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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Jul 29. 2019

이탈리아 기행(04)

베네치아


뜨거운 햇살이 머물러있는 오후 4시경 피렌체에서 남서쪽 6km 거리에 있는 스칸디치(Scandicci)로 20분간 이동한 뒤, 다시 차에 올라 3시간쯤 달려 “물의 도시” [베니치아]의 숙소로 이동한 뒤 하루를 마감한다. 



비잔틴(Byzantine)의 지배를 받던 베니치아는 7세기 말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0세기 말에는 동부 지중해와의 무역으로 경제번영을 누리며 가장 부강한 도시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후 십자군원정으로 동방 해상무역이 확대돼 15세기 초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며 약 20만 명이 살았다 하는데, 지금은 6만여 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한식으로 저녁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해 사진 한 컷을 남긴 뒤 서둘러 다음날 일정을 챙겨본다.



중세 베네치아(Venezia)


중세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는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으며, 동서양 문물이 공존하는 합류지점 이었다. <로마인 이야기> 저자는『르네상스의 꽃』은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활약했던 [피렌체]가 아니라 [베네치아]라고 했다.      


바다위에 떠있는 도시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도시들과 다르게 성과 성벽이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대륙에서 나라이름이 바뀌지 않고 천년이상 지속된 나라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 외에는 [베네치아] 밖에 없다.



중세 베네치아는 [동로마]가 [오스만 제국]에 멸망한 뒤에도, 오스만 터키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500년간 지중해를 지배하는 도시국가로 남아있었다. 베네치아는 강대국이었지만 영토에 욕심내지 않으며, 해상무역 거점들을 확보하는데 집중하였다. 


어업보다 상업에 집중했던 [베네치아]의 지배층은 황제나 영주가 아니라 상인과 사업가였다. 중세 상인들은 통화가치의 시장 질서를 중시 여겨 베네치아 금화(Ducat)의 함량을 일정하게 맞춤으로서 가장 신용 있는 “글로벌 기축통화”를 만들어 냈다. 



베네치아는 노력 없이 부를 쌓으려는 절대 권력자가 없는 경제에 최적화된 정부와 정치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천민집단이었다. 


그들은 게토(Ghetto)라는 감시구역에 격리돼 기독교인들과 구별되는 붉은 모자를 써야했고,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으며 고리대금업으로 살아야만 했다. 당시 가톨릭과 이슬람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기시 해, 유대인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Merchant of Venice

가톨릭교도들은 고리대금을 하는 유대인들을 천시했는데 베네치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다른 나라와 달리 신용을 매우 중시했다. 『베니스의 상인』 주인공 안토니오는 베니스 지배층으로 존경받는 기독교인이자 인정 많은 상인이었다. 


안토니오는 친구의 결혼을 돕기 위해 유대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며, 제날짜에 갚지 못하면 가슴살 1 파운드를 내주기로 했다. 베네치아는 시장경제 기본인 사적계약이 철저히 보호되어, 빚 상환날짜를 어기면 천민이라도 지배층을 처벌할 수 있었다. 



약속일에 채무를 갚지 못한 안토니오는 다음날 2배의 돈을 들고 샤일록을 찾아갔으나, 샤일록은 계약서대로 한 근의 가슴살을 요구했다. 그가 안토니오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시장경제를 중시했던 [베네치아] 법치주의에 힘이었다.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재판관의 현명한 판결로 위기를 면한 안토니오는 친구를 돕는 인정 많은 상인이고, 목숨보다 신용과 돈을 우선시하는 샤일록은 악질 수전노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시장규칙과 신용을 중시했던 [베네치아]의 경제 질서를 엿볼 수 있다.



신비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반도 동쪽 아드리아 해(Adriatic Sea) 끝에 위치한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로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다. 영어로 베니스(Venice)라 불리는 수상도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150개의 운하로 연결돼 있다.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진 섬과 섬 사이에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지상 교통수단이 없으며, 물위로 다니는 곤돌라, 수상택시, 수상버스가 있어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곤돌라는 [베네치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에 적합하지만 요금이 비싼 반면, 수상버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도 [베네치아] 구도심에서는 배로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시 안에는 단 한대의 차량도 볼 수 없다. [베네치아]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본섬]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부두로 나아가 수상버스에 오른다.



▮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Venezia)     


바포레토(Vaporetto; 수상버스)를 타고 베니스 본섬으로 이동해 중심가로 향한다. 베네치아 구도심지에 도착해 맨 처음 둘러본 곳은 탄식의 다리이다. 17세기 만들어진 이 다리는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감옥은 카사노바가 탈옥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베네치아] 출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여성 풍기문란 죄로 이 감옥에 갇히게 됐는데, 어느 날 가면무도회 때 그가 사귀었던 여성에게 매수당한 간수로부터 가면을 받아쓰고 감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당시 감옥에서 탈출한 카사노바는 [산마르코 광장]의『플로리안』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갔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지금껏 그 카페가 영업 중에 있다. [베네치아] 여행 중 탄식의 다리는 곤돌라가 지나갈 때 멋진 사진을 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Caffe  Florian

▮ 베니스의 명물 곤돌라 


[베네치아]에 가면 꼭 타봐야 한다는 곤돌라는 선착장에 도착해 요금표를 살펴보는데 아예 가격표가 안 보인다.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패키지여행은 옵션으로 50€가 책정돼 있고 곤돌라에 올라 30분간 돌아볼 수 있다.  

  


곤돌라에 승선하니 건물사이로 좁은 수로를 달리기 때문인지 구명조끼가 없다. 한껏 멋을 부린 곤돌리에(Gondolier; 뱃사공)가 태평한 모습과 능숙한 손놀림으로 배를  젓고 다닌다. 베니스에서 곤돌라 한 척을 소유한 사람들은 상류층 생활을 한다고 한다. 



