인티우아타나는 단순한 해시계가 아니라 태양을 붙잡아 바위에 묶어 놓는 성스러운 장소였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재앙이 생긴다고 믿었기에,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제사장은 잉카인이 숭배했던 태양을 붙잡아 이곳에 묶어 두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이는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이라 한다. 잉카인들의 도시중심지에는 항상 [인티우아타나]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 태양의 신전
잉카시대에는 태양신앙이 국가종교로 각지에 태양신전이 건립됐는데 그 중심이 쿠스코의 코리칸차(Coricancha)였다. 그곳에는 신상을 비롯한 수많은 황금장식품이 곳곳에 가득했는데, 정복자 스페인 군들이 약탈해가고 많은 건물을 파괴해 버렸다. 쿠스코는 도시형상이 달리는 퓨마를 상징하고 마추픽추는 비상하는 콘도르를 상징한다고 한다.
마추픽추의 [인티우아타나] 아래쪽에는 중앙광장이 있다. 이 광장은 마추픽추 중심에 해당하는 곳으로 주변에는 여러 신전과 궁전이 있고, 잉카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는 수로가 있다. 중앙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말굽모양에 태양의 신전이다.[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있는 200여 개 건축물 중 가장 독특해 보인다.
커다란 바위에 곡선으로 돌을 쌓은 반원형 건물로 신전 돌벽에는 2개의 창문이 나있다. 창은 정확히 남과 북을 향해 동지와 하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창을 통과해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은 태양의 후예라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던 잉카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신전아래에는 커다란 바위를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만든 동굴이 있는데, 이곳 마추픽추 유적지의 관련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왕실의 미라를 안치했던 능묘로 추측하고 있다. [태양의 신전]은 2백 톤이 넘는 아래 축대인 거석을 나무와 물만으로 두부 자르듯 잘라냈다는데, 다시금 잉카인들의 석재기술에 놀랄 뿐이었다.
신전주변에는 [주신전]과 마추픽추에서 유일하게 2층으로 세워진 [왕녀의 궁전] 및 [곡물창고] 등이 있다. 신전 북서쪽에는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이 있는데, 잉카인들은 신전을 지을 때 3개의 창문벽면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왕궁 앞에는 신전가운데 가장 작은 [콘도르 신전]이 있다.
▶ 콘도르 신전
콘도르 신전은 공간적으로 3단구조로 이뤄져 있다. 지단(地段)에는 콘도르의 주둥이와 히얀 털의 목 부위를 상징하는 제단이 광장의 중심에 놓여있고, 지하단(地下段)에는 감옥이 설치돼 있으며, 지상단(地上段)에는 날개를 형상화 한 자연암석이 비상하듯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잉카문명은 지상과 천상, 지하가 푸마와 콘도르, 뱀으로 인식돼 늘 같은 공간에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동물로 생각함에 따라 살아있는 상태로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밖에 신전 북쪽에는 잉카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수로가 남아있다. 높은 산꼭대기에 바위뿐인 유적사이로 물이 흐르는 풍경과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돌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관개수로는 감탄할 정도다.
▶ 마추픽추 농경지
마추픽추를 이야기할 때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경작지이다. 마추픽추는 절반이 농경지다. 좁고 가파른 계단식 밭에는 배수시설이 마련돼 있어 1만여 명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생산했다고 한다. 가파른 산의 몸통을 깎아 옥수수와 감자 등을 재배했던 계단식 밭들이 있는 산 아래는 까마득히 우르밤바 강이 펼쳐져 보인다.
유적 군락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만들어 놓은 경작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문화유산인 듯 보인다. 2시간가량 마추픽추를 둘러보며 돌을 다루는 정교한 건축기술과 상수도 개념을 도입해 산사태를 막고 작물을 수확하며 정착했던 잉카인들의 지혜에 대해 잠시 압도당하기도 했다.
마추픽추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곳으로 올라와 고대했던 탐방을 끝내고 출입구 밖으로 나오니 공원입구에서는 여권에 마추픽추 답사기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페루여행 중 이어졌던 강행군과 고산증세로 걱정했던 일들이 스쳐가는 순간이었지만, 선명하게 찍힌 스탬프가 마치 고행(苦行)의 완주증명서나 되는 듯 뿌듯함에 젖어본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와 저녁식사를 마친 뒤, 1시간가량 기차역인근 재래시장을 둘러본다. 19시 열차대합실로 들어서니 이곳에서도 잉카 거리악사가 전통악기를 연주를 하고 있다. 우르밤바로 귀환하는 잉카레일의 어두운 차창에 높고 낮은 안데스의 산들이 스쳐간다.
오래도록 꿈을 꿔오며 찾았던 마추픽추는 안데스 자연 속에서 살아갔던 잉카인들의 자취를 감동으로 바라봤던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시간 속 여행이었다. 오얀따이땀보 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에 올라 전일 묵었던 우르밤바 Taypikala 호텔로 향한다. 어둑해진 늦저녁 차장 가로 바라보이는 수많은 밤하늘 별들이 나스카의 별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9시 30분경 숙소에 도착해 다음일정을 준비한 뒤 호텔로비로 내려와 우르밤바의 밤하늘을 다시금 올려다본다. 지구는 북극성을 향한 축을 중심으로 도는데, 둥글기 때문에 지구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지역마다 차이가 난다. 따라서 남반부에 위치한 페루 우르밤바의 밤하늘 별들은 유난히 많고 밝기도 더욱 선명해 보인다.
며칠간 정들만했던 일행들과도 이제 각자의 삶속으로 흩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멋진 일행들과 함께 지구반대편 안데스 산자락에 깃든 맑은 정기를 호흡했던 페루의 진한 기억은 삶에 새로운 활력소로 남아있게 될 것임을 확신하며, 깊은 밤 내 가슴속으로 세차게 떨어지던 그 아름다운 별들에 잠시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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