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생극장

by 다반사


"5시다~~"

-네에~내려가요오~


투다다다닥 1층으로 내려와 DVD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었다. 옷을 거의 입지 않은 빵오빠가(브레드피트) 말을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간다. 오늘의 영화는 바로 트로이*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이곳에서

오후 5시마다 자그마한 극장의 영사기사가 된다.

어제는 반지의 제왕* 내일은 아마 와호장룡*

바텐더일을 시작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두 달 정도 공백이 생겼다. 그날도 하릴없이 남포동 국제시장을 돌아다니며 쭈구리마켓(구제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1000~2000원에 파는 곳)에서 코트하나 스웨터하나를 오천 원에 득템해 오는 길이었다.


-알바모집-
땡땡 DVD 전자
2층 dvd대여사원구함
2시 출근~8시 퇴근
*영화관심 많고 좋아하시는 분

영화관심 많고 좋아하시는 분?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마지막 문장


15 평남짓의 2층짜리 건물의 DVD판매점. 평소에도 커다란 100인치 브라운관에 늘 영화가 틀어져있어 지나갈 때마다 힐끗 힐끗대던 곳이었다.

바스락거리는 검정봉지를 뒤로 숨기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띠링~ 문 위의 달려있는 차임벨이 울리자 수족관 너머 검정가죽소파에서 은밀한 무언가를 하던 세 사람의 고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왔다.

(....... ) (....... ) (....... )

-아.. 안녕하세요~

"예에 어서 오세요. 뭐 dvd보실라꼬예?"


머리의 절반이 흰머리로 덮인 풍채 좋으신 아저씨 1호가 일어나 다가왔다.


-아.. 바깥에 저거 보고..

나는 소심히 입구 쪽 모집공고를 가리켰다.


"아아~ 이리오이소! 들어오이소~"

이번에는 체크무늬카디건을 입으신 아저씨 2호가

일어나셨다. 그리고 마지막 3호에게 말했다.

"김 군아~ 2층에 가서 안내해 드리라"


김 군은 말없이 2층으로 올라갔고

아저씨 1호와 2호는 따라가라는 수신호를 내게 보냈다. 삐걱삐걱 불규칙한 나무계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오. 마. 이. 갓!!!!

2층에 올라서자마자 속으로 비명 같은 감탄사를 질렀다. 15평 되는 공간 빼곡히 모두 dvd로 도배돼있었다. 고시생분위기를 풍기는 김 군은 찬찬히 나에게 설명을 했다. 오후 2시에 출근하면 간단한 2층청소 후, dvd를 빌려주고 반납받는 일,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받기, 그리고 여기 있는 dvd모두를 자유롭게 봐도 좋다는 천 예의 조건까지!


아~여기가 천국이구나

바텐더고 나발이고 여기에 뼈를 묻어야겠다!

나의 좌심방과 우심방이 미친 듯이 뛰었다. 헤죽헤죽 웃으며 나는 내일 출근을 약속받고 집으로 향했다. dvd를 빌리러 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하루에 10명 오면 많이 오는 거였다. 나는 그시간 동안 자유로이 보고 싶은 영화를 봤다. 내 인생의 영화 절반을 이때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대는 웅장한 5.1 돌비사운드와 배우들의 코털까지 보이는 블루레이 화질은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만 보던 내게는 사치 그자체 였다. 뒤죽박죽 되어있는 영화들을 나름대로 장르별 시대별 시리즈별 배우별 감독별로 정리도 하니 훨씬 더 공간이 정돈되어 보였다. 연체료를 받아야 하는 블랙리스트장부도 정리하고, 야한 영화만 찾는 손님과 눈치게임도 하고, 영화 추천도 해드리는 나만의 단골손님도 생겼다. 나만의 알프레도가 생겼고 나는 기꺼이 토토가 되었다.

내가 이토록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우리 아빠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아빠는 주말마다 단골가게에서 큰 종이가방 빼곡히 양손 가득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오셨다. 일월신검* 독고신검* 초류향* 의천도룡기*등등

기본20편 이상인 장편 중국영화시리즈를 아빠, 언니와 나는 지글지글한 방바닥에 각자 선처럼 누워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주말 내내 관람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특히 중국영화를 좋아했다. 지붕과 나무 위를 슝슝 날아다니며 검을 휘두르는 환상적인 무술액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또 중학교 때는 연걸이 오빠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정무문* 소오강호* 대도무문* 소림사* 보디가드* 등등. 오빠의 머리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반만있을동안 무협이든 현대극이든 가리지 않고 보며 복수를 같이 꿈꿨고 같이 울었다.

주성치, 오맹달, 홍금보, 장국영, 구숙정, 양채니는

그 당시 나에게는 최고의 사부이자 의형제였다.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접해온 나에게 dvd대여점알바는 천상의 직업 같았다. 손님들에게 어울릴 만한 영화를 추천해 드리고 그 손님이 2층계단을 올라오시며 터미네이터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반납하러 오실 때는 짐캐리처럼 입이 안 다물어졌다. 그렇게 영화처럼 행복한 날들이 지나갔다.


