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현덕(永眠玄德)
☐ 유비 현덕의 최후
육손은 승세를 몰아 촉군을 휩쓸고 있는데 뜻밖에도 조운이 밀고 들어오자, 더 싸울 생각을 버리고 군사를 물렸다. 그때 조운은 닥치는 대로 오군을 물리치다가 주연과 맞닥뜨리자, 한칼에 베어버린 후 유비를 구해 [백제성]으로 달려갔다.
이때 유비를 뒤따르는 장졸은 1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니, 참으로 참담한 패배가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오반은 가까스로 적진을 벗어나 달아나다 조운을 만나 [백제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남만]으로부터 원군을 이끌고 왔던 사마가와 의로운 촉의 장수들은 피를 토하며 흔연히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많은 [서촉]의 장수와 군사들이 [동오] 앞에 무릎을 꿇으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쯤 이전에 유비의 아내였던 손부인은 유비가 [동오]와의 싸움에서 패해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을 듣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촉의 패잔병을 뒤쫓던 육손은 [기관] 근처에 이르러 촉의 복병을 염려하며 척후병을 보내 주위를 살피게 했다. 척후병이 돌아와 인마는 없고 강변에 돌무더기만 쌓여있다고 보고하자, 육손은 더욱 의심스러워 고을사람들을 불러 물어 보았다.
그곳이 전에 제갈량이 강변에 세워놓은 석진(石陣)임을 알게 된 육손은 의심을 풀고 진 안으로 뛰어들어 좌우를 살폈다. 이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모래와 돌멩이가 어지럽게 날아들더니 이내 어둠이 뒤덮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육손은 석진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정신이 어지러워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홀연 공명의 장인이 나타나 석진의 생문(生門)을 통해 구출해 주었다.
육손은 이곳에 팔진도를 펼쳐놓고 훗날 자신이 진 안에서 헤매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있던 공명의 비범한 재주를 보고는 탄식하며, 스스로 군사를 철수시켜 [동오]로 돌아갔다. 그때 마침 위(魏)의 장수인 조인과 조휴, 조진이 [동오]를 공격하러 나섰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으나, 육손은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였다.
그 무렵 공명에게 갔던 마량이 돌아오자 유비는 공명의 글을 보고 길게 탄식하며, [성도]로 돌아가지 않고 [백제성]에 머물며 뒷일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때 조비는 천하통일의 뜻을 품고, 먼저 오(吳)를 치기위해 대군을 이끌어 나아갔다.
[유수]에 머물던 손권은 조인의 군사가 짓쳐들어오자 주환을 내보내 적장의 목을 베고 위군을 깨뜨렸다. 조인은 수많은 군사를 잃은 채 퇴각해 조비에 아뢨다. 이어 조진도 육손의 복병 한당에게 패하고, 조휴가 여범에게 패했다는 전보가 전해졌다.
조비는 세 갈래 길로 보낸 군사가 모두 패한 소식을 접하자, 한숨지으며 탄식했다. 때마침 진중에 여름철 병이 크게 번져 많은 군사들이 죽어나가자, 조비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낙양]으로 되돌렸다.
이로써 화친을 맺었던 위(魏)와 오(吳)는 서로 간에 적대감만 갖게 되었다. 한편 [백제성]에 머물던 유비는 병을 얻어 몸져누워 있었다. 두 아우의 연이은 죽음에다, [동오]와 싸워 크게 패해 상심하던 유비는 나이가 든 탓에 병세가 낫지 않고 위중해 졌다.
어느 날 밤, 유비는 꿈속에 나타난 관우와 장비가 이제 형님을 모시고 다시 한자리에 모일 날이 얼마 남지 않은듯하다는 말을 들었다. 날이 밝자 유비는 [성도]에 태자 유선을 남기고 공명을 불렀다. 유비는 공명의 등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어, 어리고 약한 태자의 훗날을 부탁하고자 했다.
이어 주위에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한 뒤, 마량의 아우 마속에게 큰일을 맡기지 말 것을 당부하고 유조(遺詔)를 써서 태자에게 전하도록 했다. 유비는 공명의 손을 잡고 숨을 가다듬더니, 가슴속에 묻어둔 마지막 한마디를 전했다.
자신이 죽은 후에 태자 유선이 도울 만한 인물이 되거든 도와주되, 만일 그럴만한 재목이 되지못하면 승상인 공명이 [성도]의 주인이 되어 대업을 이뤄달라는 부탁이었다. 유비의 유조는 공명에 대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었다.
