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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16. 2019

간략 삼국지(07)

여포의 신궁(神弓)


☐  두 호랑이 손책과 태사자의 다툼  

     

다음 날, 손책원술을 찾아가 옥새를 내밀며 가솔을 구하고자  [양주]의 유요를 치겠노라 청해 3천의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떠났다. 이때 선친휘하의 장수였던 정보, 황개, 한당원술의 눈을 피해 손책을 따라왔고 죽마고우였던 주유도 군사를 이끌고 합류했다. 


강동에 이르자 손책장소장굉을 설득해 자신의 현자(賢者)로 삼았다. 유요는 한실혈통의 명문호족으로 원술에게 쫓겨 와 강동의 [곡아]를 점령하고 있었다. 유요의 부장(部將) 장영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저성에 들어가 황개와 맞대결을 벌렸으나 이내 패하고 말았다. 


그사이 성안에서 불이나자 장영은 군사를 수습해 [곡아]로 돌아갔다. 손책이 뜻밖의 대승을 거둘 무렵, 돌연 뒤편산길에서 호적무리가 나타났다. 성에 불을 질렀던 호적두목 장흠이 손책을 찾아와 그의 군영에 들기를 청했다. 손책은 기쁜 마음으로 장흠을 맞이하고 항복한 적군의 군사를 받아들이니 이내 병력은 4천이 되었다.

 

유요(劉繇) / 장흠(蔣欽)

용맹한 손책이 직접 적진을 염탐하기 위해 나서자, 이를 간파한 유요 진영에서는 태사자가 나와 손책과 맞섰다. 두 사람의 창이 불꽃을 튀며 50여 합을 겨뤘으나 끝내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태사자손책을 유인하기 위해 말을 돌려 숲속으로 들어갔다. 


손책을 뒤따르는 장수들이 없자 태사자는 이내 말머리를 돌려 손책을 공격했다. 정적이 감돌던 산속에서 두 사람이 내뿜는 열기와 기합소리에 나뭇잎마저 흔들렸다.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내뿜으며 밀고 당김을 반복하다 요동치는 말에서 굴러 떨어지며 맨주먹으로 맞붙어 뒹굴었다.  


손책(孫策) / 태사자(太史慈)

유요의 군사들과 손책의 장수들이 두 사람을 구하며 혼전을 벌리고 있을 때쯤 주유군사를 이끌고 나타나자 비로소 양군은 군사를 물렀다. 날이 밝자 손책은 군사를 이끌고 산을 넘어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태사자 정보를 맞아 30여 합을 겨루던 중, 갑자기 유요의 퇴각명령이 내려졌다. 


유요 손책과 싸우는 동안 주유 진무가 [곡아]를 점령한 것이었다. 유요가 밤새 진지를 뽑아 철수하니 태사자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손책은 밤을 기다려 유요 군을 들이쳤다. 혼비백산한 유요 군이 달아나는 동안 태사자는 혼자남아 싸우다 역부족임을 깨닫고 말을 몰아 경현으로 몸을 피했다. 


진무(陳武)

손책은 누런 얼굴에 붉은 눈알을 지닌 진무를 맞아 교위(校尉)로 삼았다. 유요는 군사를 추슬러 손책과 다시 맞섰으나, 믿었던 장수들이 어이없이 손책에게 목이 떨어지고 1만의 군사가 죽어나가자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코자 달아났다. 이때 [말릉성]으로 달려가 적군에게 항복을 권하던 손책은 성안의 장영이 쏜 화살에 허벅지를 맞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날 밤 손책 진영에는 조기가 내걸리며 장졸들의 통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영이 군사를 이끌고 손책의 장례행렬을 공격하자 행렬은 이내 전투 진용을 갖추며 반격에 들어갔다. 장영손책의 칼에 붉은 피를 뿜으며 두 동강이 나자, 말릉성(건업)에 유요의 군사들은 문을 열어 항복해왔다. 손책이 이처럼 용맹을 떨치니 세상은 그를 항우(項羽)에 비견해 강동의 소패왕(小覇王)이라 불렀다.  


장영(張英)

☐  강동 소패왕의 출기불의(出其不意)              


그 무렵 태사자는 [경현성]에서 정병 2천을 새로이 수습하며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책은 말머리를 곧추세워 군사를 이끌고 경현에 이르렀으나, 태사자를 사로잡아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손책진무를 선봉으로 하는 결사대를 모집해 밤을 기다려 성벽을 오르게 한 뒤 동문을 제외한 삼방(三方)을 공격토록 했다. 


진무가 결사대와 함께 성벽을 기어올라 성안에 잠입해 불을 지르자, 삽시간에 불이 성안에 번지며 태사자의 군사들은 가마솥의 콩처럼 팔짝팔짝 뛰며 갈팡질팡했다. 태사자가 군사들을 이끌고 도피가 용이한 동문을 통해 30리를 달리다 보니 한 떼의 군사들이 가로막으며 화살을 퍼부었다. 



