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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ug 07. 2019

이탈리아 기행(08)

로마 유적지 (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로마(Ⅰ)


점심을 마친 후 오후시간 [로마 유적지]를 둘러본다. 당초 로마 유적지만큼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지 [구글지도]를 통해 도보거리와 시간을 체크해 보았는데, [콜로세움]에서 [팔리티노 언덕]과 [진실의 입]을 거쳐 [포로 로마노]까지 약 3km 거리에 40여분으로 계산되었다.



도보관람이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었지만, 생각지 못한 무더위로 워킹투어를 포기하고 미니밴을 타는 조건으로 꼭 찾아봐야 할 유적지 7곳을 제시해 OK 사인을 받았다. 이번 여행을 위해 『로마의 휴일』을 다운받아 2차례 시청하며 꼭 봐야할 명소(名所)를 기록해 두었다. 



미니밴에 올라 편한 마음으로 영화 속 배경지를 따라가며 [로마 유적지]인 콜로세움을 기점으로 각 명소를 둘러본다. 1955년 개봉됐던 영화 [로마의 휴일]은 반세기를 넘어 지금껏 [로마]를 세계의 관광지로 만들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 



아스라한 흑백필름 속의 기자 그레고리 펙과 앤 공주 오드리 헵번의 짧았던 사랑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속 조(Joe)는 가이드를 자청해 앤(Anne) 공주를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으로 데려가며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 콜로세움(Colosseum) 

    

콜로세움은 네로시대를 그린 영화 『쿼바디스』에서 가톨릭교인을 박해했던 장면으로 나왔던 곳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의미로, 네로궁전 정원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지어진 대형 경기장 겸 극장이다. 



고대 아치(Arch) 건축의 백미이자, 로마시대 대형 대리석 건축물인 [원형경기장]은 AD 72년 건설을 시작해 80년에 완성됐으며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放射) 원형으로 설치돼 있다. 



콜로세움은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주로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가 펼쳐졌기에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대표 건축물이다. 검투사들은 통상 노예나 전쟁포로 중에서 용맹하게 잘 싸우는 자들로 이뤄져 있었다. 



결투를 벌이거나 야생맹수를 무찌르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던 검투사들은 승리를 통해 관중을 즐겁게 해주며 영웅대접을 받기도 했다. 영화 속 검투사들은 대결이 끝나면 패배한 자를 죽일지 살려야 할지, 관중 또는 황제의 엄지손가락 제스처를 통해 결정을 살폈다.



콜로세움 옆에는 서로마 통합을 위한 전투(▶밀비우스 다리 전투, 312년)에서 승리를 기념했던 [개선문]이 남아 있는데, 나폴레옹은 이 [개선문]을 본국으로 가져갈 수 없어 샹젤리제 거리에 이를 본 딴 파리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3세기경 로마제국은 동, 서로 나뉘어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 서로마를 통합하고 동로마를 공격해 로마전역을 지배(▶324년) 했다. 로마시민과 원로원의 환영을 받으며 황제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최초로 가톨릭교를 받아들인 대제(大帝)로 기록되고 있다.


밀비우스 다리 전투

[로마]에는 콜로세움 옆 [개선문] 이외에도 몇 개의 개선문이 더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대로마 유적 건물들은 오랜 세월동안 지진의 피해를 입거나 집을 짓기 위해 돌을 빼가는 사람들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잔혹했던 역사를 떠올리려는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키는 고대유적지로 남아 있어, 낡은 폐허 속에도 지난날의 영욕(榮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영화 속 앤 공주가 바라보던 고대의 흔적들은 찬란했던 역사만큼이나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 팔라티노(Palatino) 전차경기장  



콜로세움을 출발해 도로를 따라 550m쯤 가다보면 팔라티노(Palatino) 언덕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잔디구장 모습의 공터로 남아있는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 원형경기장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이곳 원형경기장을 원주민에게 물어보니 [팔리티노] 경기장이라고 하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고대 로마시대의 화려한 전차경주를 비롯해 경마경기와 야수와의 싸움이 열렸던 특별한 곳이었다고 한다.



