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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18. 2019

간략 삼국지(08)

천자를 꿈꾸는 원술


☐  조조의 호색(好色)           


유비는 [허창]에 이르러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그의 수하에 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간곡히 전했다. 항상 유비를 경계해왔던 조조였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로 여기며 유비일행을 쾌히 맞아들였다. 이때 순욱정욱유비를 없앨 것을 권했지만, 곽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유비를 해칠 경우 천하의 현재(賢宰)들이 조조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조조는 유비에게 군사 3천을 주어 [예주] 임지로 떠나보내며 여포를 공격하기 위한 채비를 하도록 일렀다. 유비는 흩어진 군사를 불러 모아 적지 않은 군세를 갖추었다. 


순욱(荀彧) / 정욱(程昱) / 곽가(郭嘉)

조조가 날을 정해 유비와 함께 여포를 치기위해 군사를 일으키려 할 즈음, 장수가 [형주]태수 유표와 결탁해 허도(허창)를 치려한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장수는 [남양]싸움에서 사망한 동탁의 옛 부하 의 조카였다. 조조 장수를 치기위해 장기간 성을 비울 경우 여포의 행보가 우려됐다. 


마침내 조조순욱 계책에 따라 여포의 관직을 올려 평동장군에 봉하고, 예물을 잔뜩 주며 유비와 화해토록 한 후 15만 대군을 이끌고 육수(淯水)에 진을 펼쳤다. 조조의 대군에 간담이 서늘해진 장수는 자신의 모사인 가후를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고는 조조를 위해 며칠간 연회를 베풀었다. 


장수(張繡) / 장제(張濟)

어느 날 밤 주연을 즐기다 침전으로 돌아온 조조가 기녀를 찾다가, 마침 장수의 숙부 장제의 처인 추씨를 들게 했다. 취중의 조조장제 처를 보니 과연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조조는 여인을 은근히 달래어 그날 밤 날이 새도록 뜨거운 정을 나눴다. 


다음 날 조조는 거처를 성 밖의 진으로 옮긴 후 전위로 하여금 장막을 지키게 했다. 장막 안에서 매일 밤을 가리지 않고 추씨를 탐하던 조조는 [허창]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은 채 몇날 며칠이 흘러갔다. 


어느 날 이 일을 알게 된 장수는 울화가 치밀어 가후를 찾아가 계책을 세웠다. 그는 조조를 찾아가 자신의 군사중 도주하는 자가 있으니 자신이 직접 순찰대를 관장할 수 있게 해 달라 청했다. 


추씨(鄒氏)

추씨에게 흠뻑 빠져있던 조조가 선뜻 승낙을 하자 장수는 조조의 진중에 군사를 4대로 나눠 주둔시키고는 기회를 엿보며 먼저 전위부터 제거코자 했다. 어느 날 전위는 가후가 마련해준 술자리에 참석해 만취가 돼 장막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추씨와 함께 술을 마신던 조조의 장막 밖에서 불길이 치솟고 함성소리가 들리자 조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전위를 찾았다. 술에 취해 위통마저 벗어던지고 잠들었던 전위는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가 사력을 다해 적병을 베니 그의 무서운 용맹에 기가 질린 장수의 군사들을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하지만 반 벌거숭이가 된 전위의 몸에  화살이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질 무렵 적병 하나가 등 뒤에서 창을 내질러 꽂았다. 전위가 결사항전을 벌이는 사이 조조는 잽싸게 말에 올라 홀로 적진을 빠져나갔으나, 팔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고 말았다. 


전위(典韋)

이때 큰아들 조앙이 달려와 조조를 말에 태운 후 자신은 무수한 적의 화살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지를 벗어난 조조가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는 동안, 우금이 뒤쫓는 장수군에 화살을 퍼 부우며 대대적으로 공격하자 장수는 얼마 남지 않은 군졸을 이끌고 [형주]의 유표게로 떠났다. 


조조 전위를 위한 제단을 크게 만들어 그의 넋을 위로하며 슬피 울자 휘하 장수들은 감격해했다. 자신의 호색으로 큰아들과 전위를 잃은 조조는 찢어질듯 한 아픔을 가슴에 묻고 [허창]으로 회군했다. 허창에 돌아오니 여포로부터 포박당한 원술 신하 한윤이 잡혀와 있었다. 장수로 인해 답답했던 조조는 모처럼 가슴이 확 트이는 듯 했다. 