유비의 말에 황망해하던 공명은 땅에다 머리를 짓찧으며 이마에 피가 흘러내리자,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충의로서 태자를 받들겠다며 다짐했다. 이어 유비는 조운을 불러 자식을 부탁한 후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는, 홀연히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예순셋 이었다.(223년)
☐ 오로군(五路軍)을 막아낸 공명
공명은 서둘러 열일곱 살의 유선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촉한(蜀漢)의 후주(後主)가 된 유선은 연호를 건흥 원년으로 고치고 선친에게 소열황제의 시호를 바쳤다. 유비가 세상을 떠나자, 조비는 몹시 기뻐하며 사마의의 계책에 따라 [촉한]으로 향하는 다섯 길로 제각기 10만의 대군을 이끌어 공격하도록 했다.
조비는 요동(遼東)과 남만(南蠻)의 오랑캐에게 뇌물과 조서를 보내, 선비(鮮卑)족 왕인 가비능은 서평관(량주)을 치게 하고, 만왕(蠻王) 맹획에게는 [익주]의 사군(四郡)을 공격하게 했다.
또한 [동오]의 손권을 달래 [부성]을 빼앗도록 하고 촉에서 투항해 온 장수 맹달은 [한중]을 치게 한 후, 대장군 조진으로 하여금 [양평관]으로 들어가 [서천]을 공격하게 했다. 조조 이래 오랫동안 묻혀 지냈던 사마의는 비로소 그의 재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급보를 전해들은 유선은 서둘러 승상을 찾았으나 공명은 병을 핑계 대며 나타나지 않고,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골몰해 있었다. 공명은 네 갈래의 군사를 물리칠 계책을 세워놓고 있었지만, 손권을 물리칠 계책이 마련되지 않아 고심하고 있었다.
공명의 계책은 선비족에 대해서는 그들의 우러름을 받고있는 마초를 보내 싸움을 무마시키고, 맹획은 위연에게 막게 하며, 맹달은 그와 친한 이엄으로 하여금 편지를 보내게 하여 막게 한 후, 조진에 대해서는 조운을 보내 굳게 지키도록 용병술을 마련한 것이었다.
다만 [동오]의 손권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으며 형세를 지켜보다가 네 갈래의 군사가 이긴다면 들이칠 것이고, 촉군이 네 갈래 군사를 물리치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공명은 언변이 뛰어난 등지를 손권에게 보냈다.
한편 [동오]의 육손이 촉을 물리치고 위의 군사까지 물리치자 손권은 연호를 황무로 고친 후, 조비의 사자를 맞았다. 손권은 육손의 계책에 따라 조비의 뜻을 받들어 군수품이 마련되는 대로 출병하기로 했다. 육손의 계책은 과연 공명이 예측한 바와 일치했다.
또한 놀랍게도 네 방향에서 진군해 오던 각 군사들은 공명의 계략대로 모두 물러서고 말았다. 이무렵 촉한의 등지가 [동오]에 도착하자, 손권은 큰 가마솥에 기름을 끓인 후 무사들을 늘여 세웠다.
하지만 등지는 두려워하지 않고 황제국은 작은 나라의 주인에게 절하지 않는다며, 손권에게 허리만 굽혀 인사하고는 자신은 오나라를 위해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리려고 왔다며 설파했다. 등지의 조리 있는 말에 손권은 자리를 권하며 [오]와 [위]의 이해(利害)가 무엇인지 물었다.
등지는 [오]와 [촉]이 힘을 합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으나 [위]에 몸을 굽힌다면 조비는 [오]의 세자를 볼모로 잡을 것이니, 그리된다면 대세에 따라 [촉]도 [위]와 손을 잡고 [오]를 칠 것이라 말했다. 결국 손권은 장온을 등지와 함께 [촉한]으로 보내 동맹을 맺었다.
☐ 강남으로 출진하는 조비
[촉]과 [오]의 화친 소식을 들은 조비는 크게 노해 [오]를 치기위해 문무백관을 불러 모았는데, 이 무렵 [위]는 조인과 가후가 세상을 떠났다. 조비는 사마의의 용병술을 쫓아 수천 척의 배를 마련해, 30여만의 수륙대군을 이끌고 [동오] 공격에 나섰다.
조비는 조진을 선봉장으로 삼고, 장요, 장합, 문빙, 서황을 대장으로 삼아 먼저 출진케 하고, 허저와 여건을 중군에 맡긴 후 조휴는 후군을 이끌게 했다. 다급해진 손권은 서성을 장군으로 삼아 [건업]과 남서쪽을 도맡아 지키도록 했다.
