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새벽바람을 가르며 나는 오늘도 달리고 있다. 적막한 아침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나의 발구름 소리.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와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을 시냇물 소리가 나의 새로운 하루를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암막커튼 사이로 흘러 들어온 햇빛 덕분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잠에서 깼다고 완전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불속을 벗어나야만 온전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또 안다. 하지만 나는 그 포근하고 따듯한 이불속 온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어제와 오늘의 일조차 뚜렷이 구분하지 못할 만큼 삶이 무료하고 힘들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냥 내 삶이 살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능동적인 자세로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다. 막막했다.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특별한 준비 없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건?
이것만은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람을 느끼며 했던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문자답을 통해 내가 생각해 낸 답은 '달리기'였다. 달리고 있을 때만큼은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달리고 나면 오히려 몸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홀가분했다. 거창한 준비 없이 지금 당장 나가서 뛸 수 있고, 뛰고 나면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무언가가 나에게는 달리기였다.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AM 6:20
마치 이슥한 밤인 것처럼 캄캄한 방 안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기 전에, 전날 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내 눈꺼풀이 먼저 들썩인다. 이제는 이불속 온기의 유혹보다 아침 달리기를 하고 난 뒤 느낄 수 있는 그 쾌감의 유혹이 더 좋다. 사실 그 쾌감 속에 빠져 산다.
거실로 나와 불을 켜고, 미처 울리지 못했던 알람들을 끄고 난 뒤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어제 이 시간에 똑같이 했던 것처럼 스트레칭을 하면서 온몸에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바나나 한 개를 먹고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아직까지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낮아 쇼츠 끝자락 아래 허벅지부터 닭살이 돋기 시작한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긴 했지만 달리기를 하기에는 아직 근육들이 덜 풀렸기 때문에 하천 산책로까지 가는 동안 움직임이 큰 동적 스트레칭을 해준다. 나만의 출발점에 도착하면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달려 나간다.
달리기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보단 조금 빠른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인들의 물결과 마주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표정, 무기력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왠지 남 같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과 똑같은 출근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은 나와 마주 보며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괜한 우월감에 빠지곤 한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고 잘난 사람이 된 것 마냥. 따지고 보면 내가 그들보다 더 부지런하다거나 잘났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거 하나면 된다. 근거 없는 우월감일지라도,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니까. 이런 감정은 수없이 반복된다고 해도 절대 지루할 수가 없다. 더 자주, 더 많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큰 일이나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일의 나를 바꾸고 싶다면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오늘 내가 실천한 그 작은 움직임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내 삶 자체를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