팔라티노 언덕기슭에 있는 대경기장은 BC 300년경부터 존재했던 곳으로, 로마가 왕정으로 번성하던 건국초기에 로마인들이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사이의 습지에 고인 물을 빼내고 만들었다 한다. 



영화 벤허(Ben-Hur)의 촬영지였던 [치르코 마시모] 경기장은 길이가  600m이고 폭이 약 180m 규모로, 25만 명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최대의 원형 경기장이었다. 현대 서커스의 유래는 치르코(Circo)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10분 이상 계속되는 전차경주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졌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1962년 상영된 [벤허]의 스펙타클 한 전차경주 장면을 어찌 촬영했을지 아찔하기만 하다.



실제 전차경주는 고대사회 행해졌던 스포츠로, [레바논]의 티레(Tyre)에는 로마시대 전차경기장 유적지인 히포드롬(Hippodrome)이 남아있고, [로마]에는 팔라티노 언덕 남쪽에 전차경주가 벌어졌던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가 남아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전차경기장]은 옛적 뜨거웠을 로마인의 함성이 오간데 없고, 공허한 빈터로 남아 한적함에 싸여있다. 야생화 꽃밭처럼 변해버린 경기장 주위에는 사진촬영에 바쁜 여행객과 간간히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로마 주민들만이 있을 뿐이다.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Santa Maria in Cosmedin) 


이탈리아 로마 중심부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는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이 있는 교회이다. 4세기에 만들어진 [진실의 입]은 교회입구 벽면에 있는 대리석 가면으로, 진실을 심판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얼굴 조각상이다. 


코스메틴 교회

조각상은 지름 1.5m 대리석 원판에 해신(海神) 트리톤(Triton)의 얼굴을 새긴 커다란 원반형태이다. [트리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어(半人半魚)인 바다의 신이다. 포세이돈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그의 전령노릇을 하였다. 


Triton

주로 분수의 장식물에 등장하며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 옆에 소라고둥을 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거짓말쟁이가 트리톤의 입에 손을 넣으면 [트리톤] 입이 닫힌다는 전설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시험했던 [트리톤]의 입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다.



이곳은 [로마의 휴일]을 기억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통상 [진실의 입]  앞에서 진실을 확인하려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때마침 길지 않은 행렬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콜로세움 주변을 공주와 조 기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 뒤 찾아간 [코스메딘 교회] 입구 벽에 있는 [진실의 입]에 (Anne) 과 (Joe)가 손을 넣으며 천진스럽게 장난치던 장면을 떠올려본다.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빠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뻔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손을 넣어본다. 손이 빨려 들어가는 놀란 모습으로 기념사진도 담아보며 추억여행에 흠뻑 빠져든다. 



▮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포로 로마노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캄피돌리오Campidoglio] 광장으로 가야한다. 광장으로 오르는 완만한 경사의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한다. 낮은 계단을 올라가면 광장 왼편에 세나토리오 궁(Palazzo Senatorio)이 나온다. 


캄피돌리오 광장

현재 시청과 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세나토리오] 궁 뒤쪽으로 좌우에 설치된 테라스로 다시 올라가면 언덕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포로 로마노(로마 공회장) 유적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나토리오 궁

테라스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전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이곳은 콜로세움에서 650m 거리에 있으며 도보로 10여분 거리이다. 포로(Foro)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포럼(Forum)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 생겨난 것이다. 



포로 로마노는 기원전 6세기부터 3세기까지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약 1,000년 동안 로마제국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또한 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로마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283년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들을 19세기에 발굴 복원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가축 방목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과 상점들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한때는 막강했을 위엄 있던 건물들이 거의 폐허되어 예전의 화려함과 달리 앙상한 잔재와 공허한 넓은 터만이 남아있지만, 그나마 옛 흔적이 남아있는 일부 유적을 통해 로마의 영광을 되새겨볼 수 있다. 



[포로 로마노]에는 건물들을 치장하고 있던 조각상들이 무수히 널려 있으나 안타깝게도 온전한 석상들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놓여 있는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의미는 실로 경이로운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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