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재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 Jan 21. 2019

간략 삼국지(09)

여포의 죽음


☐  눈알을 씹어 삼킨 하후돈  

   

조조에게 보낸 유비의 답서가 여포의 손에 들어가 [소패]를 공격토록 한 다음날이었다. 여포는 지난날 원술이 제안했던 혼담을 원한다고 전하도록 했다. 그는 혼사를 성사시켜 원술과 동맹을 맺고 조조를 치고자했다. 그러나 원술은 신의가 없는 여포를 믿지 못해 혼사 전에 여식을 [회남]으로 보내라는 답서를 보냈다. 


자신의 딸이 인질로 머물게 될 것을 우려한 여포는 혼약을 단념하고 스스로 군사를 몰아 [소패성]에 당도했다. 성벽 위로 유비가 나와 사리를 들어 설득하자 여포는 [소패성]을 포위토록한 채, 자신은 [서주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편 소패의 급변을 전해들은 조조하후돈에게 군사를 주어 [서주]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하후돈(夏侯惇)

[소패성]을 에워싸고 있던 여포 군사들은 조조군을 맞기 위해 소패에서 수 십리 떨어진 곳으로 물러나 싸움을 벌였다. 조조군의 하후돈과 여포군의 고순이 50여 합의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다 고순이 자기진영으로 달아났다. 이때, 적장의 뒤를 쫓던 하후돈의 눈에 화살이 꽂혔다. 


얼굴 반쪽에 선혈이 낭자해진 하후돈이 이를 악물고 화살을 뽑자 눈알이 뽑혀 나왔다. 그는 뽑혀 나온 눈알을 입안에 넣고 씹어 삼킨 다음 창을 추켜들고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렸다. 하지만 솟구치는 피로 하후돈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자 동생 하후연이 달려 나와 형을 구한 후 군사를 물렀다.


눈알을 뽑은 하후돈

관우장비는 여포군을 맞아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유비군은 여포군에 비해 풍전등화와 같은 작은 세력이었기에 버틸 수가 없었다. 앞뒤로 적을 맞게 된 유비가 [소패성]으로 달아나 적교(吊橋)를 건너려할 때 기세가 오른 여포가 성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이 사이 고순장요의 군사들도 성안으로 밀어 닥쳤다. [소패성]이 여포군에게 짓밟히자 유비는 혈혈단신으로 성을 빠져 나왔다. 미축을 사로잡은 여포유비의 처자를 [서주]로 옮긴 후 유비의 패잔병을 소탕했다. 필마단기의 유비는 [허도]로 향하던 중 손건을 만나고, 관우 장비는 각기 산속으로 몸을 피했다. 



조조는 유비를 맞이해 함께 군사를 몰아 제북에 이르러 하후연 진영에 들어갔다. 조조는 하후돈의 병상을 찾아 위로를 전한 뒤 조인에게 군사 3천을 주어 [소패]를 치게 하고, 자신은 유비와 함께 [산동]의 경계에 있는 산적들부터 소탕키로 했다. 조조군이 소관의 산적들을 쫓아 섬멸하는 동안 조인은 [소패성]을 공략하고 있었다. 


이에 여포 진대부에게 [서주성]을 지키게 하고 그의 아들 진등과 함께 소패로 출진키로 했다. 출진하기 전, 진등 부자는 지난날 조조와 약조한 기회가 왔음을 깨닫고 여포를 제거할 모책을 상의했다. 여포진등 부자의 조언에 따라 만일에 대비해 모든 군량미와 자신의 가솔을 [하비성]으로 옮기도록 대비한 후 소패로 진군했다.


그때 소관이 위급하다는 급보가 여포에게 전해졌다. 진등은 자신이 먼저 형세를 살핀 후 돌아오겠다고 간하고 소관으로 향했다. 그날 밤 진등은 소관의 관루에 올라, 불빛이 관루에 보이거든 공격하라는 서신을 화살에 매달아 조조진영에 쏘아 올렸다. 


진등 부자

다음날 진등은 소관을 지키고 있던 진궁과 작별하고 여포에게로 돌아와 일부 장수들이 소관을 조조에게 바치려 한다는 거짓 을 아뢰며, 소패보다는 소관을 먼저 구하도록 청했다. 여포는 진등을 의심하기는커녕 공로를 치하하며, 성루에서 횃불을 올리면 성으로 들어가 역적들을 주살하기로 하고는 진등을 다시 소관으로 보냈다.


