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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Mar 18. 2019

간략 삼국지(34)

출사공명(出師孔明)


☐  제갈공명의 출사표         


공명이 [남만]을 평정하고 [성도]로 돌아오자, 촉주(蜀主) 유선은 연회를 베풀며 군사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이로써 촉국이 위세를 널리 떨치니 조공을 바쳐오는 곳만도 2백여 군데나 되면서, 나라는 평온하여 태평세월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 위주(魏主) 조비는 제위에 오른 지 7년이 되었으며, 촉한의 건흥 4년(226년)째 되는 해였다. 조비는 처음 견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본래 원소의 둘째아들 원희의 아내였지만 조비가 아내로 삼았다. 


견부인이 아들 조예를 낳았는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조비의 사랑을 한껏 받았다. 그런데 조비가 용모가 빼어난 곽씨를 귀비로 맞아들이자, 곽귀비견부인 모함해 죽이고 황후에 올랐다.

 

견부인(甄夫人) / 곽귀비(郭貴妃)

곽귀비는 아이를 낳지 못해 견부인의 소생인 조예를 사랑했으나, 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데 조비는 한질에 걸려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대장군인 조진진군사마의를 불러들여 조예를 후계자로 지목한 뒤 훗날을 부탁하며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 조비의 나이 마흔이요, 천자에 오른 지 7년만이었다. 황제에 오른 조예는 사마의에게 서량지역인 [량주]와 [옹주]를 지키게 했다. [서량]은 서북쪽 오랑캐국경에 있는 변방지역이었다. 


조비(曹丕) / 조예(曹叡)

그 소식을 들은 공명은 지모와 계략이 뛰어난 사마의를 경계하며 먼저 군사를 일으켜 사마의를 치고자 했다. 공명은 마속의 계책에 따라 사마의가 모반하려 한다는 거짓소문을 퍼뜨리고, 그의 이름으로 격문을 써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어느 날 성문을 지키던 장수가 방문(榜文)을 떼어오자, 놀란 조예는 지난날 조부(祖父) 조조가 사마의 눈매가 매와 같아 모반할 상(相)이니 병권을 맡기지 말라는 말을 떠올렸다. 


사마사(司馬師)

조예가 몸소 10만 군사를 이끌고 사마의를 맞아 큰소리로 꾸짖자, 엉뚱한 누명을 쓰게 된 사마의는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조예는 의심을 씻지 못하고 그의 벼슬을 빼앗아 고향으로 보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공명은 기뻐하며 촉주 앞에 나아가 출사표를 꺼내 올렸다. 



공명은 표문을 통해 충정의 마음으로 어린 천자에게 충고하며, 정사의 근본을 밝히고 나라의 인재를 열거했다. 이어 유비를 기리는 애틋한 정과 은혜에 보답하려는 자신의 결의를 밝혔다. 공명은 나라 안의 일을 정하고 모든 장수들의 부서를 정한 뒤 동오의 침범에 엄중히 대비토록 일렀다. 


건흥 5년(227년) 3월, 마침내 공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향해 나아가니, 그 깃발은 들판을 덮고 창칼은 숲을 이루었다. 급보를 전해들은 조예는 크게 놀라 하후연의 아들이자, 조조의 사위인 하후무를 대도독으로 삼아 촉병을 치게 했다. 



☐  일흔 나이의 조자룡 

                  

[장안]에 이르른 하후무는 관서의 군마 20여만을 수습해 공명과 맞서려 나갔다. 그 무렵 공명은 면양(부현 인근) 땅에 이르러 정공법을 택해 조운으로 하여금 큰길로 출병케 하니, 위(魏)로서는 예상 밖의 진병이었다. 


그때 하후무는 [장안]에서 [관서]의 군마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때 [서량]장수 한덕이 선봉을 맡아 네 아들과 함께 군사를 이끌던 중 [봉명산]에서 조운과 마주치게 됐다. 


하후무(夏侯楙) / 한덕(韓德)

조자룡은 칠순의 늙은 나이에 백발을 휘날리고 있었으나 한덕의 네 아들을 모두 무찌르며 적진을 돌파하자, 한덕은 조운과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아 진중으로 달아나 버렸다. 


조운이 말을 달려 적진을 뭉그러트리니 [서량]군사들은 크게 무너진 채 달아나기 바빴다. 하후무가 군사를 이끌어 [봉명산]으로 나아가자, 복수심에 불탄 한덕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 나오다 조운의 창에 찔려 죽었고 하후무도 크게 패해 10리 밖으로 물러나버렸다. 