따르릉!

-네 광복디비..

"사장바꾸이소!"

-지금 사장님 안계ㅅ

철컥! 뚜뜨뜨뜨. . .

어느 날부터 이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사장만 찾는 무례한 전화들이 하루에도 꽤 자주 걸려왔다.

나는 17살 적 I.M.F를 정통으로 맞았던 아빠의 사업으로 인해 이들이 누군지 확신할 수 있었다.

빚. 쟁. 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아날로그시대에서 밀레니엄시대로 도약한 그즈음, 비디오시장에도 새 바람이 불어왔다. 음악 CD처럼 얄팡하고 고급스럽게 생긴 DVD라는 물건이 동네의 비디오대여점의 가계부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대단한 열풍을 일으켰다. 5.1 돌비사운드, 블루레이 코덱 DTS 챕터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적혀있는 미래에서 온 이 물건은 홈비디오시대에서 홈씨어터의 시대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네의 비디오대여점이 우후죽순 망해가는 가운데 시내의 유명한 사거리 근처에는 DVD 판매점들이 줄줄이 생기기 시작했고 영화배우들이 금방이라도 화면에서 튀어나올법한 큰 100인치 브라운관에서는 스케일이 큰 실감 나는 영화들이 연신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 있었다.

사장님도 그 열풍에 따라 땅값 비싸다는 광복동 노른자 자리에 널찍한 50평 2층매장으로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하셨다. 매장이 붐비고 사람들로 가득 찼던 호우시절,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화려했던 그때

하지만 기술의 흐름은 우리의 세월보다 빨랐다.

집에서도 영화를 맘껏 볼 수 있는 홈 VOD시대가 개막되었다. 불법 공유다운로드 사이트들이 활개를 치고 여기저기 공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도둑시장들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하나에 15.000원 정도 하는 이 비싼 물건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공기가 빠져버린 풍선처럼 사장님의 사업도 쪼그라져갔다. 길가의 15평 2층 건물의 가게자리로 세간도 줄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건 빚쟁이들이었다. 독촉전화가 늘어갈 때마다 사장님의 흰머리도 늘어갔다.


첫 번째 월급날, 그 월급을 다 받는 데는 꼬박 보름정도가 걸렸다. 김 군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그래도 사장님이 월급 떼먹을 분은 아니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점점 얼굴보기가 힘들어진 사장님은 가끔 내 퇴근시간 전에 찌든 담배냄새를 풍기시며 나타나

식은 붕어빵 한 봉지를 놓고 가시곤 했다.

출근 첫날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물으시며 영화취향이 비슷하다고 이런저런 영화도 추천해 주셨던 사장님. 매일 5시면 가게 밖에 동네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영화 틀어주기만을 기다렸을때도 내쫓지도 않고 스스럼없이 그 옆에 앉아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셨던 분이셨다.

내가 젤 좋아하는 동사서독 비디오테이프를 꼭 DVD로 구워주겠다고 약속도 하셨었는데..


두 번째 월급날이 채 오기도 전에 마지막 출근날이 되었다. 삐걱삐걱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서니 온통 빨간딱지들이 붙어있었다. 영화주인공들이 나를 향해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히어로도 뭣도 아니었다. 중국영화 DVD칸으로 다가갔다. 원래라면 오늘 보기로 계획했었던 영화였는데..장국영오빠 이마에 붙은 딱지를 떼어 DVD하나를 몰래 품 안에 넣었다. 1층으로 내려오니 김 군 오빠는 나머지기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빠.. 저 먼저 갈게요


"와? 몇 개 더 챙기가지..니 좋아하던 거ㅎㅎ"


오빠는 마치 다 알고 있는 듯 웃으며 말했다.

평소 잘 웃지 않는 오빠였는데 나는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 웃는데 슬퍼 보이는 것을

내가 처음 일자리를 구하러 왔을 때 사장님과 김 군 아저씨 2호는(앞집 부동산아저씨) 그 수족관 뒷자리에서 김청기감독의 우뢰매 비디오테이프를 DVD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은밀히 하고 있었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만들면서 본인들의 추억의 산물들이 좀 더 영원하고 선명하길 바라던 순수한 열정들이었다.


두 번째 월급은 영원히 받지 못했다.

(김 군은 사람 볼 줄 모른다)

몇 년 후 다시 그 자리에 왔을 땐 산채비빔밥 전문점이 생겨있었다. 매일 오후 5시면 삼삼오오 모여들던

노숙자아저씨들은 어디 갔을까.

사장님은 나와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계실까


우린 서로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조연들이었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맡은 씬들을 채우며 같은 장면 안에 머물렀다. 그 장면들이 모여 오후 5시의 노을처럼 빛 바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걸 알면서도 끝까지 자리지키며 마주 보았던 영화처럼..그 시간 속 영화라는 공간안에 머물러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원했던 결말이 아닐지라도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 저마다의 가슴속에 화양연화(花樣年華)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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