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장미

by 다반사

"야야야! 잔깐만 잠깐만!

아어(저)씨 이거 꼬(꽃) 하나 주세요~꼬 ㅊ!"

길에 놓인 유리꽃 한 송이를 샀다.

혀가 꼬부라진 채 ‘엄마 줄 거’라며 들고 흔들던 내 모습에 친구들은 박장대소했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장미를 마치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인 양 품었다.


2000년.

세기말의 불안이 지나고 밀레니엄이 막 열리던 때.

언니는 울산으로 새 직장을 찾아 떠났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빈둥거리며 ‘백수’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집안 사정을 생각해 대학교 진학을 미루며 엄마 앞에서 괜히 정색한 것도 사실은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였다. 이제 나도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동안이네.”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동시에 스무 살의 뒷덜미를잡은 족쇄이기도 했다. (에이 잠깐만. 가지 마요)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췌 취직이 되지 않았다

등록금 아까워! 대학교 따윈 가지 않아! 이제 내 돈은 내가 스스로 벌 것이야! 큰소리치던 포부가 무색해질 만큼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이 멀건 얼굴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조차

"아이고 임자딸내민갑네? 올케 몇 살이고?"

_졸업했는데요.

"그러면 인자 고등핵교 올라가는가배~

공부열씨미 해래이~"


아니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니까 다시 고등학교를 가라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에 나는 진짜 중학생처럼 사춘기가 다시 올 뻔했다. 알바도 안 구해지는데 직장 같은 게 구해질 턱이 없다. 면접 가면 다들 자기 애를 보듯이 걱정했다. 계속되는 취업낙방에 꽃다운 스무 살은 바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바스러져갔다.


"보글보글보글"

오늘도 라면! 백수주제에 쌀밥은 사치야!

찬장 위에 있던 교차로 신문을 깔고 냄비에 라면을 한 젓가락 집으려던 그때 어디론가 시선이 향했다.


– 집에서 편하게 쉬듯 돈 버실 분 모집 –


자택근무, 수당제,


나이무관!


사자성어도 아닌것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이 네글자를 보자마자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전화기쪽으로 한마리 미꾸라지처럼 슬라이딩했다.


또르르르르르~


"여보쎄요?"

-네.. 안녕하세요..

교차로보고 전화드렸는데요.. 부업 구ㅎ..

"아 ~예예예예예"


돌림노래 후크송처럼 대답을 반복하신 수화기 건너편 그녀는 대뜸 내일 오후 3시까지 사무실로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이게 쫌 보셔야 아실끼라예~

내일 사무실로 함 오실랍니꺼?"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이거 뭐 신종사긴가?)

밤새 깊은 고민을 할 뻔했지만 깊은 단잠을 자고 난 나는 다음날 그 사무실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부산이란 도시에서 왜 영화를 많이 찍는 줄 알겠다. 그냥 지나치기 좋은 이 골목도 기가 맥히게 세팅이 되어있다. 꽤 구도적으로 쓸만한 시야에 놓인 고무다라이, 그 안에 무심하게 심어진 대파쪽다리, 며칠째 비바람 맞아가며 황태로 거듭나고 있는 산악동호회 저 빛바랜 수건까지..

골목자체가 이미 누아르 영화 한편 뚝딱이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나의 앞머리를 보기 좋게 갈라놓았다. 난 결심한 듯 영화 주인공처럼 자체슬로모션으로 세레트 문을 힘차게 밀었다.


으응?

그 안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한눈에 봐도 남녀노소 그 카테고리가 다양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에 대단히 열중하고 있었다.


"어제 전화주신분인 갑지예?


나이아가라 파마로 뽕을 한 껏 세운 아줌마가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이어 꽤 두툼한 용지들도 같이 건넸다. 내가 받아 든 것은 생뚱맞게도 색칠공부였다. 거기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열중하고 있었던 것

디즈니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세계관의 그림들을 꽤나 진지하게 물감으로 칠하고 있었다. 내가 건네받은 그림은 교회창문에서볼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고딕양식 같은 더 정교한 그림이었다.


"젊으신 분들은 손이 빨라가꼬예~ 요런거하시믄 되고예~ 요기서 그리도 되고 집에서 해가꼬 오시도 됩니더! 장당500원쓱 쳐주고예~

그림보증금하고 물감하고 해서 초기비용으로

삼만원주시믄됩니더~"


그니깐 컬러링아트처럼 이 그림에 색칠만 해가지고 오면 장당 500원을 주고 난 재료비만 내면 된다고?

오호.. 이건 꽤 재밌겠는데..

기꺼이 또 호갱미를 발산하며 나는 그림 30장과 물감 한 통을 소중히 품에 안고 나왔다. 그 순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이 생긴 게 기뻤다.

그러나 그 쎄레트 문이 닫히기 전 그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절때 저얼때 테두리바깥으로
색이 튀나 오모 안됩니더~더더더더....
그건 안쳐줘예~예예예예~~~


퇴근한 엄마가 거실 가득 펼쳐진 풍경에 기겁을 했다. 하지만 도와준다며 곧 같이 붓을 잡았다.

