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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an 14. 2019

간략 삼국지(06)

반간지계(反間之計)


☐  천하호걸 전위와 허저 

              

조조가 본거지 [견성]으로 돌아가자, 성을 지키고 있던 장수들이 조조를 맞으며 [연주성]의 형세를 전하며 공격하기를 간하였다. 조조가 즉시 군사를 몰아 연주로 나가자, 여포 휘하의 이봉설란이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쳤다. 허저가 나가 불과 2합에 이봉을 고꾸라트리니 설란이 놀래 도주하다 화살을 맞고 내뒹굴었다. 


[연주성]이 손쉽게 수중으로 들어오자, 조조는 기세를 몰아 여포가 머무는 [복양성]으로 육박해 갔다. 여포조조를 맞으려 하자 모사 진궁이 만류했지만, 여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쳤다. 여포의 창과 허저의 큰 칼이 허공에서 불꽃을 튕기며 맞부딪쳤다. 


허저(許褚)

말과 사람이 어울려 20여 합을 겨루니 마치 두 마리의 용이 하늘을 오르는 듯 했다. 이를 바라보던 조조는 전위를 불러 허저를 돕게 하였다. 하지만 여포의 방천화극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하후돈을 포함한 네명의 장수가 합세해 여섯 장수가 맹공을 퍼부으니 천하의 여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위협을 느낀 여포가 적토마를 돌려 복양성으로 들어가려 하자, 성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루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부호(富戶) 전씨가 그의 수족을 동원해 이미 성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쩔 수없이 여포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자 쉽사리 [복양성]을 되찾은 조조는 달아나는 여포의 뒤를 쫓았다. 


전위(典韋)

[정도성]에 당도한 조조는 싸움을 걸었으나 여포는 응하지 않았다. 몇차례 조조의 계략에 넘어가 혼쭐이 난적있던 여포는 화공(火攻)을 쓰기로 했다. 한편  조조는 진영 옆 숲속에 군사가 있는 것처럼  많은 기를 세우고 군사들은 서쪽 둑 뒤에 매복시켰다. 


여포는 조조의 영채 가까이 가,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숲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이때 영채 뒤쪽으로부터 한 떼의 군마가 달려 나오자, 여포는 급히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여포는 수많은 군사를 잃고 서둘러 정도를 빠져 나갔다. 이제 정도성마저 조조의 수중에 들어옴으로써 산동일대(연주/청주)가 모두 조조의 세력권에 머물게 됐다. 


떠돌이신세가 된 여포는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려 했으나 오히려 원소조조를 도우려하자, 진궁의 의견을 따라 유비에게 사람을 보냈다. 유비는 미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포를 맞아 들였다. 유비도 내심으로는 여포의 절도 없음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으나, 천하의 맹장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니라고 여겼다. 


여포(呂布)

유비여포를 맞아 [서주]태수에 오르도록 권했으나, 유비의 등 뒤에서 눈을 부라리던 관우장비를 의식한 여포가 곧 사양을 하자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다음날 유비를 대하는 여포의 오만불손함에 성미 급한 장비가 불같이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걸자, 깜짝 놀란 유비장비를 꾸짖으며 여포에게 [소패성]을 내주었다. 


[서주]정벌을 노려오던 조조유비여포를 맞이해 소패성에 자리 잡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주 공략을 결심했다. 하지만 곽가를 위시한 모사들은 유비여포의 분란을 기다리자며 서주공격을 만류히고 나섰다. 한편 한(漢)의 조정은 조조의 공적을 치하해 건덕장군으로 봉했다. 


이무렵 [장안]의 조정은 동탁 휘하에 있던 이각곽사의 수중에 있었다. 이들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백관인 양표주전헌제를 배알하고는 두사람을 이간시켜 싸우게 한 후, 조조로 하여금 그들을 평정토록 하자는 계책을 올리고 조조에게 밀조를 내렸다.     


