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반지하

by 다반사

서울역에 내려 아라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담역으로 온나"

서울지하철노선은 겨울철 뜨다만 뜨개실타래 같았다. 어디서부터 엉킨지 몰라 되는대로 쓰던 드라이어기 전선 같았고, 풀리지 않는 수학공식 같기도 했다. 짐은 단출하기 그지없는 가방한짝이었지만 가도가도 끝없는 고행길에 물에 젖은 이불솜처럼 무거워졌다. 겨우 도착한 청담역 7번 출구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니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라치 언니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잘 찾아왔네 매루치 ㅎㅎ"


키가 껑충 크고 삐쩍 마른 얼굴에 주근깨투성이 아라치언니는 내가 신데렐라시절에 (바막내) 먼저 일하고 있었던 바텐더선배였다. 우린 그 공간에서 궂은일을 맞장구쳐가며 친자매처럼 친해졌다. 먹는 취향도 비슷하고 웃는 포인트와 우는 포인트도 복붙이었던 우리답게 바텐더닉네임도 마루치 아라치로 지었다. 아마도 내가 커트머리라 마루치가 된 것 같다. 독립성이 강한 첫째 딸 아라치언니는 나보다 미리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내가 올라오게 된 계기의 80%는 아마도 언니가 이유일 것이다. 청담동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골목을 따라 얌전하게 생긴 건물입구로 들어서 언니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청담동 반지하 500에 40짜리 10평 남짓한 원룸. 그곳에서 당분간 신세를 지게 되었다. 언니와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고 근처 pc방으로 갔다.

바텐더카페 사이트에 구직을 알아보려 함이었다.

"건대? 건대가 어디야?"


"가깝다. 요서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


알고 보니 청담역에서 두정거정만 가면 건대도 있고

15분만 걸어가면 세븐이가 신나게 힐리스 타던 코엑스라는데도 있고 또 두 정거장 더 가면 한강에도 갈 수 있었다. 건대에 있는 바에 구직정보를 넣었는데 다행히 저녁에 연락이 와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언니가 바닥에 깔던 이불을 줘서 맨바닥에 둘이 하나씩 덮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청담동의 첫 밤은 낯설고 축축했다.


건대는 복잡하고 사람이 많았다. 한 골목 사이로 정신없는 카페와 술집들이 펼쳐져있었고 중간쯤에 면접 볼 바가 있었다. 괜찮아 쫄지마하며 쫄면같이 쫄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들어갔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가 두 번 정도 스쳐보면 조승우를 닮은 바텐더가 면접을 봤다. 자신의 바텐더 네임은 아로라며 타락천사 뭐 어쩌고에서 따왔다고 설명했지만 너무 장황해서 흘려들었다. 곧이어 내 닉네임을 물었다. 마루치라고 했더니 웃으며 아라치는 어딨어요? 한다. 집에 있다고 하니 박장대소를 했다. 서울의 낮은 웃음장벽에 긴장이 풀렸다. 그래 이 정도 분위기면 합격이지.. 곧이어 병돌리기(플레어)면접도 봤다. 긴장돼서 손이 미끌거렸지만 준비한 대로 잘 끝냈다. 타락천사 선배는 내 전완근이 맘에 들었는지 다음날 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날 마루치와 아라치는 집에서 닭발 파티를 했다. 너무 매워선지 기뻐선지 모르겠지만 연신 눈물을 흘렸다.

건대의 바는 너무나 바빴다. 만들어야 할 칵테일도 너무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산더미였다. 저녁 6시 출근에 아침 5시 퇴근이었다. 아라치는 신천이라는 동네에서 일했다. 파란 해골단을 물리치는 것보다 바텐더일이 몇십 배는 고되고 힘들었다. 마루치 아라치는 해가 뜨면 자고 해가 지면 일어나는 뱀파이어들이 되었다. 친구들과 선후배도 많이 생겼다. 옆집가게 마리, 뒷집가게 아리, 건너편가게 유끼는 기꺼이 마루치의 동료들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개이름을 닮은 친구들과 그 시절을 의지하며 버텨냈다


술회사에서 주최하는 바텐더대회가 일 년에 두세 번개최되었다. 전국구라서 전국에서 날고 기는 바텐더들이 모여 플레어 대회를 펼친다. 대회에서 우승을 한 바텐더들은 우리들 사이에선 동경의 대상이었고 연예인급으로 인기가 많았다. 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바텐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나가보고 싶은 욕심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겁도 없이 어느 날 대책 없이 루키바텐더 대회에 신청서를 냈다. 대회까지 남은 기간은 1달뿐. 나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다 못해 찢어질 때까지 연습했다. 5시에 일이 끝나면 한강 잔디밭에 가서 아침 8~9시까지 병을 돌리며 연습했다. 거의 뭔가를 미쳐서 한 게 있다면 아마 이때가 유일했을 것이다. 나는 왜 그리 간절했을까. 서울로 간 딸내미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부산에서 왔다고 은근히 텃세주는 콧대높은 바텐더들에게 내 결심이 옳았다고 항변하듯 나는 지독하게 자신을 밀어부쳤다. 드디어 대회날, 고작 6분밖에 안 되는 이 시간을 위해서 지난 날들을 이 갈며 준비했다. 무대에 올라서자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내가 신호를 주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한 건지 6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긴장이 풀리면서 토를 할 것 같아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눈물과 땀과 뭔가 모를 마음들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안도감과 아쉬움과 손끝에 남아 있는 긴장들에 온몸을 떨며 한참 울었다.

