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봉호/ 황룡동굴/ 십리화랑/ 금편계곡
▷ 보봉호(寶峰湖)
여행 사흗날 돌아본 보봉호는 댐을 쌓고 협곡을 막아 만든 반자연의 산중(山中) 인공호수로 2.5km 길이에 그윽한 주위환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수이다. 무릉원 수경(水景)을 따라 배를 타고 기이한 바위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경관을 둘러본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선상(船上) 가이드로부터 "바위봉"에 얽힌 물에 대한 다양한 사연을 들으며, 보봉호의 수려한 경치에 몰입해 본다. 원주민 남녀 한 쌍이 토가족 전통의상을 입고 배위에서 사랑노래를 잠깐씩 불러주는 것이 이채로워 보인다.
일행을 실은 유람선에서도 토가족 여인이 나와 전통민요를 한곡 부르더니 여행객 중 한 명을 지목해 확성기를 넘긴다는데, 앞줄에 앉아 분위기에 맞춰 열심히 박수를 치던 내가 얼떨결에 지명을 받았다. 가이드 말로는 토가족 여인들이 평소 안경 쓴 남자를 좋아 한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후난성 변방에 위치한 토가족자치주(土家族自治州)는 장자제시(張家界市)와 이웃하며 깊은 산중에 위치해있다 보니 토가족들은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다.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원주민들은 안경을 쓴 남자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선글라스를 쓰고 수염까지 기르고 있던 내가 토가족 여인의 눈에 띄었나보다. 어쩔 수없이 선상에 머문 50여명을 대표해 보봉호의 뱃머리에 올라 평생처음으로 확성기를 통해 갈대에 순정을 열창하는 잊지 못할 추억을 얻게 되었다.
보봉호를 빠져나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종유석 동굴이 있는 황룡동으로 향한다. 동굴의 경치는 우리나라의 성류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동굴내부의 규모와 크기가 엄청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황룡동굴(黃龍洞窟)
현재 여행객에게 개방한 동굴의 총 길이는 11.7km이며, 동굴 내 제일 높은 수직고도는 140m로 산전체가 동굴이라 한다. 산 하나가 속이 텅 비어있는 동굴로 이뤄진 셈이다. 이곳은 1983년 발견된 곳이며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동굴로 중국 10대 용암동굴 중 하나라고 한다.
동굴은 4개 층으로 나뉘어져 동굴 속에 또 다른 동굴도 있고 깊이 7m 이상이 되는 호수가 있어 돌아보는데 1시간 반이 걸린다. 황룡동굴은 들어서면서부터 전체적인 조명이 지나치게 화려해 마치 콘서트홀에 와 있는 느낌이다.
동굴초입에는 좌측 장수문과 우측 행복문이 있는데 2개의 문을 한꺼번에 통과할 수 없어 그 중 한곳을 선택해 통과해야만 한다고 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양쪽 문을 모두 돌아 나왔다. 동굴 1층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4개 층을 돌아본다.
먼저 1층 선착장에 도착해 25명이 탈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 약2km쯤 들어가 전체를 둘러본 후 도보로 3개 층을 관람한다. 동굴에는 밑에서 자라는 석순과 천장 고드름처럼 자라는 종유석이 합쳐져 석주(石柱)가 형성된다고 한다.
100m 이상 높이의 동굴에는 위아래로 닿을 듯 말듯 한 석순과 종유석이 많이 있다. 석순과 종유석은 물기가 유지되지 않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데 가이드는 성장을 멈춰버려 석주가 되지 못한 석순과 종유석의 이름을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고 표현해 여객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황룡동굴에는 신비로운 석순이 많이 있는데 그 중 용녀(龍女)와 용자(龍子)가 댄스를 즐기고 있다는 용무청(龍舞廳)이 있고, 동굴 내 밭을 경작하던 용왕이 부동산투기를 위해 최근 비싼 값으로 내놨다는 천구전(千丘田)이 볼거리를 더해준다.
황룡동굴에서 가장 크고 기이한 석순은 50m둘레에 높이 12m인 용왕보좌(龍王寶座)이다. 또한 동굴의 백미(白眉)이자 최고 봉(峰)인 정해신침(定海神針)은 1998년 무려 1억 위안 보험에 가입되었다고 한다.