조운(趙子龍)

다음 날, 기세등등해진 조운은 등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매복한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위기에 빠졌다. 포위망을 벗어나려던 조운은 산위로 오르려 했지만 산중턱에서 돌과 통나무가 떨어지는 바람에 오를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적군이 조여 올 무렵, 홀연 동북쪽 산모퉁이에서 장포와 관흥이 달려와 조운을 구하고는 말을 채찍질해 위군을 뒤쫓았다. 이날 밤 조운, 장포, 관흥의 세 갈래 군마가 위병을 몰아세우며, 등지도 뒤를 바치며 접응하자 위군들의 시체가 들을 덮었다. 


장포(張布) / 관흥(關興)

지모가 부족한 하후무는 1백의 장수와 함께 [남안성]으로 달아나 패잔병을 거둔 후,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킬 뿐이었다. 촉군이 [남안성]을 여러 날 공격했지만 소용이 없자, 공명은 [남안성]과 가까운 [천수군] 태수 마준과 [안정군] 태수 최량을 활용할 계책을 세웠다. 


[안정군]의 최량하후무로부터 원군을 청하는 편지가 당도하자, 성안에 문관만 남겨둔 채 군사를 이끌고 [남안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매복해 있던 관흥장포가 앞뒤에서 기습해오자, 최량은 가까스로 달아나 [안정성]에 이르렀지만 성은 이미 위연이 점령하고 있었다.


위연(魏延)

공명은 원군을 청하는 가짜편지를 보낸 후, 위연으로 하여금 촉군을 최량 군사로 위장해 성문을 열게 한 후 점령토록 한 것이다. 공명에게 항복한 최량은 [남안군] 태수 양릉을 항복시키고자 [남안성]으로 들어갔으나, 도리어 양릉에게 설득 당했다. 


최량은 공명의 계책을 역이용해 촉병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사로잡기로 하고 공명에게 되돌아갔다. 최량공명에게 거짓을 아뢴 뒤, 관흥, 장포와 함께 1백 명의 촉군을 데리고 [남안성]으로 향했다. 



양릉이 도수부를 숨겨두고 성문을 열게 하자, 성안으로 들어간 관흥은 갑자기 칼을 뽑아 양릉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를 보고 놀라 달아나던 최량도 장포의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나뒹굴었다. 이어 하후무왕평에게 사로잡히며 [남안성]은 공명에게 떨어지게 되었다.


왕평(王平)

☐  강유를 얻은 공명


한편 [남안성]이 촉군에게 에워싸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천수군] 태수 마준은 급히 군사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원병을 청하는 하후무의 거짓편지를 갖고, 최량을 방문했던 사자가 왔다. 


[안정성]의 최량하후무를 돕기 위해 이미 떠났다는 사자의 말에 마준은 군사를 이끌어 성을 나서려했으나, 젊은 장수 강유가 만류하고 나섰다. 병법과 무예에 능한 강유는 원병을 청하는 편지가 공명의 계략임을 마준에게 설명하고 한 가지 계책을 냈다. 


강유는 공명이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천수]의 군사들이 나오면 그 틈을 타서 [천수성]을 점령하려는 것을 간파해, 자신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길목에 매복키로 했다. 


마준(馬遵) / 최량(崔諒)

한편 마준이 군사를 일으켜 성 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전해들은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천수성]을 치려하자, 매복해 있던 강유가 기습해왔다. 조운은 강유의 창을 쓰는 재간에 깜짝 놀라며 40여 합을 싸웠으나, 마준이 군사를 되돌려 와 조운을 덮치자 앞뒤의 공세를 당해낼 수가 없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진영으로 돌아온 조운이 칠십 평생에 그토록 창을 잘 쓰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말하자, 공명은 자신의 계책을 미리 간파한 강유의 지략과 무예에 크게 놀랐다. 공명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천수성]을 거세게 공격했으나 또다시 강유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자, 군사를 거두어 물러서고 말았다.


강유(姜維)

공명은 강유의 뛰어난 지략에 탄식하며 다른 계책을 세웠다. 공명은 강유가 극진한 효자임을 이용해 모친이 살고 있는 [기현]을 공격하고, 위연으로 하여금 강유가 [기성]으로 들어가도록 유인하게 했다. 또한 조운에게는 [상규]를 빼앗도록 영을 내린 후 [천수성] 30리밖에 영채를 세우도록 했다. 