소관에 당도한 진등은 급히 말에서 뛰어내리며 진궁에게 급보를 전했다. 오늘 조조군이 갑자기 공격지를 바꿔 [서주]를 친다하니 속히 군사를 거느려 서주로 향하라는 여포의  명이 있었다며 거짓을 전했다. 진궁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주군의 명에 거역할 수 없어 [서주성]으로 진군했다. 


성채가 비워지자 진등은 계획대로 성루에 불을 지폈다. 봉화불이 오르는 것을 본 여포는 소관을 향해 군사를 몰고 가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 서주로 향하던 진궁의 군사와 맞닥뜨리며, 양군은 서로를 조조군으로 오인하고 처절한 싸움을 했다. 



성루의 봉화불이 오르자 조조 또한 소관으로 달려가다 아군끼리 싸우는 여포군 발견하고 그들을 급습했다. 날이 밝자 망연자실한 여포는 탄식할 틈도 없이 진궁과 함께 [서주]로 되돌아갔다. 여포가 성문에 이르자 성 위에서 비 오듯 화살이 쏟아지더니 미축이 나타났다. 


당황한 여포가 진등을 찾다 그가 보이지 않자 비로소 간계임을 깨닫고 이를 갈았다. 어쩔 수없이 여포장요와 고순 있는 [소패성]으로 말을 몰았으나 뜻밖에도 그들의 군마와 맞닥뜨렸다. 이들은 여포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서주성]으로 달려가던 길이었다. 


장요(張遼) / 고순(高順)

진등의 모략에 속은 여포는 치솟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패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매복해 있던 조인에 의해 이미 탈환된 [소패성]에는 조조의 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여포가 단숨에 성을 무너뜨릴 기세로 공격하자 고리눈을 부릅뜬 장비가 나타나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얼마 후 조조의 대군이 밀려오자 여포는 동쪽으로 길을 터 간신히 조조군의 추격을 벗어났다. 여포가 한숨을 돌릴 즈음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비껴든 관우가 나타났다. 여포는 짐짓 싸우는 체하며 혈로를 뚫어 [하비성]으로 달아났다. 관우와 장비는 재회를 기뻐하며 조조의 본진으로 향했다. 


두 아우를 만난 유비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주성]에 이르자, 미축이 나와 유비의 가솔들에 무사함을 전했다. 조조는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유비 진등 부자를 좌우에 앉히고 진등에게 복파장군의 벼슬을 내렸다.


유비 모사 미축(麋竺)

☐  진궁의 의각지세(犄角之勢)                   


[서주]를 점령한 조조는 이제 [하비성]을 공략하려 했으나 여포원술과 결탁하는 것을 우려했다. 하여 조조유비에게 원술이 있는 [회남]으로 가는 경계를 감시토록 하고 자신은 산동(연주, 청주)의 길목을 방비하며 [하비성]을 치기로 했다. 


한편 난공불락의 [하비성]에 머물던 여포가 여유를 보이자, 진궁이 나서 성문을 나가 싸울 것을 권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조조군이 지쳐있을 때 역습을 가하자는 진궁의 계책을 끝내 물리친 여포에게 조조가 찾아와 감언이설로 항복을 권했다. 여포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자 진궁은 재빨리 조조를 향해 활을 쏘았다. 



화가 치민 조조가 군사를 몰고 성을 공격하자 진궁은 다시 의각지세의 방책을 내놨다. 여포가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친 다음 조조가 공격해올 때 성안에 있던 자신이 조조의 뒤를 친다면 조조군은 고립무원이 되고 군량이 떨어져 손쉽게 섬멸될 것이라는 계책이었다. 


하지만 여포는 아내와 애첩의 눈물어린 만류에 마음이 흔들려 성 밖을 나가려 들지 않고 술독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포는 다시 원술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사자를 보냈다. 여포의 사자일행은 조조의 포위망을 뚫고 [수춘성]에 머물던 원술을 만났으나 여포의 딸을 보내는 조건으로 출병하겠다는 답신을 주었다. 



사자일행은 돌아오던 중 장비의 군사에게 목숨을 잃고 일부만 겨우 [하비성]으로 도망쳤다. 여포는 딸을 원술에게 보내기로 결심하고 고순에게 3천기의 호송군을 이끌게 했다. 자신이 직접 2백리까지 여식을 데려다 주기로 한 여포는 딸을 등에 업어 맨 후 포위망을 뚫어 달렸다. 