그가 20여리를 더 달려 뒤를 돌아보니 따르는 군사는 없고 추격군의 함성만 들렸다. 갈대숲을 맴돌던 말이 웅덩이에 빠지며 태사자가 곤두박질해 갈대밭에 나뒹굴자 복병들이 달려들어 꽁꽁 묶어 버렸다. 손책태사자에게 다가가 친히 결박을 풀어주며 예를 갖춰 설득했다. 


손책의 따뜻하고 정중한 태도에 마음이 동한 태사자가 정병 3천명을 끌어 모아 진영에 합류하니 강동은 손책의 세력 하에 평정되었다. 군세가 날로 증강돼 수만의 군사를 이루자, 손책은 가솔을 불러 모은 후 아우인 손권에게 장수 주태를 딸려주며 모친을 모시고 [선성]을 지키도록 했다. 



손책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오군(吳郡)의 엄백호를 공격하기 위해 남으로 향했다. 숨 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적군을 무찌른 손책이 [오성]을 포위하자, 엄백호는 강화 사절을 내보냈다. 손책이 사절을 단칼에 베 버리자 엄백호는 [오성]을 버리고 황망히 성을 빠져나와 [회계]태수 왕랑에게로 달아났다. 


왕랑이 군사를 일으켜 엄백호를 도우려하자, 신하 우번은 화친을 주장하다 쫓겨났다. 산기슭에 진을 친 왕랑은 앞뒤에서 손책 군의 협공을 받자 [회계성]으로 달아났다. 손책이 여세를 몰아 일시에 성을 공격해오자 왕랑은 성안에서 요지부동하며 손책진영의 군량미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吳郡호족 엄백호(嚴白虎) / 회계태수 왕랑(王朗)

하지만 손책은 출기불의 계책을 써서, 회계군의 군량미 저장고인 사독을 점령해 군량도 얻고 꿈쩍 않는 성안의 군사를 밖으로 끌어내기로 했다. 손책이 군사를 남쪽으로 몰자, 망루에 올라 적진을 살피던 왕랑은 낌새를 채고 엄백호에게 군사를 주어 추격케 했다. 


[회계성]에 머물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왕랑은 [사독]이 점령당했다는 급보를 전해 듣고는 성을 뛰쳐나와 사독으로 향하던 중 손책의 복병에게 섬멸 당하고 홀로 구사일생으로 사지를 빠져나와 [해우]로 달아났다. 다음날 8척 장수 동습 엄백호의 목을 들고 손책을 찾아왔다. 엄백호가 죽고 왕랑이 달아나면서 동쪽지방이 평정되자 손책은 군사를 거두어 [강동]으로 돌아왔다.     


동습(董襲)

☐  여포의 신궁(神弓)


손책이 동쪽지방을 평정하는 사이 손권이 지키고 있는 선성에 산적 떼들이 몰아 닥쳤다. 밤중에 당한 기습으로 중과부적이던 주태는 갑옷도 입지 못한 채 맨발로 손권을 호위하며 혼신을 다해 혈로를 뚫어 간신히 성을 빠져나왔다. 주태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손책이 안타까운 마음에 명의를 찾아 나서자 동습이 왕랑의 신하였던 우번을 청해 의논하기를 권했다. 손책의 부름을 받은 우번은 명의 화타를 찾아 주태의 상처를 돌보게 하니 한 달 만에 상처가 깨끗이 낫게 되었다. 주태의 상처가 완치되자 손책은 군사를 일으켜 선성을 쳐들어왔던 강남일대 산적들을 모조리 섬멸하며 백성들에게 선정을 폈다. 


주태(周泰)

이로써 [강남], [강동]의 81주(현:縣)는 새 인물 손책의 통치하에 들게 되었다. 이어 손책은 강남과 강동을 평정한 경과를 조정과 알리고 조조에게도 사자를 보내 친교를 맺는 등 눈을 천하로 돌렸다. 또한 [회남]에 머물고 있는 원술에게 지난날 빌린 3천명의 군사와 공물을 곁들여 보내며 옥새를 돌려 달라는 서찰을 보냈다. 


그 무렵 원술은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군비를 확장하며 강대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원술은 휘하의 참모들을 불러 모아 옥쇄반환을 요구하는 손책의 처리문제를 논했다. 그러자 장사(長史) 양대장이 나와, 지난날 까닭 없이 싸움을 걸어온 [소패]의 유비를 제거한 후 손책과 다투는 자는 계책을 내놓았다.  


본 페이지에 나오는 지명 위치

또한 지난날 여포에게 약속했던 군량과 금은보화를 지금이라도 보내주고 여포의 마음을 돌린다면 [소패]가 공격을 당하더라도 여포유비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양대장의 말에 원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곡과 재물을 받은 여포원술유비를 쳐준다면 [서주]가 영영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했다. 


원술이 군사를 일으켜 소패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여포에게 원병을 청했다. 양군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기로 묵계한 여포는 유비의 간곡한 서신을 받자 진궁을 불러 의논했다. 원술의 간계를 눈치 챈 진궁은 유비를 도와 [소패]를 지키는 것이 상책이라 간했다.


