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던 젓가락이 멈췄다. 이제 막 가지무침을 집으려던 나는 티비속 바텐더의 현란한 기술에 입속에넣은 맨 밥이 단내가 나도록 멈춰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다. 부산진역 3번 출구 월드바텐더기술학원. 천장 위 석면보드가 허에 드러나도록 낡고 우중충한 건물 3층, 옆에 소방서가 있어 불이나도 안전하겠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무렵 학원문 앞에 도착했다.
"일단 슥달에 32만 원이고 예 ~
뫄 떨으지도 햅격 할 때까정 가르쳐줍니데이!
따라오이소"
속눈썹개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관리자인지 원장인지 정체를 모를 남성분을 따라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흐힉!
옛날 과학실에서나 봤던 먼지묵은 벨벳커튼이 쳐져있었고 사방은 어두웠다. 마치 다단계회사창고 같은공간에 웬 이름 모를 술병들이 빼곡했다. 내 안의 생존본능이 등덜미를 잡아당겼다.
"에 여기서 실습을 하고예~
매주 수요일마다 칵테일도 만들고 합니더.
이번 겨울에 조주기능사시험이 있으이까네
열심히 한번 해보이소~"
그 수요일이라는 것은.. 그니까 수강생은 나뿐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했던 이곳에서 다른 수강생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만남의 날이었다. 그나마 다섯 남짓이었다.
침몰했던 타이타닉호의 바 어디쯤 가면 이런 술병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 기원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술병들이 수두룩했다. 이가 나간 각기 다른 모양의 칵테일잔, 녹슨 바스푼, 얼마나 씻어서 다시 쓴 건지 모를 불어 터진 병체리가 나뒹구는 그 조악한 실습실에서 운명의 첫 페이지는 시작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료들과 앉아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표정이 비장했고 뭐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서렸다. 훌륭히 1인 다역을 소화 중이신왕눈이 강사분이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복재킷 위로 착용한 스트라이프 팔토시가 인상깊었다.그리곤 안경을 쓱 들어 올리며 이름 모를 술병들을 하나하나 들어 설명을 해주시고 빈병이 있으면 물과물감을 타 뚝딱 술을 한 병 만들어내었다. 그가 노란물감을 타서 바나나리큐어라면 그런 것이고 빨간 물감을 타서 캄파리라고 하면 응당 그런 것이었다.
정말이지 연금술사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즉시 깨달았다. 우리가 만든 칵테일을 절대 맛봐선 안 되겠구나.. 이래서 학원비가 쌌구나.. 똥 밟았구나.. 등등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호구애를 느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음 수요일부터는 우리가 수업 전 술을 만들어내야 하는 가짜 연금술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마티니는 투명색
-키스오브화이어는 빨간색
-블루하와이는 파란색
마시지 못하는 칵테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희한하게 우리 모두 그곳의 분위기에 길들여지고 있을 때쯤 드디어 조주기능사 실기시험날이 다가왔다.
50가지의 칵테일 중 무작위로 출제되는
3가지 칵테일을
2명의 경쟁자들과
7분 동안 만들어내야 했다.
[아니 그런데 이런 썩을!]
학원의 술병들은 정말 타이타닉에서 주워온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같은 브랜드가 하나도 없냐) 처음 보는 럼병, 보드카병, 위스키병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집어 들어 일단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어찌어찌 학원에서 만들었던 것보다 더 영롱한 빛깔의 칵테일 3잔을 만들어냈다.
(먹을 수 있는 칵테일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 달 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거리의 캐럴들, 크리스마스풍경과 함께 그날이 성큼 다가왔다. 오늘 만약 합격한다면 나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고 불합격한다면 나는 오늘 최고의 꽐라가 될 것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떨리는 맘으로 하늘색 공중전화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응시번호 456847 장 OO
조주기능사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2000년 12월 24일 하늘색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그날 얼마나 방방 뛰었는지 모른다. 다음 해 나는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칵테일바에 취직을 하게되었다. 모든게 순조로웠고 멋진 바텐더의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희열감이 차올랐다. 첫 출근 날 소중히 코팅된 자격증을 품 안에 안고 바안으로 들어섰다. 사장은 자신 있는 칵테일을 한잔 만들어 보라 했고 나는 진을 이용해 마티니를 만들어냈다. 사장은 탐탁지 않은 듯 요새는 이런 거 잘 안 마시던데하며 중얼거렸다. 뒤에서 지켜보는 동료들의 조소와사장의 핀잔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일하기 전 메뉴판을 숙지하려 펼쳤는데 정말 당황해서 손이덜덜 떨렸다. 온통 모르는 칵테일들이었다. 자격증은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공부한 칵테일들은 지금 캐주얼바에서는 잘 먹지 않는 전통 칵테일 들이었던것이다. 사방천지 모르는 용어와 술들로 가득했다. 자격증 하나만 믿고 바텐더라고 들어선 내가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할 수 있는게 없어 싱크대 쪽에 고개를 처박고 설거지만 해댔다. 단골손님들은 새로 온 나를 보고는 호기심을 내비쳤지만이미 주눅이 들어버릴 때로 들어버린 나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결국 손님들은 나를 제일교포로 알고 갔다. 칵테일을 만들며 자신 있는 미소로 손님을 응대하는 멋진 바텐더를 꿈꿨건만..