조앙(曹昻)

원술여포를 갈라놓아 적으로 만들게 되었으니 큰 짐을 덜게 된 셈이었다. 조조한윤의 목을 베고 여포를 정식 [서주]태수로 임명토록 응낙했다. 조조여포의 사자인 진등을 청해 잔치를 베풀자 진등은 조조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조조 또한 헤아림이 밝은 진등에게 감탄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조조는 후일 여포를 칠 때 진등이 도와줄 것을 부탁하며 이들 부자에게 벼슬과 녹을 내렸다. 서주로 돌아온 진등조조여포를 매에 비유하고 원소원술, 손책유표를 여우와 토끼로 비유했다며 거짓을 아룄다. 여포조조가 자신을 그들보다도 높여본다는 것에 기뻐하며 진등에게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위로했다. 


☐  천자(天子)를 꿈꾸는 원술         

    

그 무렵 원술은 손책이 맡겨둔 옥새를 지닌 채 가슴에 품어왔던 야망을 드러내며 불탄 마음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원술은 천자가 되고자하는 자신의 뜻에 거역하는 신하들이 있으면 목을 베겠노라 엄포를 놓았다. 

          


원술이 천자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는 중에 여포가 청혼을 거부하고 한윤을 묶어 조조에게 보냈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노발대발하며 20만의 대군을 동원해 7로(路)로 나눠 [서주]를 향해 진격했다.


원술군이 여포의 전위군을 나뭇잎 밟듯하며 노도와 같이 밀어붙이자, 여포는 사색이 돼 급히 중신들을 불러 모았다. 여포는 진궁의 계책에 따라 7로의 장수 중 지난날 천자의 신하였던 양봉과 한섬을 회유해 군사를 교란토록 하고, [예주]목사 유비에게 서신을 띄워 구원군을 청했다. 


진등은 한섬이 [하비]에 이르러 진을 치자 그를 찾아가  설득한 후 양봉도 내응토록 당부한 후 여포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여포는 군사를 4군으로 나누고 나머지 군사는 [서주성]을 지키게 했다. 양봉한섬이 아군 진영에 불을 지르고 여포군의 협공에 나서자 여포는 군사를 휘몰아나가 적을 짓밟았다. 


양봉(楊奉) / 한섬(韓暹)

이때 쯤 맞은편 산골짜기에서 황금 갑주를 입은 원술이 나타나더니, 휘하의 장수들이 차례로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원술의 장수들이 여포의 화극에 나가떨어지고, 양봉과 한섬의 군사가 협공을 가하니 원술군은 허둥대며 달아나기 바빴다. 


원술이 여포에게 쫓겨 20리 길을 달아날 때쯤 80근의 청룡도를 비껴든 관우가 나타났다. 관우의 창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원술은 참담한 패배를 당한 채 본거지인 [회남]으로 돌아갔다. 원술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여포는 진등과 관우양봉한섬을 치하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다.


관우(關羽)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올 때쯤 원술은 분한 마음을 삭히지 못하고 있었다. 궁리 끝에 원술은 손책에게 사자를 보내 함께 여포를 칠 것을 제안했다. 원술의 밀서를 받은 손책은 황제를 참칭한 역적을 도울 수 없다며 사자에게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 원술은 노기가 솟구쳤으나 가까스로 분을 참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때쯤 손책은 [회계]태수에 봉한다는 천자의 조서를 받으며 동시에 원술을 제거하라는 영(命)도 받게 되었다. 손책은 책사 장소의 의견에 따라 자신은 원술의 측면을 맡고 정면은 조조군이 맡도록 하자는 서신을 [허도]로 보냈다. 


조조는 손책의 뜻을 받아들여 17만의 대군을 이끌고 나섰다. 이로써 동북에는 조조서북에는 유비남북에는 손책이 함께 동맹을 맺고 원술을 공격할 참이었다. 유비는 조조를 맞으며 양봉과 한섬의 목을 바쳤다. 