양표(楊彪) / 주전(朱儁)

☐  반간지계(反間之計)     


다음날, 양표의 아내는 곽사 부인을 찾아가 곽장군이 이각의 부인과 정분이 두텁다는 소문이 있음을 은밀히 전했다. 며칠 후 곽사이각의 초대를 받았는데, 아내의 훼방으로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튿날 이각이 술과 고기안주를 보내오자 곽사 아내는 음식에 독약을 넣고 곽사에게 가져갔다. 


곽사가 수저를 들자 아내가 황급히 말리며 고기 한 점을 집어 마당에 있는 개에게 던졌다. 고기를 삼킨 개가 피를 토하며 죽자 이날이후 곽사는 이각을 경계하게 되었다. 어느 날 퇴궐 시 이각이 곽사를 집으로 데려가 술상을 벌렸는데, 밤늦게 돌아온 곽사는 우연찮게 복통을 심하게 앓았다. 


이에 화가 치민 곽사가 군사를 이끌고 이각을 찾아가 이각 군사와 싸움을 벌이자 도성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때 이각의 조카가 황제를 수레에 태우고 이각의 본진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곽사는 군사를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가 궁녀들을 잡아들이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이각(李傕)

한편 이각은 납치해온 황제를 미오성으로 옮기게 하고 감시토록 했다. 더욱이 황제의 측근들은 썩은 고기와 상한 곡식을 받다보니 굶주림에 고통이 이어졌다. 무기력한 황제는 고개 숙여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며 쏟아지는 눈물에 용포를 적시고 있었다. 황제가 깊은 시름에 잠겨있을 무렵 곽사는 황제를 넘겨받기 위해 이각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각이 장창을 비껴들고 말을 몰자 곽사도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와 맞부딪쳤다. 막상막하 승패가 날 것 같지 않자 가 나와 싸움을 말리고는 다음 날 대신들과 곽사를 찾아가 화해를 청했으나, 대신들은 모조리 포박되고 양표주전만 풀려나왔다. 이후 양쪽 군사는 50여일에 걸쳐 지루한 싸움을 했다. 


어느 날 헌제이각의 모사인 가후를 불러 자신을 구해줄 것을 전하고 황보력을 불러 이각과 곽사의 화해를 지시했다. 황보력곽사를 설득시킨 후 이각을 찾아 천자의 뜻을 전했지만 기고만장해있던 이각에 의해 쫓겨났다. 황보력 드러내 놓고 이각을 비난하며 서량출신 군사들을 선동해 서량(서북변방)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곽사(郭氾)

가후 또한 강족출신 군사들을 꼬드겨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니, 이각의 진영에는 군사들이 날로 줄어들었다. 이런 와중에 섬서 지방의 장제가 대군을 이끌고 와 두 장군을 화해시키고 유폐됐던 헌제를 풀어 낙양근처의 [홍농]으로 행차토록 했다. 하지만 곽사는 군사를 풀어 홍농으로 향하는 황제의 수레를 뒤쫓게 했다. 


이때 이각을 모살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났던 양봉이 1천여 명의 군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양봉 휘하의 장수 서황이 도끼를 휘두르며 나는 듯이 말을 몰자 곽사의 군사들은 겁에 질려 20여리를 달아났다. 다음날 곽사 군사가 다시 몰려오자 이번에는 동귀비의 아비인 동승의 군사가 나타나 협공함으로서 적군은 다시 군사를 물렸다. 


패주해가던 곽사이각을 만나 천자를 죽여 없앤 후 천하를 반분키로 하고 다시 천자의 뒤를 추격했다. 양봉동승의 군사가 뒤쫓아 온 군사에 중과부적으로 밀리자 양봉은 꾀를 내어 황족일행이 지니고 있던 금은보화를 길에 뿌리고 군졸들이 재물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위기를 면했다. 


양봉(楊鋒)

양봉은 헌제의 밀지를 흑산적 두목 한섬 그 무리인 이락호재에게 보내 원병을 청한 후, 곽사 연합군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다. 이 싸움에서 호재는 목숨을 잃고 이락은 어가를 쫓아 나서 배를 한척 구한 후 황제측근만 겨우 태우고 가까스로 강을 건넜다.

