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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Feb 11. 2019

간략 삼국지(18)

천하일색 자매


☐  피로 물든 당양 벌판


조운은 날카로운 창날로 조조의 군사들을 찌르며 포로가 된 미축을 구해, 감부인과 함께 [장판교]로 달려가 장비에게 넘긴 후 미부인공자를 찾기 위해 말을 몰아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이때 조운하후돈의 아우인 하우은을 죽이고 보검 청홍도를 얻은 후, 구름떼 같은 적군을 무찌르며 미부인의 행방을 물어 농가뒤꼍 우물가에서 아기를 안고 흐느끼는 미부인을 찾았다. 


조운이 미부인에게 말에 오르기를 권했으나, 그녀는 조운으로 하여금 아이를 안고 무사히 적진을 빠져나가기를 고집하며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유비의 외아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미부인의 용기에 조운은 목 놓아 울었다. 갈 길이 바쁜 조운은 갑옷 안에 세 살배기 아두를 품고 사력(死力)을 다해 50여명의 조조 장수들을 베며 길을 열어 질주했다. 


기진맥진해진 조운장비에게 뒤를 맡기고 다리를 건너, 아두를 안아 유비에 바치며 미부인의 소식을 전했다. 한편 [장판교]에 머물던 장비는 허저와 하후돈 등 조조의 여러 장수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타나자, 고리눈을 부릅뜬 채 자웅을 겨뤄보자며 큰 소리로 외쳐댔다.



때마침 중군을 이끌고 나타난 조조는 장비의 위압적인 고함소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혹시 모를 공명의 계략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며 잠시 군사를 물리도록 했다. 


조조가 물러가자 장비는 숲에 매복시켰던 부하 20여기를 불러내 [장판교]를 끊어 조조군이 건너지 못하게 한 다음 유비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소상히 전했다. 유비는 장비의 용맹과 지모를 칭찬했지만, [장판교]를 끊은 일에 대해 조조가 유비의 군사가 적음을 간파하고 추격해 올 것을 걱정했다.



유비 조조가 끊긴 다리를 보고 뒤쫓을 것에 대비해 군사를 이끌고 [한진]으로 가기 위해 서둘렀다. 이때 장비가 다리를 끊고 도망갔음을 알게 된 조조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길을 재촉했다. 


조조군이 말에 채찍을 가하며 달려 나가 유비 일행을 발견할 때쯤 느닷없이 청룡도를 비껴든 관우가 적토마를 타고 나타났다. 관우는 [강하]의 유기 군사 1만을 얻어 급히 돌아오는 길이었다. 조조는 관우가 나타나자 또다시 제갈량의 계책으로 여기고 즉시 수만의 군사를 물려 달아났다. 


관우(關羽) / 조운(趙雲)

[한수] 나루에 다다른 관우가 유비를 만나 그간의 일들을 고할 때쯤 문득 강의 남쪽에 유기가 수척의 배를 몰고 나타나더니, 얼마 후 강의 서남쪽으로부터 공명이 탄 한 떼의 전선(戰船)이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이에 유비는 의기가 솟구치는 듯 휘하장수들을 불러 모아 조조를 깨뜨릴 일을 의논했다. 한편 조조는 유비가 수로를 이용해 [강릉]을 취할 것을 염려하며 밤낮없이 강릉으로 말을 달려, 등의로 부터 항복을 받아내 [강릉성]을 차지하였다.     



조조는 [형주]전역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오자, 다시 시선을 [동오]로 돌려 손권에게 유비를 사로잡아 [형주] 땅을 반씩 나눠 갖자고 제의했다. 조조의 동태를 엿보고 있던 [동오]의 손권조조가 [형주]를 취함으로서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되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동오]의 대현(大賢)으로 불리던 노숙은 자신이 [형주]로 가서, 그곳의 형세를 살핀 후 유비를 만나 동맹을 위한 밀약을 맺고 오겠다며 나섰다. 한편 [강하] 땅에 이른 유비공명유기를 불러 앞날을 의논하고 있었다. 공명은 [동오]에서 사자가 올 것을 예견하며, 자신이 직접 [동오]로 들어가 남과 북이 서로 싸우도록 하겠다는 계책을 내놨다. 


노숙(魯肅)

만약 남쪽이 이기면 함께 조조를 쳐 [형주]를 수중에 거두고, 반대로 조조가 이기면 그 기회를 타서 [강남]을 취하자는 계략이었다. 공명의 예측대로 노숙이 찾아오자, 유비는 서둘러 술상을 마련해 후당으로 청했다. 어느덧 술이 거나하게 취한 노숙이 조조군사의 규모를 물어오자, 유비는 대답을 회피하며 공명을 불러들였다. 


