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진짜 내 사람들만 남겼다.

by 장마오

커밍아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회사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었다. 워크숍을 가서 처음 보는 어떤 남자 동료와 같은 직급인 여자 동료, 이렇게 셋이서 얘기를 하던 도중, 그 여자 동료가 먼저 여자친구 있다는 말을 했다. 그때 사실 좀 놀라기도 하고, 반갑고, 그 여자 동료의 행동이 용기 있어 보였다.


“어떻게 여자가 여자친구가 있을 수 있어요…?”


남자 동료는 혐오가 아니라 진짜 100%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순진무구하게 물었다.


“여자도 여자를 만날 수 있죠.”


그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그 여자 동료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저도 여자친구 있어요.”


그때 그 남자 동료의 표정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들은 소리 중 가장 놀라운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한 그 표정. 그 남자 동료는 어버버 거리며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중얼거리며 무언가 배웠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함께 일하는 부장님이 며칠 후 물었다.


“얘기 들었어요, 그 애인이 여자였구나. 어쩐지 남자친구가 아니라 계속 애인이라는 걸 강조해서,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애인이라 부르는 줄 알았어요.”


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나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회사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 수군거렸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지만, 어쨌든 내 앞에서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로 애인에 관해서 물어볼 때도 언니는, 이라는 호칭을 쓰며 예의를 갖췄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계정으로 바꾸면서도 회사 사람들은 팔로우를 끊지 않았다. 어떤 한 여자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나 역시 한 발자국 나아가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족들. 언니는 나의 세 번째 여자이다. 가족 중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그리고 소통을 많이 하는 여동생에게는 당연히 첫 번째 여자를 만나자마자 커밍아웃을 했고, 동생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엄마. 엄마는 내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여자를 만날 때 어느 정도 눈치를 채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의심만 하다가 확신을 하게 된 계기는 두 번째 애인이 우리 집에서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하지 않고, 야라는 호칭을 쓴 것과 머리를 말려주는 모습이 도저히 친구 같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부정을 하고 싶고, 왜 하필 내 딸이 동성애자일까 생각하며 울기도 많이 울고, 매일 밤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니, 남자 잘못 만나서 애 낳고 인생 조지는 것보다 여자라도 만나서 외롭지 않게 같이 사는 게 낫지라는 생각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언니를 처음으로 애인이라고 정식 소개를 했다. 너무 좋은 사람인 언니의 모습을 10년을 보면서, 엄마는 언니가 남자가 아닐 뿐이지, 저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며 이제 우리 둘이 헤어지지 않고 평생 잘 살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아빠에게는 엄마와 연애 시절부터 그냥 당연하게 둘이 애인 관계라고 소개했고, 새아빠도 저절로(?) 그냥 우리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마이 프렌드’라고 부르는 절친이 되었다. 새아빠의 속마음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별 생각 안 했을 거 같다.


그리고 아빠. 동생과 셋이서 한 식사자리에서 그냥 말했다.


”아빠. 나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여자야. “


아빠는 잠시 동공이 흔들리더니,


“응… 뭐 친구라는 얘기지?”


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야.”


내 말에 아빠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이내 허허, 웃었다.


“니가 동성애자라는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래, 뭐…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언니를 소개하게 되었고, 엄마와 마찬가지로 보면 볼수록 언니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이제 언니와 나를 결혼한 부부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언니가 아빠랑 식사하자고 해서 아빠를 부르니 아빠는 작은 아빠를 데리고 왔다. 작은 아빠는 이미 아빠를 통해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조금 부인을 하면서 말했다.


“그래. 둘이 평생 같이 사는 거야? 룸 메이트? “

그때 술이 조금 들어간 아빠가 급발진을 하며 정색하고는 말했다.


“아니라니까. 사랑하는 사이라니까.”

그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작은 아빠는 기독교인인데, 아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인지 그러니까, 그냥 같이 사이좋게 살면 되지…라고 말했었다. 다들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 반응을 보이다가, 언니를 몇 번 만나면 서서히 받아들이는 게 공통점이었다. 작은 아빠도 지금은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 이 모든 건 언니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언니를 세 번째 딸로, 사위로, 며느리로, 큰언니로 받아들이고 있다. 벽장에다가 친한 측근 외에는 절대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보수적인 언니가 언젠가 물었다.


“내가 가족들한테 말 안 해서 서운하지 않아?”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언니의 가족들과도 10년이나 봤고, 사실 말씀은 안 하셔도 나는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다. 항상 나에게 고맙다고 표현해 주시고, 내가 안 가면 왜 안 왔냐고 나를 찾으신단다. 표면적으로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이미 그 가족 구성원에 내가 포함이 되었다고 느껴서 정말 섭섭함은 하나도 없다. 언니랑 친언니처럼 자란 사촌 언니에게는 커밍아웃을 했는데, 사촌 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은은하게 웃으시며 언니와 잘 지내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그거면 충분하고, 그거면 됐다.




워낙 숨기는 걸 잘 못하는 편이어서 친구들에게는 거의 곧장 말했다. 친구들 중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왠지 너는 그럴 것 같았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쪽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나서는 아무래도 이성애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되려 내가 불편해 이성애자인 친구들과 서서히 연을 끊게 되었다.


그 대신 같은 동성애자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고, 같이 여자를 만나는 상황이니 함께 하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 지금 내 주위에는 동성애자 친구들만 있고, 이성애자 친구는 몇 명 없다.


그런데 중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는 내가 여자를 만난다는 이유로 손절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내가 여자친구와 싸우고 술이 잔뜩 취해 그 친구와 자주 가던 바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친구가 바 사장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걸 폭로해 버렸다. 그 행동은 무지무지 잘못한 일이었고 나 같아도 성질이 났을 거 같다.


그날, 그 친구는 홧김에 바 직원들에게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아웃팅 했고, 그 당시에는 그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픈게이인 나는 그게 뭐 어떤가,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이다. 일단 내가 잘못한 일이므로, 그 정도 화를 낸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아웃팅 한 게 아니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친구가 이상한 뉘앙스로 말을 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더 행복하지. 같이 애인과 행복한 거지만 너는 여자를 만나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은근히 내리 깔던 말들. 그런 말들을 들으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고, 나는 그 친구와 바로 손절했다. 어차피 옆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될 사람이었으므로,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나는 커밍아웃에 성공적인 편이었다. 동성애자 친구들과 커밍아웃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면 친구들이 겪은 일은 정말로 다사다난했다. 더럽다는 말도 들어보기도 하고, 오히려 반대로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연이 끊기는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엄마한테 죽도록 맞아본 사람도 있는가 하면, 호적에서 파질 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커밍아웃을 하면 이성애자인 친구들이 착각을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혹시 얘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요. 여자를 만나는 거지, 아무 여자나 좋아한다는 뜻은 아닌데요? 그들의 착각은 그냥 폭소를 일으킨다. 무슨 자신감이지…?




커밍아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냥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 게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면 더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어머,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네? 하며 진짜 태어나서 이런 사람 처음 봤다는 듯이 역으로 행동하는 걸 추천한다. 혐오는 혐오로 갚아주기. 하지만 커밍아웃을 할 때는 그게 당장이든, 그 후에 서서히 갈라지든 이 사람과 연이 끊길 수도 있다고 염두를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혐오는 언제든지 나에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성애자임을 분명하게 밝힐 것이다. 아직은 어둡고 습한 곳에 숨어서 살아야 하는 많은 동성애자들이 밝고 쾌적한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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