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변사(張飛變死)
☐ 천자에 오른 유비와 장비의 죽음
천자에 오른 조비는 연호를 연강(延康)으로 삼고 그 아비 조조에게 태조 무황제의 시호를 내렸다. 산양공에 봉해진 헌제가 산양(관도 동쪽)으로 떠나자, 이를 지켜보던 군사와 백성들은 모두 비통해했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던 날, 하늘에서 모래와 돌이 쏟아지는 기변(奇變)이 일어나 조비는 잠시 기절했었다. 조비는 이때 얻은 병이 쉽게 낫지 않자,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새롭게 궁궐을 짓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한중왕 유비는 목을 놓아 울며, 모든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 허도(허창)를 향해 제례를 올렸다. 유비는 상심 끝에 또다시 병이 돋아 정무를 돌보지 못하고 모든 일을 공명에게 맡겼다.
이에 공명은 한중왕을 황제로 모셔 끊어진 한 황실을 잇고자 유비로 하여금 제위에 오르기를 권했다. 유비가 거듭해 사양하자 공명은 계교를 꾸미기로 작정한 후, 병을 핑계대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비는 공명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몸소 집으로 찾아가 공명을 문병했다. 공명은 애써 괴로운 얼굴을 하며, 만일 한중왕이 사사로운 명분에만 얽매인다면 신하들이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 조비와 손권이 공격해 오면 [서촉]마저 지켜내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
마침내 유비는 한실(漢室)의 종친으로서 끊어진 한 황실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명분 앞에 마지못해 제위에 올랐다. 때는 건안 26년(221년) 사월 열이틀이었다.
유비는 연호를 장무(章武)로 하고 왕비 오씨를 황후로 높였으며, 맏이 유선을 태자로 삼고 공명을 승상으로 삼았다. 유비는 조서를 내려 관우의 원수를 갚고자 [동오]를 치기로 했다.
이때 조운이 나서, 나라를 빼앗은 역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라며 먼저 위(魏)를 취하도록 주장했으나 유비는 끝내 [동오]를 치도록 영을 내렸다. 그때 장비는 관우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며 밤낮을 술로 지새웠다.
원래 술이 취하면 과격해지는 장비는 슬픔과 분노로 장졸들의 조그만 잘못에도 사정없이 매질을 해댔다. 이럴 때 장비의 벼슬을 높이는 유비의 조서가 당도하자, 장비는 서둘러 [성도]로 말을 몰았다.
한편 군사를 일으켜 오(吳)를 칠 채비를 서두르던 유비에게 공명이 찾아가, 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황제로서 몸소 군사를 이끄는 것을 간곡히 만류했다. 때마침 장비가 당도해 유비와 함께 목 놓아 통곡하며 관우의 죽음을 슬퍼했다.
장비는 유비를 원망하며 자신이 관우의 원수를 반드시 갚겠다고 분연히 말하자, 유비자신도 군사를 이끌어 [강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유비는 낭중(파서)으로 돌아가는 장비에게 군사들에 대한 매질을 삼가도록 당부했다.
다음날이 되어 유비가 군사를 정돈한 후 떠나려하자, 학사 진복이 나와 몸소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만류했다. 유비의 꾸짖음에도 진복은 물러나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옥에 갇히고 말았다. 공명은 표문을 올려 진복의 옳은 말을 받아들이도록 권했으나 유비는 끝내 진용을 배치했다.
공명에게 [서천]과 [동천]을 지키도록 하고 마초는 위연을 도와 [한중]을 지키며, 위(魏)가 쳐들어오는 것을 방비케 했다. 이어 [동오]로 향하는 군사는 선봉을 황충이 맡도록 하고, 후군에 조운을 삼아 70만 군사를 배치했다.
한편 [낭중]으로 돌아온 장비는 출병을 서두르며, 사흘 안에 흰 갑옷과 깃발을 만들라는 군령을 내렸다. 다음날, 흰 기와 갑옷을 만드는 일을 맡은 하급 장수 범강과 장달이 장비를 찾아와 기간을 좀 더 넉넉히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장비는 화가 치솟아 그들을 심하게 매질하고는 내일까지 만들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고 호령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두 장수는 어차피 내일이면 죽을 목숨이라 여기며 장비를 죽이기로 했다.