동굴의 석순은 통상 1mm 자라는데 1백년이 걸린다 하는데, 이곳 정해신침 높이가 무려 19.2m라 하니, 20만년을 자란 석순으로 가히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황룡동굴은 그 규모면에서 놀라운 웅장함과 기이함을 지닌 지하궁전인 듯 느껴진다.
▷ 십리화랑(十里畵廊)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한 폭의 산수화처럼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으로 이어진 십리화랑으로 향해 모노레일을 타고 협곡사이 경관을 올려다보니 또다시 감탄이 흘러나온다.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은 천자산과 삭계욕 2개의 자연보호구로 나뉜다.
이중 십리화랑은 삭계욕 자연보호구로서 계곡의 길이가 5km로 십리를 조금 넘는다하여 십리화랑이라 한다. 양쪽으로 늘어선 협곡은 기이한 봉우리가 각양각색의 형상을 띠고 있기에, 옛 선비들이 담아냈던 한 폭의 산수화를 또다시 연상케 한다.
대자연을 바라보니 문득, 벼슬을 뒤로하고 낙향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선인(先人)들의 숨결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며 풍경을 감상하는데 그 풍경이 기기묘묘하다.
한 바위 봉우리 중에는 약초를 캐는 구부정한 노인의 옆모습을 닮았다는 노인봉과 자매 셋이 나란히 서 있다는 세자매봉이 인상적이다.
세자매봉의 왼쪽이 큰 언니, 오른쪽이 막내인데 큰언니는 임신을 했고 둘째 언니는 벌써 애를 업고 있다고 한다. 막내는 몇 년째 결혼도 안하고 저리 서있으니, 아마도 계속 독신으로 머물려는가 보다.
▷ 금편계곡(金鞭溪谷)
이어 심산유곡을 따라 대자연의 신비를 볼 수 있다는 금편계곡을 들렀다. 계곡은 장가계 삼림공원의 동부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의 이름은 금편암을 지나서 흐른다 해 붙여진 이름 이란다.
금편계곡 초입에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데 계곡을 따라 상쾌한 공기와 함께 길옆에 천여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어 인상적이며, 특히 입구에 한(漢)나라 장량(張良)묘석이 있고 장쩌민(강택민) 친필휘호의 장가계 기념석이 있어 여행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금편계곡을 끝으로 풍경구의 일정을 모두 들러봤는데 세상 모든 기행문의 집합체가 바로 중국 장가계에 있어 보인다. 장가계는 풍경구의 면적이 264㎢에 달하는데 1982년 중국 최초의 국가 삼림공원이 된 이후, 1988년부터 관광지개발이 시작되어 1992년에는 아름다운 세계문화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다.
■ 장가계 기행(06) ; 열사공원/ 임시정부
장가계에서 사흘간 머물던 개천호텔을 떠나 이른 아침 장사(長沙)로 향한다. 모택동 고향이며, 중국 공산당의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후난성(湖南省)의 중심지 장사로 이동해 오후 인민해방을 위해 희생한 열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열사공원을 방문한다.
▷ 열사공원((烈士公園)
공원규모가 너무 넓어 2천원을 내고 오픈 미니버스를 타고 공원을 둘러보는데 호수도 있고, 4명이 짝을 져 포커하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어느새 몸도 마음도 지쳐 이곳 풍경을 카메라에 상세히 담지 못했다.
공원을 나와 항일운동 당시 백범선생의 자취가 보존되어 있는 장사 임시정부청사를 가기 위해 허름한 골목을 들어서니 우리나라 70년대 재래시장을 떠 올리게 하는 좁은 골목시장이 나온다.
▷ 임시정부청사
골목길을 10여분 따라가면 낡은 임시정부 건물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김구선생은 일본군의 중국점령으로 상해에서 밀려 멀고 먼 장사까지 와 몇 달을 머물렀다 한다.
이곳은 20위안 입장료로 운영되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방문하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묵념으로 시작해 영화 관람과 함께 구석구석 설명을 듣는 동안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해간 선열들을 떠올려보는데, 나올 때의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연중 280일 비가 온다는 장가계에서 나흘간 여행 중 가을초입 햇살을 받으며 선명한 풍경사진을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걷는 시간이 많아 다소 힘들기도 했지만 연일 탄성을 자아냈던 멋진 추억을 한 아름 가슴에 담아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