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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Feb 01. 2019

간략 삼국지(14)

원소의 죽음


☐  용솟음치는 황하(黃河)의 물결            


다음날 조조는 정예병 5천을 [하북]의 군대로 위장한 후 출전을 서둘렀다. 하지만 장요조조가 친히 군사를 이끄는 것을 만류했으나 조조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조에게는 장수로서, 주군으로서 절대 필요한 명철한 헤아림과 직관이 있었는데, 이러한 점이 원소와 극명히 대비되는 점이었다.


조조는 출진한 이후 본진을 지킬 군사를 조홍과 함께 본진에 배치하고 하후돈 형제와 을 좌우로 군사와 함께 배치한 후, 조조 자신은 장요허저를 선봉으로 삼고 서황우금을 후진으로 삼아 밤길을 재촉하며 진군했다. 


조조 장수 장요, 허저 / 서황, 우금

원소군으로 위장한 조조군은 수월하게 몇 개의 원소 진영을 통과해 [오소] 땅에 이르자, 어느새 사경(四更)이 되었다. 조조군은 섶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뛰어들며 군량과 마초를 쌓아 둔 창고에 불을 질렀다. 


[오소]의 군사들이 지리멸렬 되어 갈 즈음 순우경이 끌려오자, 조조는 그의 귀와 코와 손가락을 모두 자른 뒤 원소진영으로 보냈다. 그때 원소는 북쪽하늘의 불길을 발견하고는 우왕좌왕하다가, [관도]의 조조 본진과 [오소]에 군사를 각각 출진시켰다.

 


이에 조조는 군사들을 순우경의 패잔병으로 위장해 구원군을 안심시킨 후 앞뒤에서 덮쳐들어 순식간에 1만의 원소군을 섬멸했다. 또한 조조는 변장한 졸개를 원소 진영에 보내 [오소]에서 조조군을 무찔렀다고 거짓으로 고하게 했다. 


그 말을 들은 원소는 안심하고 [관도] 쪽에만 지원군을 보냈다. 한편 [관도]로 군사를 몰고 간 장합과 고람은 조조 본진과 좌우에 배치된 복병에 의해 에워싸인 채 포위망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한편 순우경이 원소의 본진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원소는 조조에게 당한 것을 깨닫고 그의 목을 내리쳤다.


관도대전  전투경로

때마침 관도에서도 군사들이 패해 돌아오자 원소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들을 문초하기 위해 패한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패장 장합과 고람은 조조에게 투항해 조조의 편장군이 되었다. 


허유에 이어 두 장군마저 조조진영으로 투항해가고 [오소] 땅의 군량과 무기까지 잃다보니, 원소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게 됐다. 조조는 장합과 고람에게 군사를 주어 원소진영을 공격케 했다. 이들이 한밤중 기습을 가하자 원소군은 태반으로 줄어 있었다. 


원소 장수 장합(張合) / 고람(高覽)

조조순유의 계책에 따라 거짓소문을 퍼뜨려 원소가 군사를 나누어 배치하게 한 후 원소 본진을 치도록 했다. 소문을 들은 원소가 [여양]과 [업성]에 각각 5만의 군사를 급파하니, 원소의 본진은 눈에 띄게 허술해졌다. 조조가 3지역에 나눠놓은 군사들과 함께 일제히 본진을 급습하자, 원소는 황망히 말위에 올라 달아나기 급급했다.


70만 대군을 이끌고 [관도] 땅에 온 원소는 이날 전투에서만  7만의 군사를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황하를 건넜다. 8백여 기를 이끌고 간신히 [여양] 북쪽에 이른 원소는 장수 장의거와 봉기를 만나며 흩어졌던 패잔병을 불러 모은 후 [기주]로 돌아가 다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퇴각하는 원소(袁紹)

성 깊숙이 들어앉아 분노와 번뇌의 나날을 보내던 원소에게 뜻하지 않은 분란이 일어났다. 원소의 처 유씨가 세자를 세울 것을 재촉했다. 원소에게는 원담원희원상 세 아들이 있었는데 셋째 원상만이 유부인의 소생이었다. 


원소는 중신들을 불러 의향을 물었으나 심배봉기원상을 옹립했고, 곽도신평원담을 받들고 있어 결정을 내리 못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장남 원담이 [청주]에서 5만 군사를 거느리고 오더니, 차남 원희도 질세라 6만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 이에 원소는 크게 기뻐하며 또다시 조조를 치기위해 [기주]를 떠났다. 


원소 중신 심배, 봉기 / 곽도, 신평

조조는 [관도] 싸움에서 이긴 후 [황하] 일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전군을 이끌고 원소군과 맞섰다. 원상이 쌍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와 서황의 부장 사환과 어우르다 화살을 날려, 사환의 왼쪽 눈을 꽂았다. 아들의 장한 모습을 본 원소는 기뻐하며 그 여세를 몰아 군사를 휘몰았다.