결국 일주일 만에 잘리고 말았다.
일주일치 봉급이 담긴 흰 봉투를 쥐고 얼마나 서럽던지 길거리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다.
엄마에게는 대학안가고 바텐더를 할거라 큰소릴 뻥뻥 쳤는데.. 나는 또 다시 처량한 백수가 되고말았다
어느날이었다.
엄마가 장바구니가 무거우니 시장 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장을 다보고 보리밥이나 먹으러 가는길에 러시안2세들과 교포들이 모여사는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 부산의 이태원답게 이국적인 풍경에 외국인들도 많았다. 그런데 화려한 네온사인틈에 코리안 칵테일바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런데 칵테일바도 있었네?)
보리밥을 비벼 넘기면서도 계속 목구멍 위로 호기심이차올라 씹고 또 씹어 넘겼다. 첫 도전에서 KO패로 넉다운된 터라 다시 링 위에 올라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앞에서 눈빠지게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자고 이리 무모한 건지, 동시에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것에 새삼 놀랬다.
"실례합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내가 입구를 너무 막고 있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하며 나도 모르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 시선이 올라갔다. 청바지에 화려한 패치가 달린 유니폼, 그날 내가 티브이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 남자가 계단위로 사라지려는 찰나 나는 저기요~하며 따라 뛰어올라갔다. 영문을 모르는 남자에게 나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혹시.. 사람 구하시나요?"
나는 다시 내려가지 않을 각오로 말했다.
아니 월급 안 주셔도 되니까 가르쳐만 달라고.
다음날부터 나는 그 칵테일 바의 막내가 되었다.
바텐더 막내는 출근하자마자 전날 주문한 내 키높이만큼의 술박스를 정리해 놓고 가게청소, 화장실청소는 물론 고귀하신 선배님들이 드실 밥까지 해놔야했다. 설거지, 담배심부름, 마감청소까지 모두 내 몫이었고 제일 일찍 나와 제일 늦게 들어가는 신데렐라를 자처하였다.
13~4시간을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저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내 원동력이었고 그 공간의 일원이 된 것이 행복했다. 첫 월급 30만 원을 받고 엄마의 내복을 사고, 떨리는 첫 칵테일을 만들어 손님 반응을 살펴보고, 술병을 돌리며 손에 차츰 기분 좋은 굳은살이 만져지는 성장의 시간들.
나의 단골손님도 생기고 이리나, 나타샤, 엘레나 등 러시아 친구들도 생겼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부산이 좁아졌다
서울로 올라가 더 큰 경험을 하고 대회도 나가고 싶었다. 도파민 터지던 둘째 딸을 쿨하게 보내주신 울 엄마.. 다시 집에 돌아가기까진 10년이 걸렸다.
서울깍쟁이들의 텃세, 눈감으면 코는 멀쩡한데
지갑을 베어가는 서울 방 값,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 내 밥을 해주는 막내가 생기고, 가짜술을 만들던 짝퉁연금술사가 진짜 연금술사로 성장했던 과정
그 10년 남짓의 시간들은 말하자면 내 생애 최고로 반짝거리던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그 일터에서 빛나는 선후배가 있고, 좌절하여 안타까운 선택을 한 동료도 있었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찬 까먹는 걸 깜빡하고 티브이 속 바텐더에게 반했던 그 몇 분, 그 찰나의 시간이 나를 이길로 이끌었지만 후회도 그렇다고 마냥 좋았다고도 할 수 없는 희한한 감정이 든다. 내가 상상으로 만들었던 그 칵테일처럼 아득하고 판타지같은 이 모든 여정이 나를 완성한 레시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