그때 유비여포를 알아보고 달려들면서 양군의 혼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조조군이 합세해 오자 여포는 하는 수 없이 하비성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여포가 성에 틀어박혀 술로써 근심을  달래고 있던 중 [하비성]을 포위하고 있던 조조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두 달이 넘도록 성은 함락되지 않는데다 겨울로 이어지는 혹한 속에 군량도 바닥나고 있었다. 군마의 동사(凍死)를 걱정하던 조조가 철군을 의논하자 모사들이 나서 철군을 반대하며 계책을 내놓았다. 



조조곽가의 제안에 따라 군사를 동원해 성으로 흐르는 두 강에 둑을 쌓은 후 [하비성]으로 물줄기를 돌려 성이 잠기도록 했다. 며칠 후 하비성은 동문을 제외하고는 순식간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여포는 당장 술을 끊기로 하고 성내에 금주령을 내렸다. 


며칠 후 후성이 집에서 빚은 술로 장수들과의 조졸한 자리를 마련코자 여포를 찾아와 승낙을 청하다 오십대의 매를 맞고 풀려나왔다. 이를 야속하게 여긴 송헌위속여포를 사로잡아 조조에게 바칠 것을 모의하자, 후성도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다. 


곽가(郭嘉) / 후성(侯成)

☐  미련한 여포의 죽음      

                   

적토마를 달려 조조 진영에 도착한 후성조조에게 적토마를 바친 후 투항하게 된 연유를 알리고 송헌위속이 함께 내응키로 했으니 성안에 백기가 꽂힐 때 공격할 것을 아뢨다. 조조는 기뻐하며 여포의 목을 바치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는 격문을 화살에 달아 [하비성] 안으로 쏘아 올렸다. 


새벽녘이 되자 조조의 군사는 일제히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함성에 잠이 깬 여포가 크게 놀라 성안의 군사를 점검하고 있을 때쯤 후성이 적토마를 빼내 달아난 사실을 알게 됐다. 어느새 뗏목을 탄 군사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며 반나절을 양군은 서로 찌르고 베었다. 


해가 중천에 머물 때쯤 지친 조조군이 잠시 뒤로 물러서자, 꼭두새벽부터 싸웠던 여포도 지친 몸을 문루에 두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계속해 동정을 살피고 있던 송헌위속여포에 다가가 잽싸게 밧줄을 동여맸다. 여포가 천하장사였지만 송헌 위속 또한 장수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헌(宋憲) / 위속(魏續)

망루에 백기가 오르자 조조군은 함성을 지르며 다시 성을 공격했다. 위속이 동문을 열자 하후연의 군사들이 성안으로 들이닥치며 고순 장요를 사로잡으니 여포의 군사들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 무렵, 남문에 있던 진궁마저 사로잡히자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하비성]도 이제 조조의 손안에 떨어지고 말았다. 날이 밝자 조조유비 앞에 밧줄에 꽁꽁 묶인 여포가 끌려나오고, 이내 고순이 참형되더니 진궁도 끌려나왔다. 


여포(呂布) / 진궁(陳宮)

지난날 엉뚱한 오해로 여백사의 일가를 죽이고도 태연했던 조조의 잔인함과 간특함에 홀연히 조조의 곁을 떠났던 진궁이었다. 조조가 진심을 다해 진궁을 회유하려 했으나, 그는 흔들리지 않고 절개를 지키며 죽음을 맞이했다. 여포가 끌려 나가며 살려 달라 애원하자 함께 잡혀온 장요가 여포를 꾸짖었다. 


결국 여포는 밧줄에 목이 매인 채 시신이 길거리에 효수되었고, 장요는 유비와 관우의 간곡한 청원으로 조조의 휘하에 들게 됐다. [하비성]을 점령한 조조가 [허도]를 향한 개선 길에 오를 때 촌로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도록 해달라며 간청하였다. 



순간 조조유비에 대한 경계심과 시기심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허도]에 당도한 다음날 조조유비와 함께 조복을 갖춰 입고 입궐해 천자를 배알했다. 헌제유비의 성이 유(劉)씨임을 들어 그의 선조에 대해 묻고는 그가 한실의 후예임이 밝혀지자, 편전에 들게 하여 숙질간의 예를 갖춰 조조와 함께 주연을 베푼 후 좌장군에 봉했다.


사실 유비의 촌수로 볼 때 가까운 혈통이 아니었지만 헌제는 종친인 것만으로도 유비를 가까이 두고 조조를 견제하고 싶었다. 이후로 천하는 그를 유 황숙(皇叔)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조가 승상부로 돌아오자 순욱을 위시한 모사들은 유비로 인한 장래를 걱정했지만, 정작 조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본 페이지에 나오는 지명 위치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매거진의 이전글 간략 삼국지(0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