그날 밤 장비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범강과 장달은 몰래 단검을 품고 장막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장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빳빳이 세운 채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고 있는데, 장비의 코를 고는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들렸다.
원래 장비는 눈을 뜨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들은 장비의 배와 가슴을 찔렀고 장비는 외마디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쉰다섯이었다.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머리를 잘라 [동오]로 도망쳐 버렸다.
☐ 떠오르는 장포와 관흥
[낭중]으로 향하던 유비는 장비의 죽음소식을 접하고 목 놓아 울다가 혼절하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자, 장비와 관우의 아들인 장포와 관흥이 달려와 부모의 원수를 갚기를 청했다. 유비는 아비를 잃은 두 조카의 모습에 땅에 이마를 짓찧으며 울부짖었다.
유비의 옥체를 걱정하던 신하들은 청성산 서쪽에 삼백 살 된 도인을 불러 길흉을 묻기로 했다. 유비는 도인 이의를 예로 맞아들이며 앞날을 물었다. 이의는 40여장의 종이에 병장기들을 그리더니 한 장씩 찢어 버리고 다시 한 장의 그림을 그렸다.
큰 사람 하나가 누어있는데 다른 사람이 땅을 파서 묻으려는 그림이었다. 이의는 그림 위에다 백(白)자를 써놓고 떠나 버렸다. 유비는 불쾌한 마음에 그림을 모두 불태우게 했다.
다음날 군사를 재촉해 앞으로 나아가려던 유비는 장포와 관흥이 서로 선봉을 맡겠다며 다투자, 무예로 우열을 가리도록 했다. 장포와 관흥이 활솜씨를 겨루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들의 놀라운 활솜씨에 일제히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어 장포와 관흥이 아비들 생전에 사용했던 장팔사모와 청룡언월도를 비껴 잡고 자웅을 겨루려하자, 유비는 그들을 불러 엄히 일깨우고는 관흥보다 한 살 더 많은 장포를 형님으로 섬기도록 관흥을 타이른 후, 오반을 선봉에 세우고 장포와 관흥을 좌우에 삼아 대군을 휘몰아갔다.
한편 손권은 [백제성]에 머물고 있는 유비에게 제갈근을 보내 화친을 청했다. 제갈근은 지난날 [형주] 일을 유비에게 아뢰며 관우의 죽음은 여몽이 제멋대로 군사를 일으켜 저지른 일인데, 이제 여몽이 죽고 없으니 그 원수 갚음은 절로 끝난 것이며, 또한 [형주] 땅도 돌려줄 테니 화친을 맺어 한(漢)의 제위를 빼앗은 조비를 함께 치자고 했다.
하지만 제갈근은 유비를 설득하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돌아갔다. 할 수 없이 손권은 위(魏)에 구원을 청하였고, 조비는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다. 손권은 위로부터 왕작을 받고 화친을 맺었으나 조비가 급히 구원병을 보내지 않자, 촉군을 막을 일을 걱정했다. 손권은 손환과 주연을 좌우도독으로 삼아 유비를 막게 했다.
한편 손환을 맞은 장포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 나가 오의 장수와 싸우다 말에 화살이 꽂혀 위기를 맞았으나, 관흥이 달려와 장포를 구하며 오군을 짓밟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 관흥과 손환은 다시 칼을 부딪치며 한바탕 거센 싸움을 벌였으나, 손환은 힘이 부친 듯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말았다.