이러한 소식이 [천수성]에 전해지자 마준은 강유로 하여금 [기성]을 지키게 하고, 양건에게도 군사를 주어 [상규]를 지키게 했다. 어미를 구하기 위해 [기현]으로 달려간 강유는 위연을 물리치고 [기현]으로 입성했다. [상규]로 떠난 조운도 양건과 싸우다 짐짓 패한 척하며 그들을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위연과 조운이 계책에 따라 성을 포위하자 공명은 하후무를 불러들여, 강유가 자신에게 투항하려하니 즉시 강유를 찾아가 항복토록 달래라며 풀어주었다. 하지만 하후무는 강유에게로 가지 않고 [천수성]으로 달려가 그간의 사실을 고하자, 마준은 반신반의했다. 



때마침 성 밖에 촉군이 공격을 퍼붓는데, 강유가 앞장서 공격을 하고 있었다. 한밤중 군사들 가운데 한 사람을 강유로 변장시켜 싸우게 하니, 마준은 곧 하후무의 말을 믿게 되었다. 한편, [기성]에 머물던 강유는 군량미가 바닥나자 다급해진 마음에 군량을 싣고 이동하는 촉군을 공격했다. 


양초(糧草)를 빼앗아 성으로 돌아가던 강유는 장익과 왕평을 맞아 싸우다, 성으로 몸을 피했다. 이틈에 위연이 [기성]을 점령해버리자 강유는 [천수성]으로 달려갔으나, 마준이 성벽위에 나타나 화살을 쏟아 부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유는 뒤쫓아 오는 촉군을 피해 [상규]로 달렸다.



그러나 양건마저 강유가 촉군에게 항복한 것으로 알고 화살을 날리니, 강유는 어쩔 수 없이 [장안]으로 달려가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촉군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사면초가가 된 강유는 공명이 자신을 높은 인재로 맞이하자, 크게 감격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항복했다. 


이어 강유는 [천수성] 안에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윤상과 양서가 내응토록 하여 성문을 열게 했다. 촉의 정예병이 성안으로 밀려들자 마준과 하후무는 오랑캐 땅인 강성(羌城)으로 달아났다. [천수성]을 얻게 된 공명은 양서를 아우 양건에게 보내 [상규성]의 항복을 받아낸 뒤, 양서윤상양건을 점령한 세 군(郡)의 태수에 임명했다.

 

윤상(尹賞)/ 양서(梁緖)

이때 위(魏)의 조예는 하후무가 강성(羌城)으로 달아나고 촉군이 기산근처를 지났다는 말에 크게 놀라며, 조진을 대장군, 곽회를 부장으로 삼고 일흔여섯 나이의 왕랑을 군사로 삼아 20만 대군으로 공명을 막게 했다. 


왕랑은 자신의 세치 혀로 공명을 설파해 물러나도록 하겠다며, 한판 싸우자는 글을 촉진에 보냈다. 하지만 뛰어난 말솜씨로 공명을 꺾으려던 왕랑은 오히려 공명의 통렬한 꾸짖음에 치솟는 부끄러움으로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을 움켜쥐더니 말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왕랑(王朗)

군사를 물리고 영채로 돌아온 조진은 조준과 주찬을 선봉에 세우고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매복시켜 야습에 대비했다. 왕랑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촉군이 습격해오면, 매복군으로 하여금 공명의 영채를 기습해 빼앗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공명조진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것을 역이용했다. 공명은 관흥장포, 장의에게 위의 영채를 야습하게 하고 마대왕평에게는 아군 영채 밖에 숨어 있다가, 위병이 기습해 오면 들이치게 한 것이다. 


밤 이경이 되어 촉군이 야습을 감행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이자, 조준은 즉시 촉의 영채를 짓쳐들었다. 때마침 주찬도 군사를 거느리고 영채로 들이닥치자, 위병들은 어둠속에 밀어닥친 군사를 적군으로 오인하고 저희끼리 베고 찔렀다. 


위(魏) 장수 조진(曹眞) / 곽회(郭淮)

그때 마대와 왕평이 밀어 닥치며 야습하러 갔던 장의장익도 급히 되 돌아와 위군의 퇴로를 끊었다. 수백기만을 거느리고 길을 뚫어 달아나던 조준주찬은 길을 막고 있던 조운과 위연을 피해 가까스로 달아나 위의 본채로 달아났다. 


하지만 본채에 있던 조진과 곽회가 그들을 촉병으로 오인하고 들이치니, 또다시 저희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위연관흥장포가 세 갈래에서 덮쳐들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바빴다. 남은 군사를 수습한 조진은 곽회의 계책에 따라 오랑캐 서강(西羌)에 원군을 청해 촉군의 배후를 치도록 하였다.


촉(蜀) 장수 장의(張嶷) / 장익(張翼)


▶ 이미지 출처: 코에이(Koei) 삼국지 (위 이미지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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