군사 수에서 열세이던 조조는 군사를 10대(隊)로 나눠 매복한 후 전군을 [황하]까지 후퇴시켜 원소를 유인하기로 했다. 허저의 군사들이 싸우는 척하며 달아나니, 원소군은 강가까지 쫓으면 길이 끊기니 독 안에 든 쥐라 여기며 뒤쫓았다. 


[황하]에 이른 조조 군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니 기세가 움츠러든 원소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퇴각하던 원소군은 10곳에 매복해 있던 조조군에게 찢기고 짓밟히며 20만의 군사가 겨우 1만여 명으로 줄었다. 수 백리를 쉴 새 없이 달려온 원소는 더 이상 말을 달리지 못하고 피를 토해냈다. 



☐  원소의 죽음


[기주성]으로 돌아온 원소는 두 아들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몸을 치료하는 데만 전념했다. 이때쯤 조조 진영에는 [여남]의 유비가 [허도]로 진격해온다는 순욱의 전령이 당도해 있었다. 조조조홍으로 하여금 [황하] 연안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여남]으로 향하던 중 [양산]에 이르러 유비와 맞닥뜨렸다. 


당황한 유비는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진을 펼쳤다. 조자룡허저가  30여 합을 겨룰 때쯤 관우장비가 군사를 이끌며 삼면에서 총공세를 펼치자, 먼 길을 달려와 지친 조조군은 퇴각하고 말았다. 이튿날 조자룡이 나와 싸움을 걸었지만 조조 군사들은 10여일이 지나도록  진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홍(趙弘)

이러한 때 조조가 본진의 군사를 빼돌려 [여남]을 공략한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유비는 서둘러 관우를 [여남]으로 보냈으나, 이미 하후돈이 [여남성]을 취했고 장비관우는 조조군에게 포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비는 일부 군사만 남기고 진영를 빠져나와 몇 리를 둘러보다 매복된 조조군의 습격을 받았다. 


유비군이 한순간 허물어지자 유비는 도주할 길을 찾기 바빴다. 조자룡이 조조의 세 장수와 싸우며 혈로를 열자, 유비는 바쁘게 말을 몰아 산속을 달렸다. 날이 밝아 올 무렵 맞은편 고개길에 유벽 손건 일행이 나타났으나 이내 조조군이 뒤쫓아 왔다.  


조운(趙雲)

유벽은 길을 열기위해 고람과 겨뤘으나 고람의 칼날에 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유비는 그야말로 진퇴양란에 빠졌다. 때마침 조자룡이 질풍처럼 달려와 적군을 쓸어나갈 때쯤 뒤따라온 관우의 무리가 합세하자, 장합은 이내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다. 한편 포위망에 갇힌 장비는 달려온 관우의 구원을 받아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비는 1천여 기의 군사를 거느리고 험준한 산세에 진영을 세웠으나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후퇴를 거듭하며 대응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불운했던 지난날들을 한탄하자 관우유비를 달래며 함께 있는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에 의기를 되살렸다.


손건(孫乾)

이때 손건이 나서 당분간 유비가 [형주]태수에게 의지하며 후일을 도모토록 설득했다. 손건이 [형주]에 이르러 유표에게 예를 올리며 유비의 근황을 전하자 유표는 난세에 종친인 유비를 불러들여 형주에 머물게 할 경우 불리하자 않을 것이란 생각에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유표의 장수인 채모유비를 머물게 할 경우 조조와 적대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유표 채모를 꾸짖고 유비일행을 맞이해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조조는 먼저 원소를 치고 그 다음 [형주]를 취하기로 했다. 


원소(袁紹)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이듬해 정월이 되자, 다시 원소를 치기위해 [관도]로 출정하며, [형주]를 경계하기 위해 하후돈을 [여남]으로 보냈다. 지난해 패전 이후 겨우 병을 추스른 원소 원상이 출진을 자청하자, [청주]와 [유주], [병주]를 지키는 두 아들과 조카에게 군사를 이끌게 하여 원상과 함께 네 길로 나누어 조조를 치게 했다. 


원상이 조조군의 선봉인 장요와 맞서다 이내 말머리를 돌려 [기주성]으로 도망쳐오자, 원소는 울화가 도져 의식이 혼미해졌다. 이때 유부인이 급히 원상을 후사로 정하려하자, 원소는 겨우 머리를 끄떡이다 붉은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었다. 일찍이 사세오공(四世五公)의 후예로 1백만 대군을 거느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으로서는 덧없는 죽음이었다. 