 

피난길의 천자는 발바닥이 부르터 피가 흘러 내렸다. 그 무렵 이락한섬의 방자함이 극에 달해 관직을 요구하며 헌제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러한 이락의 횡포에 마침내 양봉 휘하의 서황이 나서 도끼를 번쩍 치켜들어 이락의 몸뚱이를 두 동강이 냈다. 서황이 짓쳐 나가자 이락의 졸개들은 도끼에 맞아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어느덧 황제의 어가가 [낙양]에 당도했으나, 궁궐은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천자는 폐허 속에 낙양에 초라한 가궁(假宮)을 세우고 재건을 다짐하며 연호를 建安(186년)으로 고쳤다. 낙양에 천자가 궁핍하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조조가 대의를 품을 무렵 천자의 조서를 받게 되었다. 


서황(徐晃)

조조는 내심 천하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끼며 출병을 준비했다. 이러한 때 이각곽사 군사가 [낙양]으로 쳐들어 왔다. 다급해진 천자가 다시 피난길에 올라 정신없이 달아가고 있을 무렵 조조휘하의 하후, 허저, 전위가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황제를 맞았다. 


이어 후미군이 당도하자 어가는 단번에 8만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히 귀환 길에 올랐다. 조조 군은 이각 연합군을 짓밟으며 낙양으로 입성하였다. 다음날 대군을 이끌고 [낙양]에 당도한 조조는 천자의 앞으로 나아가 신하의 예를 조금도 흩트리지 않았다. 


역적의 무리를 전멸시키겠노라 아뢰는 조조에게 천자는 정승의 벼슬을 내렸다. 조조의 출현으로 크게 패한 이각이 서둘러 군사를 수습하고 재공격을 감행하려하자 모장 가후가 만류했다. 하지만 이각의 무모함에 실망한 가후는 진영을 빠져나와 행방을 감추었다. 



다음 날 이각의 군사가 나타나자 허저가 달려 나와 적장의 목을 베니, 이각 군은 기에 눌려 뿔뿔이 흩어졌다. 헌제 조조를 대대적으로 신임하게 되자 실망한 양봉은 한섬과 의논한 뒤, 천자에게 이각의 무리를 토벌한다는 핑계로 함께 군사를 이끌고 하남성(사주)으로 떠나버렸다.  

 

☐  조조의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어느 날 헌제의 조서를 받든 동소조조를 찾았다. 몇 순배 술이 돌자, 동소는 입을 열어 도읍을 허창(許昌)으로 정해 환도할 것을 은근히 조조에게 간했다. 조조는 모사들의 의견을 헤아린 뒤 헌제에게 천도를 거론했다. 조조의 위세에 눌린 대신들이 날을 잡아 어가를 이끌고 [허창]으로 향해갈 쯤 양봉의 수하인 서황이 나타나 싸움을 걸었다. 


허저가 나와 서황과 50여 합을 겨뤘으나 승부가 나지 않자, 조조는 퇴각을 명해 잠시 물러선 뒤 서황의 동향인(同鄕人)을 찾아내 회유코했다. 자신을 귀히 여겨 조조가 일부러 물러났음 알게 된 서황양봉의 진영을 빠져나왔다. 뒤를 쫓던 양봉한섬은 조조 군에게 크게 패하자 [남양]의 원술을 찾아갔다. 


한섬(韓暹)

무소불위의 조조는 어가를 이끌고 [허창]에 당도해 궁중을 정하고 스스로 대장군에 올라 수하들에게 제각기 벼슬을 내렸다. 조조는 조정이 그의 휘하에 들어오자 유비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순욱이 나서 두 범이 다투도록 하는 간계를 내놓았다. 유비에게 서주목의 벼슬을 내린 후 여포를 죽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조조는 그날로 천자의 조서와 한통의 밀서를 유비에게 보냈다. 천자로부터 [서주]태수의 정식 영(令)을 받은 유비는 밀서를 보자 관우와 장비에게 의논했다. 여포를 죽이자는 장비의 말을 유비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다음날 유비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여포를 보자 장비는 칼을 빼들어 죽이려 덤벼들었다. 