유비 의중을 떠보던 노숙은 이윽고 믿을만한 사람을 [동오]에 보내 함께 손을 잡고 대사를 도모하자며 본심을 털어 놓았다. 결국 노숙은 공명과 동행하여 손권과 함께 대사를 의논하겠다며 유비의 승낙을 얻어 작별을 고한 후 공명과 함께 배에 올라 [동오]로 향했다. 



☐  공명의 설전(舌戰)  

                   

선상(船上)에서의 노숙공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말로써 손권을 설득할 비책을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 짐작하며, 손권을 만날 때 조조군의 군사(軍師)와 장수가 결코 많지 않다고 말하도록 당부했다. [시상성]에 다다른 노숙공명을 역관으로 안내하고 나서 즉시 성안으로 들자, 손권노숙에게 조조가 보낸 격문을 건넸다. 


조조의 격문은 손권이 항복한 후 함께 유비를 치던지, 자신의 백만 대군과 대적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일종에 최후통첩이었다. 이에 손권이 쉽게 결정을 내지지 못하자, 여러 문무관원들은 부전론(不戰論)을 주장했다. 다음날 노숙공명을 [시상성]의 전당 앞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손권과 함께 20여명의 문무관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오]를 설복해 조조와 싸우도록 하려는 공명의 속셈을 눈치 챈 명장(名將) 장소가 이내 공명을 반격하며 설전이 오갔다. 


이어 여러 문무 대신들이 공명의 약점을 파고들며 비아냥대자, 공명은 대신들이 늘어놓는 독설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당당하게 반박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명의 명쾌한 답변에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손권은 노숙을 시켜 공명을 불러낸 후 마주앉자 조조의 병력을 물어왔다. 이에 공명은 조조군이 1백만에 이르며, 용맹한 장수들도 1, 2천이라며 실제보다 과장하여 답변했다. 


장소(長笑)

손권이 무거운 얼굴이 되어 조조군과 싸워야 되는지를 묻자, 공명은 부형(父兄)의 기업(基業)을 이어받아 즉시 조조와 국교를 끊고 싸우던지, 조조와 천하를 다툴만한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중론을 따라 조조 앞에 몸을 굽혀 그를 섬기던지 양자택일하되 서둘러 결단토록 재촉하였다. 


이때 손권이 불쑥 유비가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는 까닭을 물어오자, 이를 기다리고 있던 공명은 “싸움에서 이기고 짐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천명(天命)일진데 형세가 불리하다고 어찌 함부로 몸을 굽혀 적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며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순간 손권은 공명이 자신과 유비를 견주어 말한 데에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손권은 이내 화를 풀며, 공명을 후당으로 청해 주안상을 차려 대접하며 먼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손권은 자신이 조조에게 항복할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만일 유비와 동맹할 경우 유비의 병력이 미약함을 불안해했다. 


손권(孫權)

공명은 조조의 군사들이 먼 길을 오느라 지쳐있고, 북방의 군사이기에 수전에 익숙하지 못하며, 조조에게 항복한 [형주]의 군사들은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손권을 설득했다. 조조와의 결전을 두려워하며 번민하던 손권은 마침내 [파양호]에서 수군을 조련하고 있던 수군도독 주유를 불러들였다.   


☐  천하일색 大喬     

           

주유는 일찍이 손책에게 발탁돼 스물넷에 중랑장이 된 영걸이었으며, 그의 아내는 손책의 처제이므로 손권과는 친족 간 이었기에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동오]에는 교공(喬公)이라는 명문가에 절세미인의 두 딸이 있었는데 손책은 자매 중 언니를 비로 삼았고, 주유는 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주유가 시상에 이르자 부전론과 주전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각기 주유를 찾아와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주유는 속마음을 감춘 채 양쪽의 문무관원들에게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하고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밤이 초경에 이르렀을 때 노숙 제갈량과 함께 주유를 찾아왔다. 노숙 주유의 흉중을 묻자 그는 서슴없이 항복을 권할 것임을 선언했다. 


주유(周瑜) / 손책(孫策)

노숙이 격한 목소리로 주유를 공박하자 주유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공명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가볍게 웃으며 주유의 항복 선언에 동조를 하고 나섰다. 주유 공명을 떠보려 했으나, 어느새 공명이 주유를 슬쩍 건드려 그의 심사를 긁고 있었다. 


어느덧 공명 조조가 당장 군사를 물릴 계책을 내놓았다. 조조가 두 여인을 얻게 되면 필시 기뻐하며 돌아갈 것이란 얘기에 주유도 다급하게 물었다. 공명조조가 일찍이 [강동] 교공의 두 딸인 대교와 소교가 천하일색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두 여인을 얻어 만년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다며 주유를 자극하였다. 