관흥과 장포가 달아나는 손환을 뒤쫓자, 대군을 이끌던 오반도 오군의 영채를 짓쳐들었다. 장포와 관흥은 적진을 헤집으며 장팔사모와 청룡도를 휘둘러 [동오]의 세 장수 목을 베어버렸다. 겁에 질린 동오의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면서 촉군은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 갈수록 깊어지는 한(恨)
손환은 세 장수와 많은 군마를 잃고 나자, 손권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때 오반은 주연을 치기위해 졸개 몇을 거짓 항복토록 하는 계책을 내기로 했다. 한편 손환의 패전소식을 전해들은 주연은 구원병을 거느려 나가려다, 촉병이 항복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복해 온 졸개들은 주연에게 오늘밤 촉군이 손환의 영채를 급습하려는데 불을 올려 군호로 삼을 것임을 알렸다. 이에 주연은 기습하는 적의 뒤를 치기위해 최우에게 군사 1만을 주어 보냈다. 그날 밤 오반이 손환의 영채에 불을 지르자, 어지러워진 오군은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
불길을 본 최우는 군사들을 이끌어 공격하려다 장포에게 사로잡혀 목이 베이고 말았다. 오반의 야습에 군사 태반을 잃은 손환은 [이릉성]으로 달아났다. 한편 사자로부터 패전소식을 전해들은 손권은 장소의 의견에 따라 촉군과 맞서기로 했다.
손권은 한당을 대장으로 삼고 주태를 부장으로, 반장을 선봉에 능통을 후군에, 감녕을 구원군으로 삼았다. 그 무렵 황충은 유비를 따라 [동오]의 공격에 나섰지만, 늙은 장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임무를 받지 못했다.
화가 난 황충은 영을 받지 않고, 홀로 오군의 진으로 나아가 적장을 죽이고 반장을 물리친 후 오병을 짓밟았다. 다음날 노장 황충은 젊은 장수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분연히 말위에 올라 군마를 이끌어 반장을 맞으러 나갔다.
황충은 반장의 유인책에 속아 30 리를 뒤쫓다가매복해 있던 한당, 주태, 능통에게 포위돼 갇히고 말았다. 그때 마충의 화살이 황충의 어깨를 꿰뚫었다. 오병들이 활에 맞은 황충을 덮치려하자, 관흥과 장포가 달려와 황충을 구해 유비의 어영(御影)으로 돌아갔다.
그의 상처가 쉬 아물지 않고 병세가 깊어지자, 유비는 탄식하며 황충을 위로했다. 일흔다섯 노장은 유비의 은덕에 감사하며 눈물을 머금고 끝내 숨을 거두었다.
오호대장(五虎大將) 중 세 사람을 잃게 된 유비는 원통한 마음을 삭히며 군사를 정비해 대군을 휘몰아갔다. 한편 한당과 주태는 진을 벌여 촉병과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장포와 관흥이 달려 나와 두 적장을 단번에 베어버리자, 한당과 주태는 황급히 진문을 닫아버렸다. 촉군은 여세를 몰아 적진을 들이치니 들판에 가득 깔린 오병시체의 피가 내를 이루었다.
이때 감녕은 오나라 토벌에 참가했던 오랑캐 남만(南蠻) 장수인 사마가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관흥은 반장을 뒤쫓아 산속을 헤매다 날이 어두워져 길을 잃었다.
산장을 찾아 식사를 마친 관흥은 뒤늦게 산장으로 들어서는 반장에게 칼을 뽑아 달려들었다. 반장은 깜짝 놀라 문밖으로 뛰쳐나가다 갑자기 나타난 관우의 혼령을 보고 소스라치고 말았다.
뒤쫓아 나온 관흥은 반장을 한칼에 베어버리고, 목을 말에 매달아 얼마쯤 달려가다가 관우를 죽인 마충과 마주쳤다. 관흥은 온몸에 피가 끓어올라 마충의 목을 찍으려는데 수백의 오군들이 관흥을 에워쌌다. 위기에 순간 장포가 달려와 관흥을 구해 본영으로 돌아가자, 마충도 진영으로 돌아가 반장의 죽음을 알렸다.
한당과 주태는 패잔병을 수습하고 진을 굳게 지키도록 했다. 이때 마충은 [동오]로 투항한 부사인, 미방과 함께 강변을 방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군중(軍中)속에서 밀담이 오갔다.
