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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 Aug 12. 2019

이탈리아 기행(10)

폼페이 / 소렌토


며칠간 이탈리아 중북부지역 주요도시를 둘러보고 오늘도 새벽 5시 기상해 3시간을 달려 남부지역 [폼페이]로 간다. 이탈리아는 북부지역이 남부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남부지역이 가난한 이유는 오랜 역사에 기인하고 있다.



17세기 말부터 [영국]과 [독일]에서는 여행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그랜드 투어]에서 가장 선호하던 여행지는 르네상스 발상지이자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였다. 예술가나 인문학자, 가톨릭 순례자들은 모두가 이탈리아 여행을 꿈꿨었다.



18세기 초까지 유럽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는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였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내려간 여행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밖에 북이탈리아는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립으로 봉건제도가 약화되며 자치세력들이 생겨났고, 곧 상업세력을 이루며 경제를 챙겼다.



반면 남이탈리아 지역에서는 강력한 왕조가 지배력을 유지하며 봉건세력들이 귀족의 상업 활동참여를 금지해 성장이 약화되었다. 18세기 중반이후부터 매몰된 고대도시 폼페이가 발굴되면서 그나마 유럽 여행자들은 [폼페이]와 [나폴리] 여행을 시작했다.


폼페이 유적지 초입

화산폭발로 소멸된 비운의 도시
폼페이(Pompeii)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대도시 폼페이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로 잘 알려진 곳이다. AD 79년 여름, 번영하던 로마제국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도시전체와 수천 명의 주민이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전설의 도시였다.



폼페이는 빼어난 건축양식, 수도관, 목욕탕 등 당시 로마인들의 뛰어난 문화수준을 재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고대 폼페이는 기원전 90년경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로마 상류층이 별장을 건설했던 휴양지였다.

 


하지만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있는 베수비오 화산(Le Vésuve)은 로마귀족들의 향락지인 [폼페이]를 덮쳤고, 도시는 순식간에 수십 미터의 용암과 재에 파묻혀 화려했던 도시문명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빵(피자)을 굽던 화덕

폼페이는 폭발이전에 몇 차례 경고가 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한 순간에 고대 이집트의 미라형상으로 화산재에 뒤덮여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후 수풀과 덩굴로 뒤엉켜 폐허된 채 1,500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져 있었다.



폼페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6세기말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던 중, 소규모 건물 잔재들이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당시 밭을 갈던 중 고대 수도관 시설을 발견한 농부로 인해 폼페이 [고대유적지]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공회장

당시 유적 발굴단은 이곳이 고대도시 [폼페이]인 줄도 모르고 발굴을 시작했다 한다. 이름 모를 지하도시의 발굴은 [나폴리 왕국]의 큰 보물을 기대하며 시작했으나, 청동제 유물과 석고처럼 굳어버린 사람의 시체만 발견되자 작업을 중단해 버렸다고 한다.



화산재에 묻혀있던 폼페이 시간여행


17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가 폼페이 발굴을 시작했으나 사실은 약탈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모자이크나 벽화 등의 미술품만 골라 프랑스 왕궁으로 실어가 버렸고 나머지 유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19세기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쌓여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형체가 드러나기도 했는데, 이때 드러난 유적들은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유적지]가 시작되는 곳에는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라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당시 출입문 앞으로 이어지는 길은 바다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Marina(정박지)라고 불렀다. 두 개의 출입구 중 높은 아치형 통로가 마차와 가축의 출입로였고, 낮은 아치 지붕은 사람이 출입하는 통로였다고 한다.  


포르타 마리나 문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그리스]의 지배를 받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수비오 산] 폭발 화산재로 건물지붕과 벽은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무너졌지만 일정부분은 당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2천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폼페이가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두께로 쌓여있던 화산재 덕분이라 한다.