중세시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곤돌라는 베니스의 상징으로 17~8세기 10,000대 가까이 있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400대만 운행한다고 한다. 베네치아 시(市)는 화려하게 치장하는 곤돌라 소유주들의 과다경쟁을 막기 위해, 모두 검정색으로 칠해 운행토록 하고 있다.



아드리아 해(Adriatic Sea)의 반짝이는 바다와 석양 풍경이 아름답다는 [베네치아]에서 만날 수 있는 곤돌라는 가장 낭만적인 교통수단이다. 로맨틱한 전통 배를 타고 긴 노를 젓는 뱃사공과 함께 베니스 운하 곳곳을 누비며, 색다른 멋을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삶에 입장에서 바라보면, 물위에 있는 도시 [베네치아]는 생활 속 환경오염과 질퍽거리는 바닥으로 인한 불편함이 유명세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수로(水路) 사이를 다니며 운하를 돌아보는 동안 멋진 “칸초네”를 불러주는 뱃사공도 보인다.



곤돌라에서 내려 다시 베네치아 구도심으로 이동한 뒤, 1,100년 동안 [베네치아]의 총독 주거지였던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을 둘러본다. 



▮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   



이탈리아어로 광장을 피아차(Piazza)라 하는데, 베네치아의 광장 중에서 [피아차]로 불리는 곳은 산마르코 광장뿐이다. 산마르코(San Marco)는 마가복음의 성(聖) 마가(St. Mark)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것으로,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장소이다.


두칼레 궁전

광장의 역사는 두칼레 궁전산마르코 성당이 세워진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828년 베니스 상인 2명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성인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납골당으로 성당이 세워졌고, 12세기 운하를 메우면서 광장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산마르코 성당

16세기 르네상스 문화가 융합돼 종탑 기둥이 들어서며, [종탑]을 중심으로 한 [산마르코 광장]이 완성되었다. [베네치아] 구도심에서 두칼레 궁전 무어인(Moors; 이슬람교도)의 종탑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둘러보는 곳 중 하나이다. 



19세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격찬했던 나폴레옹은 광장우측에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할 건물을 지었다 한다. 산마르코 광장 좌우에는 광장을 “ㄷ”자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6세기 정부청사로 건립된 것으로, 현재는 박물관을 비롯해 오래된 카페와 살롱들이 들어서 있다. [산마르코 광장] 주변상점을 돌아보며 이곳 특산품을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이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특산품인 유리제품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들과 명품을 파는 상점들도 즐비하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1720년 문을 연 뒤 300년이 됐다는 유서 깊은 플로리안(Florian) 카페가 있는데, 수많은 문인과 화가, 음악가들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장자크 루소,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 유명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찾아와 환담을 나눴다는 명소 『Florian』은 바람둥이 카사노바 덕분에 더욱더 여행객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베네치아]의 상징이기도 한 플로리안 카페 내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리모델링을 거쳐 정갈하면서도 18세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카페는 산마르코 광장의 야외무대에서 연주공연을 하며 카페 라테(Caffe Latte) 한잔에 10.50€를 받고 있다.



 고딕양식의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두칼레 궁전  



9세기경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 성으로 지어진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은 몇 차례 재건을 거쳐 15세기 완성됐다. 14세기 북방에서 전해진 고딕양식과 베네치아의 동방적인 장식이 융합돼 독특한 양식을 탄생시키며, 베네치안 고딕이라고 부른다 한다.  



궁전외관은 백색과 핑크색 대리석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그 멋을 더해주고 있으며, 회랑은 개성 있는 기둥받침을 지닌 36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현관은 고딕 양식이고 안뜰은 르네상스 양식과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산마르코 성당  


이집트에서 가져온 여러 유물과 베네치아 수호성인(守護聖人) 산마르코(San Marco)의 유골을 안치할 납골당의 목적으로 9세기 성당을 짓기 시작해 15세기까지 건설됐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에 전체적으로 비잔틴 양식이 혼재된 흔치않은 성당 중 하나이다.  



동양적인 아치와 둥근 지붕의 돔은 총 5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색 모자이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내부에는 산마르코 업적을 기리는 12~13세기 그림들이 있는데, 이는 워털루 전쟁에 패한 나폴레옹의 전리품을 돌려받은 것이라 한다. 



베니스 본섬인 구 시가지를 빠져나와 육지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베네치아] 수상버스 대신 날렵한 수상택시를 선택해, 베니스 섬의 S 운하를 30분간 다시 감상하며 베니스의 풍만한 낭만과 소소한 작은 섬의 매력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유럽 건축양식 정리

 

① 로마네스크 양식(10세기 후반~12세기 중엽) 

종교적 건물이 예술형태로 자리 잡게 된 양식으로, 둥그런 아치형 돌 천장과 창문이 없는 두꺼운 벽이 특징      


② 고딕 양식(12세기 중엽~16세기) 

교회를 높이 올리려는 과정에서 자리 잡은 양식으로, 하늘을 향한 높은 천장과 뾰족한 수직첨탑에 아치양식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가미한 형태       


③ 르네상스 양식(15~16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건축양식으로, 고대 그리스/로마로 회귀(조화, 질서, 균형)를 지향한 양식이며 벽면에 장식이 많고 화려한 것이 특징        


④ 바로크 양식(16~18세기) 

절대왕정 시기인 루이 14세 때 양식으로, 르네상스 양식에 비해 규모가 커져 웅장함과 역동적 것이 특징




Still Image


Extra Shoo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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