여포의 휘하에 머물던 두 사람이 노략질을 일삼자 유비가 이들의 목을 베게된 것을 알게 된 조조는 서주경계에 마중 나온 여포에게 좌장군을 봉했다. 이로써 여포는 더 이상  양봉과 한섬의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조조, 유비, 여포의 연합군이 [수춘성]으로 진격해오자 원술은 대장 교유를 선봉에 세워 5만의 군사 이끌고 나섰다. 교유하후돈의 창에 맥없이 나뒹굴게 되자, 기가 질린 장졸들은 성안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교유(橋蕤) / 하후돈(夏侯惇)

원술이 군사를 물러 [수춘성] 문을 굳게 닫고 있을 때쯤 손책이 [장강]을 건너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원술은 이제 정신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다. 원술은 적군의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10만의 군사로 성을 지키게 한 후, 자신은 [회수]를 건너 몸을 피했다. 


당시 [수춘]에는 수해가 극심해 새로운 군량을 마련할 수 없었다. 군량이 점점 바닥나자 초조해진 조조는 싸움을 재촉했지만 견고한 [수춘성]은 거센 공격에도 끄떡없었다.  



어느 날 왕후가 조조를 찾아와 군량을 걱정하자 조조는 조삼모사의 방법을 따르도록 했다. 그날 저녁부터 작은 되로 군량미가 공급되자 군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조는 왕후를 불러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목을 친 후 장대에 걸고는 진중에 걸어놓았다. 


왕후가 군량을 도적질해 사복을 채웠으니 군법으로 처단한다는 방문이 내걸리자, 군사들은 조조를 원망하지 않으며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조조는 3일 내 수춘성을 함락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는 엄명을 내렸다. 군사들이 결사적으로 성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성문이 열리니 원술의 많은 군사들이 항복하고 말았다.  


본 페이지에 나오는 지명 위치

조조가 사로잡은 적장들의 목을 베고 수춘성의 대궐과 전각에 불을 지른 후, 달아난 원술을 치려할 때쯤 급보가 날아왔다. 장가 [형주]의 유표와 결탁해 [남양]에서 난을 일으킨 것이었다. 조조손책으로 하여금 유표가 출전하지 못하도록 서신을 전한 후 유비여포가 다투지 않도록 당부한 후 유비를 [소패성]에 머물도록 했다. 


조조는 후일 여포를 제거하기 위한 자신의 속셈을 은근히 유비에게 전한 후 [허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습이란 자가 이각과 곽사를 토벌해 그 목을 베어왔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장군으로 삼아 [장안]을 수비하게 했다.  


오습(伍習)/ 이각(李傕)/ 곽사(郭汜)

☐  조조의 十勝원소의 十敗 


허도로 돌아온 조조헌제의 윤허를 받아 장수를 토벌하기 위한 장도에 올랐다. 때는 초여름이라 들에는 보리가 잘 여물고 있었다. 조조군이 시골길을 지나자 걸핏하면 군사들에게 약탈을 당해온 농군들이 겁을 먹고 앞 다투어 달아났다. 


조조는 촌장들을 불러 모아 안심시키고, 양민들의 보리밭을 짓밟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군사는 목을 베도록 군령을 내렸다. 이에 촌로들은 조조가 지나는 길에 무릎을 꿇어 칭송했다. 그런데 하필 조조가 보리밭을 지날 때쯤 비둘기가 푸드득 대며 날아가자 놀란 조조의 말이 보리밭으로 뛰어들어 쑥대밭을 만들었다. 


조조가 행군을 멈추고 군령을 어긴 자신의 목을 내치려하자 놀란 장수들이 제지했다. 조조는 머리카락을 잘라 단죄를 대신하며, 자신이 내린 법에 스스로 복종하는 증표로 삼았다. 이로써 장졸들은 더욱 군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조조(曹操)

4월에 출발한 행군은 6월로 이어지며 더위와 갈증에 지친 군사들은 하남(사주)의 산맥을 힘들게 넘었다. 그 무렵 장수유표에게 군사를 청한 후 직접 조조군을 맞았으나, 허저의 기세에 짓밟히며 달아나 [남양성]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조조가 서문에 병력을 집중시키며 공격을 퍼붓자, 사색이 된 장수가후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가후조조가 서문을 공격하는 척하며 동남쪽을 칠 터인 즉, 그곳에 군사를 매복해 조조군을 섬멸토록 일렀다. 밤이 되면서 군사를 은밀히 동남쪽으로 이동시킨 조조는 허술한 성벽을 허물고 컴컴한 성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사방에서 횃불을 든 복병이 쏟아져 나오자 조조는 황망히 말을 달려 오경(五更) 무렵까지 장수군에게 쫓겨 달아났다. 조조가 5만의 군사를 잃고 퇴각하자 유표는 조조의 퇴로를 끊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하지만 조조는 장수와 유표의 군사를 격퇴할 계책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퇴각하던 조조는 육수를 지날 때 쯤 지난해 이곳에서 전사한 전위를 떠올리며 대성통곡하고는 제단을 마련해 전사한 전위와 군사들의 혼백을 달랬다. 이를 지켜본 장졸들은 조조에게 감동하며 새로운 의분이 치솟게 됐다. 해질 무렵 조조는 산을 의지해 진을 친 후 산의 외줄기에 깊은 통로를 파게해 반 이상의 군사를 숨겨두고 일부는 산모퉁이에 매복시켰다. 