제우스 신전

폼페이 중앙지역에 있는 제우스 신전(Temple of Zeus) 유적지와 폼페이에서 가장 큰 도로였다는 델라본단차(Dell'Abbondanza) 거리를 둘러본다. 여인숙과 술집이 들어서 있었다는 거리에는 상점과 주택이 합쳐진 집단 벽돌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델라본단차 거리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유흥지, 음식점, 극장 등의 시설은 2,000년 전이라는 시간을 고려할 때 현대와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해 보인다.


목욕탕 시설

폼페이 고대도시가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잘 갖추어진 도시국가를 통째로 발굴했다는 역사성 보다는 “사랑했던 사람들과 엉켜있는 모습”과 “아이를 꼭 안은 채 굳어있는 어미의 모습”이 전시돼 있는 주검 앞에서 느껴지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당시 비참한 주검으로 응고된 참상들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데, 용암의 불덩이와  화산재로 인한 질식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박제처럼 유리관 속에 진열된 형체(形體)들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기도 다. 

 


고대도시 [폼페이 유적지]는 한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진 찬란했던 문화유산이기 전에, 행복했을 순간에 일어난 대참사를 겪은 고대 폼페이 시민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곳이다.


공용 식수시설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휴양지
소렌토(Sorrento)


[폼페이 유적지]를 떠나 폼페이 역(Pompei Scavi)에서 사철(私鐵)을 타고 [소렌토]로 이동한다. 사철은 마치 낡은 기차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전철이며, [나폴리]를 출발해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까지 운행하는 지방 철도선으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열차는 전철이기에 예약 없이 자리가 나면 앉고 없으면 서서 간다. 폼페이 역에서 종점인 소렌토 역까지는 14개 정거장을 거쳐 30여분이 소요되는데, 열차의 승객 칸 사이에는 타고내리는 [이음 칸]의 공간이 제법 넓어 그 칸에 머물며 서서 갔다.


열차 노선도

중간 역쯤에서 수업을 마친 십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열차로 통학하는 듯 함께 몰려 타더니, 이내 열차 [이음 칸]이 시끄럽기 시작한다. 그중 옆에 있던 한 남학생은 내 모자와 시계에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거침없이 말을 걸어온다.


Pompei Scavi 역

남학생에 질세라 드세 보이는 이탈리아 여학생 2명이 더욱 호기심을 보이며 관심을 표하기에, 남학생들을 제치고 얼른 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담아 넣는다. 경쟁적으로 말을 건네 오는 남녀 학생들에게 "Do You know BTS?" 한마디를 던지니, 일시에 함성이 터지며 분위가 무르익는다.



한순간 16세 이탈리아 남녀학생들이 함께 BTS 노래를 부르는데, 감격스러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답곡(答曲)으로 나폴리 민요 『Santa Lucia』 뒷부분인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를 불러 박수갈채를 이끌어 내본다.



쉴 틈 없이 분위기를 다잡아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을 연호하니, 한껏 신바람이 난 남녀 학생들은 말 춤을 흉내 내며 대한민국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 청소년 시절에는 비틀즈(BTS)를 좋아했는데, 세상이 많이 변해 대한민국 BTS 인기가 이탈리아 남부 시골마을 청소년들에게 까지 퍼져있음에 놀라웠지만, 여행에서 느끼는 감흥 또한 늘 새롭고 즐겁다.



절벽위에 있는 작은 도시 소렌토는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옛 부터 나폴리와 인접하고 있는 해안 휴양지로 맑은 빛의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소렌토 해안가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건설된 [로마] 제국시대 휴양지였다.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여름 휴양지 소렌토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탈리아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와 『오! 솔레미오(나의 태양)』가 탄생한 곳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소렌토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꼭 가봐야 할 곳” 50군데 중 1위를 차지한 해안 여행의 첫 관문이다. 지중해 연안도로를 따라 절벽에서 아름다운 [소렌토 해안가]의 푸른 바다를 관망한다.



시원한 해안선과 산뜻한 오렌지나무 가로수가 이국적인 풍경의 소렌토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만의 낭만을 선사하는데, [소렌토]로 부터 [나폴리] 간에는 열차와 여객선이 왕래하고 나폴리 항만의 또 하나의 관광지인 [카프리 섬]과도 왕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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