놀란 유비장비를 꾸짖으며 여포에게 조조의 서신을 보여주었다. 여포유비의 넓은 도량에 감격해하며 물러가자 장비는 마뜩치 않은 듯 투덜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유비는 자신과 여포의 사이를 이간시키고자 꾸민 조조의 간계를 관우장비에게 설명하고, 후일 기회를 보아 여포를 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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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계략이 실패하자 순욱은 또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유비가 천자에게 표를 올려 [남군]을 뺏으려 한다고 원술에게 전하고, 유비에게는 천자의 조서를 위조해 원술을 치게 하여 표리부동한 여포 비어있는 [서주성]을 탈환토록 하는 계책이었다. 


유비는 천자 명을 거역할 수 없어 내키지 않는 출병을 준비하며 서주성을 장비가 맡도록 했으나, 매사 경솔한 장비가 마음에 걸려 진등을 함께 머물게 했다. 유비가 [남양]으로 향할 쯤, 조조의 서찰을 받은 원술은 크게 노하며 기령에게 10만 군사를 주어 유비를 치게 했다. 


기령은 50근의 삼첨도(三尖刀)를 휘두르며 와 30여 합을 어우르다, 말머리를 돌려 진으로 달아나 한동안 싸우려 들지 않았다. 한편 유비를 생각해 갑옷도 벗지 않고 잠자리에 들며 [서주성]을 지키던 장비는 어느 날 장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위해 술잔을 돌리다 자신도 만취해 버렸다.


원술 장수 기령(紀靈) / 관우(關羽)

이때 장비에게 불만을 품었던 조표가 여포에게 사람을 보내 서주성을 치게 했다. 평소 장비와 감정이 좋지 않던 여포는 밤길을 달려가 술에 취해있는 장비와 군사들을 기습하였다. 서주성을 빠져나온 장비유비가 있는 [회남] 땅으로 말을 달렸다. (*남양 군벌 원술은 당시 회남 땅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측됨)  


이 무렵, 여포는 서주 백성들의 환심을 얻고자 유비가족들을 지키게 했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장비를 맞아 위로했다. 이때  원술여포에게 재물을 주겠다며 유비의 후미를 치게 했다. 여포가 5만의 군사를 출진시키자 유비는 광릉지방(서주 남동쪽)으로 퇴각했다. 


여포유비가 도망갔으니 약속한 재물을 내놓으라고 원술을 채근하자, 원술은 유비의 목을 벨 경우 약속을 지키겠노라 여포에게 통보해왔다. 화가 치민 여포원술을 치려하자 진궁이 꾀를 내어, 유비에게 [서주]로 돌아와 달라는 서찰을 보냈다. 


원술(袁術)

패주한 유비에게 [소패]를 주고 기회가 오면 유비를 선봉에 세워 원술을 치자는 계책이었다. 돌아온 유비에게 여포가 [서주성]을 사양하는 체 하자, 유비는 한발 물러나 [소패성]으로 돌아갔다. 여포유비의 환심을 사기위해 식량과 비단을 보내오면서 두 사람은 한동안 화해를 유지했다. 


한편 여포를 이용해 유비를 크게 물리친 원술이 잔치를 벌 릴 때 쯤, 손책이 [여강]을 정벌하고 돌아왔다. 강동의 맹장이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은 천하의 맹장을 꿈꾸며 원술의 식객으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돼 있었다. 


어느 날 손책은 선친의 수하였던 주치원술의 모사인 여법을 만나, 원술의 곁을 떠나기로 뜻을 세웠다. 손책은 위험에 처한 외숙부를 구한다는 핑계로 원술에게 군사를 빌리는 대신 선친에게 물려받은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손책(孫策)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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