결과는 4위!

60명이 넘는 참가자들 중에 4위를 했다.

그것도 여자부는 1위로..

비록 3위까지만 상금을 줘서 순위권에 미치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대회뒤풀이 때 수많은 바텐더들이 인사를 건네고 멋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바텐더카페에 올라온 내 대회영상에도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대회 한 번에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들이 달라져있었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갑자기 엄청난 피로감과 회의감들이 몰려왔다. 이제 뭘 하지? 정체성과 방향이 사라진 느낌이었고 감기처럼 몸이 축 처지고 기분도 가라앉았다. 뭔가 방향키를 잊어버린 배처럼 망망대해의 바다를 이리저리 떠밀려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우리에게 칵테일을 가르쳐준 사수였다. 사업제안을 받았고 제주도에 오픈하는 바에서 같이 근무할팀을 모집 중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번아웃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 같았다. 아라치언니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하니 모든 것들이 다시 기대로 부풀었다. 다른 쪽에서 합류한 남자바텐더 둘, 여자바텐더 하나, 디제이 둘, 그리고 마루치, 아라치 이렇게 근사한 팀이 꾸려졌다. 수학여행을 끝으로 성인이 되어 다시 온 제주는 여전히 푸르고 멋졌다.

새로 오픈할 매장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주시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 제일 핫했던 클럽식 바를 모티브로 잡은 거라 규모가 상당히 컸다. 사장님은 건설 쪽에 계시던 분이셨는데 성격이 호탕하고 시원시원하셨다. 첫 한 두 달은 엄청나게 바빴다. 하지만 관광객이 빠지고 좁은 제주땅에 올 사람이 이미 다 다녀갔는지 추운 11월이 되자 손님이 급격히 떨어졌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춤을 추고 있어야 할 스테이지는 신나는 음악소리가 무안할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손님이라곤 야간에 출근하기 전 잠깐 들러 대기하는 다른 유흥업소 사람들이 다였다. 여자인 오빠들.. 그리고 또 분내나는 오빠들

점점 사장님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사장님도 늘 접대를 위해 누군가를 룸에 데려오는 날이 잦아졌다.

하루는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아라치언니와 나를 룸으로 불렀다. 사장님만 계신 줄 알았는데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들도 같이 계셨다. 같이 앉으라는 사장님의 눈짓을 보자마자 나와 아라치 언니는 소리를 치며 나왔다.

"사장님 저희 바텐더예요! "

분해서 눈물이 났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우리가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사수는 제주도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 허구한 날 가게를 비우고 술에 취해 우리에게 관심이 끊긴지 오래였다. 이런 걸 꿈꾸면서 내려온 게 아닌데..

아라치언니와 나는 숙소로 돌아가 짐을 쌌다.

비행기표도 끊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제주여행을 했다. 그전에는 일하느라 미처 구경도 못했던 제주였다. 제주도에 산다던 선배와 후배들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이기도 하고, 귤밭이 끝없이 펼쳐진 돌길을 한없이 걷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미련 없이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사수는 뒤늦게 전화가 와서 사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욕부터 퍼부었다. 상관없었다. 다음 해 봄이 오기 전 그 클럽은 문을 닫았고 사수와도 연락을 끊었다. 다녀와서 순탄하게 잘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삼재가 이런거구나를 목에 피맛이 날 정도로 느꼈다.그래도 끝까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다. 뻔뻔하게 내자신을 어르고 얼렀다. 그냥 그래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간신히 버티고 버텼다.

그쯤 학교 때 친구들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결혼 준비도 한창이었다. 어릴 때야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네가 부럽단 소릴 들었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경주에서 앞질러간 거북이를 바라보는 토끼가 된 것 같았다. 칵테일 한잔에 반해서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미 항해는 시작했고 어디든 잘 정착해야 했다.그 목적지가 내가 원한곳이 아닐지라도 지나온 풍경과 경험에 감사하기로 그렇게 암묵적으로 약속했다.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실컷 벌고 싶었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몸소 10년 가까이 부딪혀 보고 나서야 알았다.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해야 할까.

여전히 육지에 내려서도 망망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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