역적 미방과 부사인을 죽이고 촉으로 항복하자는 군사들의 말을 엿들은 미방은 부사인을 찾아가, 마충의 목을 베어다 유비에게 바치자고 했다. 두 사람은 유비에게 마충의 목을 바친 후, 여몽에게 속아 항복했다며 잘못을 빌었다.
유비는 마충의 목을 바쳐 관우의 제사를 지낸 후, 몸소 미방과 부사인의 목을 베어 관우의 영혼을 위로했다. 손권은 유비의 매서운 원한에 두려움이 일자, 장비의 목을 담은 상자와 함께 [동오]로 투항해온 범강과 장달을 결박 지어 유비에게 보낸 후 화친을 청했다.
유비로 부터 범강과 장달을 넘겨받은 장포는 그들의 몸을 산채로 도려내 장비의 영전에 바쳐 제사를 지냈다. 이로써 유비는 두 아우의 죽음에 관계된 자들을 모두 죽였지만, 여전히 손권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 동오의 대도독 육손
손권의 화친 제의에도 불구하고 유비의 대대적인 공격이 감행되자,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했다. 지난날 여몽이 관우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 육손의 지략에서 비롯됐지만, 신하들은 그의 나이가 어리고 벼슬이 하찮음을 들어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손권은 자신의 보검을 육손에게 넘겨주며, [동오]의 모든 군마를 맡아 다스리도록 했다. 육손이 군사를 거느리고 [효정] 땅에 이르자, 한당과 주태는 그를 업신여기며 비웃고 있었다. 육손은 군령을 내려 장수들에게 각자가 맡은 요충지를 굳게 지키고 함부로 나가 싸우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그가 겁이 많다고 빈정대며 영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육손이 군마를 이끌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유비는 몸소 전군을 이끌어 나아갔다. 하지만 육손은 계책을 세워 촉군의 기세가 풀어지기를 기다렸다.
오군이 싸움에 응하지 않자, 유비는 한여름 뜨거운 햇빛을 피해 시냇물이 있는 숲으로 영채를 옮기며 오반과 함께 늙은 군사 1만을 적진 앞에 머물게 해 동오군을 유인했다. 이때 마량은 불안한 마음에 새로 세운 영채와 주위지형을 그림으로 그려 공명이 머무는 [동천]으로 떠났다.
유비의 유인책에도 육손이 좀처럼 응하지 않자 오(吳)의 장수들은 싸우자고 주장했지만, 육손은 적군이 군사를 숲속에 매복해놓고 유인책을 쓰고 있으니 사흘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자 과연 산골짜기에 주둔하고 있던 촉의 군사들이 나왔다.
육손이 장수들에게 병법을 깨우치며 좀 더 기다릴 것을 명했다. 한편 유비가 강을 따라 곳곳에 수채를 세우며 [동오]의 경계 깊숙이 들어가자, 황권은 강을 따라 내려가면 물러서기가 어렵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 무렵, 공명을 찾은 마량은 도본(圖本)을 내보이자 공명은 깜짝 놀라 탁식해 마지않았다.
숲속에 어영을 세운 것뿐만 아니라, 7백리에 걸쳐 영채를 세운 것은 매우 위험한 진영배치였다. 공명은 모든 영채를 다시 세우라 이르고, 만일의 경우 유비를 [백제성]으로 모시도록 마량에게 일렀다.
그때쯤 육손은 촉군의 마음이 풀려 게을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강의 남북으로 군사를 나눠, 마른 풀과 갈대에 염초와 유황을 넣게 한 후 화공명령을 내렸다. 육손의 빈틈없는 영을 따르던 한당과 주태는 감탄하며 군사를 이끌어갔다.
초경 무렵이 되자, 홀연 세찬 동남풍이 강하게 일면서 유비진영으로 강한 불길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숲 전체에 불이 번지며 오병이 촉군을 덮치자, 유비는 겨우 목숨을 구해 달아나다가 장포를 만나 산으로 몸을 피했다.
[동오] 군사들이 산에 불을 질러 공격하자 유비는 급히 달려온 관흥과 함께 강 아래로 내려왔지만, 주연의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이때 [강주]에 머물던 조운이 급히 군사를 휘몰아 달려왔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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