이때 젊은 장수인 손소가 서성의 군령을 어기고, 군사3천을 거느린 채 몰래 강을 건너 적진으로 향했다. 서성은 화가 치밀었으나 어쩔 수 없이 급히 정봉에게 군사를 주어 손소를 돕게 했다.
한편 조비는 조진의 군사가 있는 강 언덕으로 나와 배위에 머물며 강의 남쪽을 살펴보았다. 이때쯤 서성은 남쪽 수 백리 강변에 거짓으로 성곽을 꾸며 놓고 갈대를 엮어 사람모양으로 만들어 창과 칼을 꽂아 세워두고 있었다.
이때 홀연 파도가 사납게 치솟으며 큰 물결이 일어 조비가 타고 있던 배가 뒤집힐 듯 뒤뚱거렸다. 작은 배로 옮겨 탄 조비가 강나루에 이르자, 파발마가 달려와 [촉]의 조운이 [장안]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놀란 조비가 군사를 물려 [회하] 강가에 들어서자, 손소가 이끄는 군사들이 짓쳐들어 위병들을 뭉개었다. 오군은 강변좌우에 일제히 불을 질러 조비가 탄 배를 가로막더니, 이내 정봉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장요의 허리에 화살을 날렸다.
이때 위군이 버리고 간 배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다음날까지도 강과 하늘을 메우고 있었으니, 이는 지난날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했을 때의 피해에 못지않았다. 패군을 이끌고 [허창]으로 돌아간 조비는 원로장수 장요마저 잃게 되었다.
한편 [장안]으로 진군하던 조운은 중도에 공명으로부터 철군 영을 받고 군사를 되돌렸다. 그 무렵 [남만] 왕 맹획이 오랑캐 군사를 일으켜 [촉]의 국경을 침범하자, [건녕]태수 옹개는 맹획과 모반을 주도해, [장가]태수 주포와 [월수]태수 고정의 성을 거두워 들였다.
다만 [영창]태수 왕항만이 충절을 지키며 외롭게 성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공명은 몸소 [남만]을 치기위해 조운과 위연을 대장으로 세우고 왕평과 장익을 부장으로 삼아 50만 대군을 일으켰다. 진군도중 관우의 셋째아들 관색이 합류하며 [익주]로 향하자, 옹개는 주포와 고정을 불러 군마를 세 갈래로 나누어 맞서기로 했다.
이때 고정 휘하에는 험악한 악귀의 모습에 방천극을 지닌 용맹한 장수 악환이 있었다. 위연은 악환을 유인해 사로잡은 후 공명의 영채로 끌고 갔다. 공명은 고정이 본디 충의가 깊은 사람인데 옹개의 꾐에 넘어갔으니 항복하라며, 악환을 후히 대접한 후 돌려보냈다.
고정이 공명의 말을 전해 듣고 감격해 있는데 옹개가 찾아와 공명을 헐뜯자, 고정은 옹개에게 의아심을 품게 되었다. 며칠 후 옹개가 고정과 함께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촉]의 영채로 밀고 들어오자, 공명은 매복군을 내몰아 많은 군사를 사로잡았다.
공명은 잡혀온 적군을 옹개와 고정의 군사로 나누어 가두고는, 그들 사이에 소문을 퍼드리게 했다. 고정의 군사는 살려두지만 옹개의 군사는 모조리 줄일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가자, 공명은 옹개의 군사들을 끌고 오게 했다. 공명이 그들에게 짐짓 누구의 군사냐고 묻자, 모두 고정의 졸개라며 거짓을 아뢨다.
공명은 속은 척하며 모두를 돌려보내고 다시 고정의 군사들 불러 물었다. 그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고정의 군사라 외쳐대자, 공명은 오늘 옹개가 고정과 주포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운 후 항복해 오겠다는 뜻을 전해왔으나, 자신이 이를 물리쳤다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공명의 계략을 알 리 없는 고정은 졸개들의 말을 전해 듣자, 옹개를 의심하며 군사를 이끌어 옹개의 영채를 덮쳤다. 고정은 악환이 옹개의 목을 베어오자 즉시 공명에게 항복했으나, 공명은 거짓항복임을 의심하며 주포를 잡아오도록 명했다.
고정은 악환과 함께 주포의 영채로 달려가 주포의 머리를 잘라 공명에게 바쳤다. 이로써 공명은 고정에게 [익주]태수의 벼슬을 내리고 악환을 아장(牙將)으로 삼았다.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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