원술의 장수 기령이 소패의 동남쪽에 진을 펴자, 유비도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성 밖에 진을 쳤다. 이때 여포는 몸소 군사를 거느려 양군의 중간에 출진한 후, 자기의 진영에 초대한다는 서신을 양 진영에 전하도록 했다. 여포가 마련한 주안상에 나타난 기령이 먼저 도착해 있던 유비를 보자 대경실색하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내달으려 했다. 


여포  방천화극(方天畵戟)

여포는 기령의 팔굽을 잡아 유비가 있는 막사 안으로 끌고 들어가 몇 순배 술을 돌린 후, 자신의 방천화극을 들고 군영 문밖 멀리 떨어진 곳에 거꾸로 꽂았다. 그는 백오십 보를 돌아온 후에 자신이 화살을 쏴 화극을 맞추면 이는 하늘에 뜻이니 화해할 것을 종용했다. 



여포가 붉은 비단소매를 걷어 올리고 줄을 당겨 시위를 놓으니 신기에 가까운 화살이 창의 작은 곁가지에 꽂혔다. 승산 없는 싸움을 피하게 된 유비가 마음을 쓸어내릴 때, 난감해하던 기령여포가 써준 서찰을 받아 [회남]으로 떠났다. 이에 유비 여포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관우, 장비와 함께 [소패]로 돌아갔다. 

  

유비(劉備) / 여포(呂布) / 기령(紀靈)

☐  갈라지는 유비와 여포            


원술여포의 서신을 찢어버리며 펄펄뛰자 기령이 조심스레 간했다. 여포와 사돈을 맺어 유비와 갈라놓은 후 여포로 하여금 유비를 치게 하자는 소불간친지계(疎不間親之計)의 계책이었다. 청혼의 사자로 한윤이 [서주]에 이르자 여포는 부인에게 의견을 물었다. 여포는 세 부인을 두었으나, 자녀는 정실 엄씨가 낳은 외동딸뿐 이었다.


엄씨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원술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며 전국옥새를 갖고 있기에 조만간 천자가 될 터이니 사돈을 맺어 서주를 안전하게 지키자고 했다. 혼약을 맺기로 작정한 여포는 모사 진궁의 제안에 따라, 서둘러 원술에게 여식을 보내 별관에 머물도록 하고 길일을 택해 혼례를 치르도록 했다. 


한윤(韓胤)

신부를 태운 마차와 호위대열이 성 밖 10여리에 걸쳐 이어질 때쯤, 진등의 부친인 진규가 병든 몸을 이끌고 [서주성]으로 들어가 여포를 만났다. 사돈을 맺은 원술이 여식을 인질로 잡고 유비의 [소패] 땅을 차지한 후, 군사와 군량을 수시로 빌려 달라하면 서주가 곤란해질 것이며, 또한 원술에게 협조할 경우 전국제후들의 원망과 표적이 될 것이란 진대부의 말을 듣자 여포는 정신이 아찔해왔다. 


여포는 급히 장요를 불러 딸의 행렬을 되돌리게 하고 사신 한윤을 감금토록 했다. 이때 집으로 돌아온 진규는 다시 붓을 들어 서신을 쓴 후 여포에게 전했다. 천자가 있는 허도(허창)의 조정에 한윤을 바친 후 서둘러 조조와 유비의 군사와 합세해 원술을 치도록 해야 한다는 진대부의 서신에 여포는 망설이고 있었다. 


진규(진대부)

며칠 후 산동지방(연주/청주)으로 군마를 사러갔던 일행이 갑주가 찢기고 상처를 입은 채 돌아와 여포에게 아뢨다. 이들이 3백여 필을 구해 소패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쯤 복면한 도적이 나타나 2백여 필의 준마를 약탈해갔는데, 그  도적 떼가 장비와 그 부하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분개한 여포는 갑옷을 입고 적토마 위에 올라 군사를 이끌었다. 여포의 출병 까닭을 알 수 없던 유비는 군사를 추스려 여포를 맞아 물었다. 여포가 군마 약탈을 문제 삼자, 장비는 창을 들고 나와 유비 앞을 막아서며 싸움을 작정한 듯 여포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여포가 달려 나와 장비를 향해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장비는 말의 뒷발을 곧추세우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포의 가슴을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평소에도 원수처럼 미워하던 두 호걸이 창을 맞부딪치며 찌르면 막고, 막으면 후비고 찌르기를 1백여 합에 이르자 어느새 해가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장비(張飛) / 여포(呂布)

퇴각을 명해 [소패성]으로 들어온 유비장비를 불러 나무란 후 관우를 시켜 여포에게 약탈한 말을 보내고 화해를 청했다. 분을 가라앉힌 여포가 퇴각하려했으나, 진궁여포를 충동질해 소패성을 치게 했다. 며칠간의 여포 군 공격이 이어지자 유비는 별수 없이 가솔을 이끌고 [소패성]을 빠져나와 조조에게로 향했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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