50대손으로 완성하기에는 난이도가 있었다.

자꾸 선 밖으로 물감이 튀어나와서 애먼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이건 너무 연해서 안쳐줘예~

물감얼룩도 지면 안쳐줘예~

색이 튀나와도 안쳐줘예~

귓가에 그녀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아 나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3일지나 나는 붓을 놓았고정신도 놓았다. 지독한 손목통증과 허리통증으로 몸져누웠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천장엔 3D로 생긴 계산기가 갑자기 펼쳐졌다. 그림을 칠해 물감값 3만원을 퉁치려면 60장이나 완성해야 한다는 현실에 기겁해 벌떡 일어났다.


당했다!


팔레트 색처럼 빛날 줄 알았던 나의 첫 부업은 물감값3만원과 파스값만 삥 뜯긴채 잿빛 누아르처럼 저물어갔다. 그렇게 상실의 시대를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엄마가 이번엔 벼룩시장을 펼쳐내며 나를 불렀다.


집에서 편하게 작업하세요


-아이..안 해 안 해!


"아이다! 함 봐봐래이. 이거는 맨든만큼 갖다주믄 돈 받는거네. 니 맨드는 거 전공아이가! 그라고 이건재료를 준다는데?"


재료를 준다고?

재료를 모두 제공하고 초기비용 없이 만들기만 하면된다는 말에 나는 어느새 또 다른 문 앞에 서있었다.이번엔 장르가 달랐다. 사무실은 꽤 깨끗한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똑똑"

긴장하며 두드린 문이 열렸고 사방이 온통 새하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의 주인은 바로 장미꽃

꽃이라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생김새도 뭔가 좀 특이했다.


"이건 특수용액으로 잎을 만들어 굳히고 겹겹이 완성해 장미꽃 하나를 만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에요. 용액 담갔다 빼는 게 1초도 안 걸릴뿐더러 그냥 돌돌말아 장미꽃모양을 만들면 됩니다


부산에서 유창한 표준어를 들으니 왠지 신뢰가 갔다

즉석에서 배워 본 유리장미꽃을 만드는 일은 의외로재밌었고 손재주가 좋다며 칭찬도 받았다.


"집에서 틈날 때마다 굳혀놓고 말리고

티브이 보고 쉬면서, 놀면서 만들어 오십니다.

인기 있는 부업이라 자리가 금방차요.

너무 완벽하게 하실 필요도 없고

꽃만 수량 맞춰 만들어오시면 돼요

개수당 60원 계산해 드립니다."


완벽을 요구하는 전 직장(?)과는 달리 유연하고 상냥한 태도에 나는 재료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아 이번 장르는 로맨스구나.

돌아오는 내내 장미꽃 한 다발을 품에 안은 듯 행복했고, 돈 벌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뭔 냄새고?"


퇴근한 엄마는 집안풍경에 또 기겁을 했다.

스티로폼에 꽂힌 채 굳어가고 있는 꽃잎들과 눈이 시뻘게져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딸내미


-"엄마 이거 봐라~장미꽃이다~희희힉"


눈이 풀려 장미꽃 한 송이를 눈앞에 들이미는 딸내미를 보고는 엄마는 급하게 창문을 열었다.


"장미꽃이고 나발이고 이게 뭔 냄새고?

이거 뽄드아이가? 미친는갑다!"


그렇다. 묘하게 맡아본 듯하면서 만드는 내내 머리가 아팠던 냄새. 바로 본드냄새였다. 꽃을 만들수록 손가락 끝이 벌게지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엄마는 사람잡겠다며 당장 갖다주라고 했다. 그렇게장미꽃 198송이를 만들고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정산받고 나왔다. 그마저도 연고값으로 쓴 듯하다.

꽃향기가 나지 않는 장미, 그것은 배반의 장미였다.

내 스무 살 인생에 쓰라린 생채기를 냈던 그 두 가지사건들을 겪고 나니 엄마는 위기상황을 인지하신 듯

인상을 성숙하게 바꿔야 한다며 성형외과로 데리고 가서 갑자기 쌍꺼풀수술을 시켰다.

그리고 대학진학을 위해 재수준비도 다시 시작했다.바뀌어버린 외모보다도 바뀌어버린 마음가짐이

그 이후에 이어진 취업활동에 더 도움이 된 듯하다.

아직도 부업이란 글자만 보면 그때 일들이 생각난다세상이 바뀐 요즘은 주로 인터넷을 활용한 일들이지만 요새는 좋은 대학에 번듯한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람을 숫자로 평가하는 사회가 야속하고 무섭다.

내가 생존활동으로 했던 꽃 만들기와 색칠하기는

컬러링과 딥아트플라워라는 고급취미의 한 종류로 각박해져 가는 청춘들에게 힐링을 주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안정된 직장을 피해 외골수로 먼 길을 돌아와 결국 자영업자 꿈나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마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제 인간의 경제활동은 단순히 먹고 사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이 말이 내 인생의 모토인데 어쩌면 편한 세상 복잡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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