조조 진영에 군사가 적은 것을 살핀 장수유표의 군사들이 조조군을 공격하자 홀연 산모퉁이와 통로에 매복해있던 군사들이 튀어나와 일시에 덮쳐들었다. 장수는 패군을 수습해 달아나던 중 유표를 만나 조조의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조조가 이들을 섬멸코자 군사를 수습할 때 쯤, 원소가 [허도]를 노려 군사를 일으킨다는 급보가 날아왔다. 


유표(劉表)

광대한 세력을 지닌 원소를 견제하던 조조가 허도를 향해 행군을 서두르자, 유표와 장수는 각기 군사를 이끌고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천자께 아뢰 구원병을 보내준 손책을 토역장군에 봉하고 [형주]의 유표를 치라는 황제의 칙명을 내리게 한 후, 원소의 동태를 살폈으나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기러기가 날아오는 계절이 도래될 쯤 원소의 서신이 전해졌다. 서신은 뜻밖에도 공손찬을 치려하니 군사와 양식을 빌려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문투가 아랫사람을 대하듯 교만했다. 


불쾌해진 조조 곽가에게 묻자, 그는 조조가 10승을 거둘만한 큰 장점이 있는 반면 원소는 10패를 당할 많은 결점이 있음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원소의 세력이 지금은 매우 강하나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 아뢰었다. 


원소(袁紹)

사실 조조는 원소에 대한 우월감은 있었지만, 원소가문이 명문거족임에 비해 자신은 일개 궁내관의 아들로 소년시절부터 마을 부랑아에 지나지 않았다는 열등감이 있었다. 또한 원소가 낙양성 군부의 중책에 있을 때 조조는 성문을 순시하는 말직에 있었다. 


이후 원소가 천하풍운에 밀려 지방으로 물러나고 조조는 약진을 거듭해 승상까지 됐으나, 그를 향한 천하의 민심은 질시와 반감이 만만치 않았다. 조조가 품은 대망은 벌써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다. 


조조순욱곽가의 의견을 따라 일단 원소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고, 원소가 [북평]의 공손찬치는 동안 여포를 쳐서 동남을 평정한 뒤에 원소를 공략키로 했다. 조조는 천자에게 주청해 원소를 대장군 태위로 봉하게 하고 군량미와 마필 등 군수품을 보냈다. 


공손찬(公孫瓚)

원소 크게 만족해하며 한동안 조조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한편 서주의 여포는 밤이면 미녀들을 품은 채 술에 젖고, 낮에는 진등 부자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진궁은 여포에게 진등을 경계할 것을 일깨웠다. 하지만 여포진등을 감싸고돌자 진궁은 조용히 물러나 사저에 틀어박혔다.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진궁은 소패근처로 사냥을 나갔다가 홀연히 역마 한필이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고 문득 의심이 들어 활을 당겼다. 진궁은 칼을 빼들고 사자의 몸을 뒤져 유비로부터 조조에게 가는 밀서 한통을 찾아냈다. 


진등(陳登) / 진궁(陳宮)

그는 조조의 명으로 유비에게 서찰을 전한 후 답서를 받아 돌아가는 길이었다. 밀서를 본 여포는 이를 갈며 현덕을 잡아오라 명했다. 한편 여포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조조에게 위급을 알리는 서신을 보내고 [소패성]을 지킬 준비를 서둘렀다. 


성에 먼저 도착한 고순이 성을 공격했으나 유비는 성문을 닫은 채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장요가 서문을 공격해 왔으나 관우도 싸움을 피하며 성 위에 올라, 여포휘하에 있는 장요를 안타까워하자 장요는 스스로 군사를 물렸다. 장비 역시 동문을 굳게 닫아걸고 성을 지킬 뿐이었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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