원소가 죽자, 유부인과 원상은 원소가 총애하던 다섯 첩과 그 가솔들을 잔인하게 도륙하며 어지러운 조짐이 나타났다. 원상이 대사마 대장군에 오르자, 큰형 원담은 화가 치솟았으나 우선 조조군을 맞기 위해 [여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원담은 서황에게 패하자 곧 [여양성]으로 들어가 원상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원상이 이복형을 없애고자 구원병을 보내지 않자, 격분한 원담은 조조에게로 투항코자 했다. 이에 원상은 크게 놀라 군사를 이끌고 [여양]으로 향했다. 원담과 원상은 성 안팎에 진을 치고 수개월을 대치했으나, 조조 군의 총공세를 받자 퇴각해 [기주성]으로 들어갔다. 


[기주성]이 북방 제일의 철옹성이다 보니 조조는 곽가의 권유에 따라, 먼저 [형주]를 치기로 하고, [기주성]은 원상 형제간의 권력싸움이 불어지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조조는 모사 가후로 하여금 [여양성]을 지키게 하고 조홍에게도 군사를 주어 [관도]에 머물게 한 후,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출진했다.  


원상(袁尙)

☐  원담과 조조의 결탁     


조조가 물러가자 원담은 또다시 원상에 대한 적개심이 일었다. 원담원상을 제거하기 위해 주연을 열어 초청했으나 원상의 장수인 심배가 의심하며 만류했다. 원상이 군사 5만을 이끌자 원담은 싸움에 패하며 [평원]으로 물러나 성문을 굳게 닫았다. 


원담은 계책을 세워 조조에게 거짓 투항하여 조조로 하여금 원상을 치도록 하고, 그 후에 조조를 도모하기로 했다. 이때 조조는 군사를 이끌어 [하남]의 서평에 진영을 펴고 있었고, 유표유비를 선봉에 세워 조조군을 맞도록 하고 있었다. 


원담(袁譚)

양군이 접전을 벌이려고 할 즈음 조조는 원담이 보낸 사자의 전갈을 받고 중신들을 불러 모았다. 정욱은 예정대로 [형주]를 치자는 의견을 내놨으나, 조조는 순유의 의견을 따라 먼저 [하북]을 평정키로 정하고 진을 거두어 다시 [기주]로 진병했다.


조조원담에게 [평원성]에 머물도록 한 뒤 자신은 [여양] 땅으로 군사를 물린 후, 봄이 오면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기주성]을 치기위해 땅굴을 파게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심배는 굴속으로 물을 퍼부어 채운 후 돌로 굴을 막아버렸다. 


하는 수 없이 조조는 군사를 나누어 한쪽에서는 [기주성]을 치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성 밖에 머물고 있는 원상을 맞기로 했다. 이때 원상은 [양평] 땅에 이르러 수하를 [기주성]으로 몰래 들여보내 자신의 계책을 심배에게 알리도록 했다. 


본 페이지에 나오는 지명 위치

노약자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항복케 하고 그 뒤에 군사를 내보내 조조군을 치면서 횃불을 올리면 뒤에서 함께 협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심배가 성 위에 백기를 내걸자 조조는 계교임을 알아채고 군사를 양쪽에 매복시켜 성 밖으로 나온 군사를 덮쳤다.


놀란 심배가 성문을 굳게 닫자 조조군은 [양평]으로 달려가 총공세를 펼쳤다. 크게 패한 원상의 군사는 [서산]으로 물러났으나, 조조군이 다시 휘몰아오자 원상은 어둠을 틈타 달아났다. 쫓기던 원상은 조조의 복병을 만나 결국 항복을 청했지만, 그날 밤 장요가 원상의 진영을 급습하자 혼비백산해 맨몸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조조는 원상의 뒤를 쫓지 않고 먼저 [기주성]을 무너뜨릴 계책을 세웠다. 조조는 군사를 풀어 성 둘레에 수로를 판 후 장하의 물길을 끌어들여 [기주성]을 물속에 잠기게 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여긴 심영이 그날 밤 새벽 성문을 열어놓자 조조군은 물밀듯이 쳐들어가 심배를 사로잡았다. 


심배(審配) / 심영(審瑩)

심배는 조조의 회유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다. 이때 지난날 원소가 조조를 칠 당시에 조조를 비방하는 격문을 썼던 진림이 잡혀왔다. 조조가 지난날 격문에서 왜 자신의 아비와 조상까지 욕되게 썼느냐 묻자, 진림은 “화살을 날리려면 시위에 걸 수밖에 없다”며 응수했다. 


조조는 그의 글재주를 헤아려 그를 자신의 휘하에 종사(從事)로 삼았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직관과 과감한 결단력을 갖추었던 조조는 지난날 자신의 맏아들 조앙과 자신이 아끼던 전위를 죽인 장수(張繡)를 비롯해, 원소 휘하에 진림 등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하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진림(陳琳)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https://brunch.co.kr/@jangkm2000#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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