   

대교(大喬)

이어 공명은 조조의 아들이 지었다는 “동작대부”를 암송했다. 시(詩)귀 중 “이교(二橋)를 데려다 동남(東南)으로 두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겨보리라!“를 읊자 주유는 노기를 띠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공명은 二橋(두 다리)를 음이 같은 二喬(대교와 소교)로 슬며시 바꾸어 읊은 것이었다. 


공명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유를 달래자, 주유소교가 자신의 아내임을 알리며 화를 참지 못했다. 공명이 크게 놀란 척하며 사죄하자, 주유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조조를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청했다. 


소교(小喬)

이튿날 주유는 문무대관이 도열해 있는 전각에 들어서 장소에게 항복을 주장했던 까닭을 물은 후, 부전론을 반박하며 차디찬 얼굴로 꾸짖었다. 이에 항복을 주장하던 대신들은 주유의 기세에 눌려 장소를 거들지 못했다. 


손권주유에게 계책을 재촉하자, 주유는 조조군의 네 가지 결점을 들어 조조를 무찌르겠다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주유손권의 보검을 건네받고는 조조를 칠 것을 선언한 후, 여전히 불안해하는 손권을 안심시키고 부중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주유 손권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있는 공명에 대해 감탄과 염려가 함께 일면서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유가 6대로 군사를 편성한 뒤 군사를 재촉해 물과 뭍으로 출진하니, 그 기세가 사뭇 하늘을 찌를 듯했다.    



☐  주유의 책략(策略)             


주유공명을 [동오]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의 형인 제갈근을 불러 제갈량유비를 버리고 손권을 섬길 수 있도록 설득해줄 것을 청했으나, 제갈근은 끝내 공명을 회유하지 못했다. 주유는 언덕위에 산을 의지해 진채를 세운 뒤 공명을 불러 앞일을 의논하며, 공명에게 1천을 군사를 딸려 조조의 보급창인 취철산을 급습토록 지시했다. 


공명은 적의 손을 빌려 자신을 해치려는 주유의 속셈을 알았지만 쾌히 승낙하고 출진준비를 했다. 주유의 뜻을 알아챈 노숙공명을 찾아가 안타까운 마음에 슬며시 언질을 주었다. 공명노숙에게 자신이 취철산에서 싸우다 죽게 되면, 주유가 어리석은 장수라는 소문이 천하에 퍼질 것이라며 은근히 주유의 능력을 폄훼하였다.


 노숙이 이 말을 주유에게 전하자, 이것이 공명의 계교임을 알 리 없던 주유는 화를 내며 즉시 공명의 출진을 중지시켰다. 한편 [강하]에 머물던 유비는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게 하고, 군사를 거느려 [하구]로 나와 미축에게 공명의 안부를 알아오도록 [동오]로 보냈다.

  

주유(周瑜)

미축은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가 진영에 이르러 주유를 만났다. 미축이 공명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주유는 오히려 유비를 자신의 진중으로 청했다. 유비는 자신이 함께 조조를 치자고 먼저 청했던 까닭에 거절할 수가 없어, 관우와 함께 2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배에 올라 [강동]으로 향했다.   


주유는 휘장 뒤에 자객을 숨긴 뒤 유비를 맞아 주연을 벌였다. 술자리의 흥이 무르익어가자 주유는 잔을 들어 자객들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하다, 문득 유비 뒤에 시립해있는 장수가 관우임을 알고는 놀란 마음에 유비를 해치려던 계획을 단념하고 말았다. 


이때 노숙은 동오를 위해 주유의 계교가 실패한 것을 내심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유비는 공명을 찾았으나, 주유가 조조를 물리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 청하니 유비도 더는 말을 못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유비가 강가에 이르자 배안에서 가다리고 있던 공명은 주유가 유비를 죽이려했던 사실을 알렸다. 


미축(麋竺)

놀란 유비가 함께 돌아가기를 권하자 공명유비를 안심시킨 후, 동짓달 갑자일(甲子日)에 조자룡으로 하여금 이곳 남쪽강변에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도록 당부한 뒤에 서둘러 유비를 떠나보냈다. 한편 [동오]의 진중에는 조조의 사자가 와 있었다. 


유비를 죽이지 못해 심사가 뒤틀려 있던 주유는 서찰을 보지도 않고 찢어버린 후 사자의 목을 베어 돌려보냈다. 주유가 조조군과 결전을 치르기 위해 배를 몰고 나가자, 조조도 [형주]로부터 투항해온 채모장윤을 선봉에 세워 직접 삼강구(三江口)로 나아갔다. 


하지만 수전에 익숙지 못한 조조군은 [동오] 수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조조채모장윤을 시켜 군사들이 조련할 수 있는 수채를 만들고 강변을 따라 수문을 24개로 나눠 세운 후, 큰 배로 밖을 둘러싸게 해 성으로 삼아 매일 북방군사들을 조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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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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