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트럭은 먼지투성이인 비포장도로를 울퉁불퉁 달렸다.언니와 나는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아빠옆에 나란히 앉아 창 밖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윽고 익숙한 파란 대문 집 앞에서 차가 멈췄다.
아빠가 트럭 뒤에서 짐을 내릴 동안 우리는 꼼짝하지 않았다.내리면 다시는 이 차를 타지 못할 것 같은느낌이 들었다. 딸깍- 문이 열리며 아빠가 말했다
“내리라 ~ 할무이한테 인사드리야지”
할. 머. 니.
나의 일곱 살 인생 통틀어 제일 무섭고 두려운 존재
삐쭉삐쭉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고 언니와 나는 아빠 바짓가랑이 뒤에 쫄랑 숨어 할머니를 보았다.늘 동백기름을 발라 단정히 쪽 진 머리,스님들이 입는 회색 바지에 흰 고무신,매서운 두 눈과 자글자글한 손에 끼어진 옥 가락지, 그리고 늘 할머니에게는 진한 향내가 났다.
“밥 안 무쩨? 어여 들어온나~ 자고 갈끼라?”
-"바로 올라가야 됩니다~일이 바빠가 꼬예~ 어무이 미안합니더. . 애들 좀 잘 봐주이소
자주 디다보께예."
파란 대문 너머로 할머니와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아빠는 얼핏 우는 것 같았다.이내 차 출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 혼자 노란 봉투 하나를 쥐고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밭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이 씨 뻘게져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두 손녀를 보더니 수돗가로 가 파란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내밀었다 물은 마시는 둥 마는 둥 원피스앞섶을 가득히 적셨다.
“요온나~할배한테 인사드리야제~”
큰방 바로 옆 자그맣게 나 있는 문.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제일 먼저 가야 하는 방. 언니와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 무서워했다.컴컴한 방안에는 진한 향내와 함께 양쪽에는 커다란 초들이 켜져 있었고 부처님 불상이 가운데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향 두 개를 뽑아 불을 붙여서 휙 하고 천장으로 돌리더니 이내 연기만 나는 작대기를 쌀 알이 담긴 화로에 꽂고 눈을감고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꼭 마법사같았다. 그리고 아빠가 주고 간 봉투를 부처님 할배 앞에 놓고 우리에게 손짓했다.
1배 2배 3배 반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절을 마치고 나면 불상 앞에 놓인 푹신푹신한 수박젤리 두 개를 집어 언니와 나에게 쥐어주셨다. 그 방에선 유일하게 그것만 좋았다.
커다란 나무문이 있는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고 이내 찐한 청국장 냄새가 났다. 동그란 상에 세 사람은 꼭지점처럼 둘러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커다란 멸치가 통째로 들어있는 진한 시골 청국장, 대접에 통째로 꺼내놓은 신김치, 할머니가 늘 보약처럼 드시던 생비지, 비릿한 젓갈에, 시꺼먼 무 장아찌..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에 손녀딸들은 맨밥만 연신 꿀떡꿀떡 삼켜댔다.
“지 좋아하는 거 해놔띠마 와 밥도 안믓고가노”
아빠걱정에 한숨만 푹푹 쉬던 할머니도 몇 술 못 드시고 우리가 남긴 밥은 고스란히 꿀식이(할머니집 흑돼지) 차지가 되었다. 할머니는 옻칠 곱게 한 단스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어 손녀들을 눕혔다.
그래. 차라리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은 꿈처럼 사라지리라 믿었다. 건넌방으로 가신 할머니가 가방지퍼를 열고 옷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우리는 바닥으로 빨려들 듯이 잠이 들었다.
탁탁 탁탁탁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 원만 무애대비심대다라니계청~
할머니의 독송소리에 어렴풋이 잠이 깼다. 한참 잔것 같은데 아직 바깥은 깜깜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으니 할머니는 인기척에 잠깐 멈추어 돌아보시곤 방 위쪽에 놓인 요강을 가리켰다. 나는 엉금엉금 차가운 요강에 오줌을 쫄쫄쫄 싸며 멍하니 할머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8시까지 더 자라고 했지만 잠은 더 오지 않았다. 멀거니 누워 바라본 천장모습이 낯설었다. 어젯밤 꿈에는 아빠랑 엄마랑 초읍 대공원에 놀러가 동물원도 구경하고 솜사탕도 신나게 먹었는데 서글펐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눈물은 안 났다. 꿈속에서도 꿈인걸 알아서였을까.. 자장가 같던 할머니의 독송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정신이 아물어져 갔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대청마루에 앉아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까만 머리에 동백기름을 정성스레 발라 참 빗으로 곱게 빗었다. 그 긴 머리가 나는 동화책에서 봤던 라푼젤 같아서 어쩜 저리 길까 신기해 넋을 놓고 봤다. 쪽지은 머리에 은색비녀를 꽂고 나서는 녹슨 분유통이 놓인 오봉을 끌어당겨 팔각 성냥갑에 성냥 머리를 탁탁 부딪혀 담배를 피우셨다. 눈을 감으면 할머니가 하시던 모든 장면이 구름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의 모습 하나하나가 나는 잊혀지지 않는다. 흑백 무성 영화같기도, 누렇게 빛바랜 소설책 같기도 하다.
할머니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를 모래말 때기라고 불렀다. 햇살에 따땃해진 마루에 걸터앉아 어른들은 함께 담배를 태우시곤 했다. 아랫집 복식이 할배도, 윗집 진주때기할매도 오실 때면 사탕 같은 걸 꼭 한 봉지씩 가지고 오셔서는 슬며시 놓고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에 보기 드문 어린 손녀들 구경 오신듯 한데 그 많던 사탕 들은 어김없이 부처님할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우린 그게 늘 못마땅했다.
할머니 집에서 읍내는 버스로 꼬불꼬불 비탈길을 달려 꼬박 1시간이나 걸렸다. 하루에 4대밖에 안 다니는 그 귀한 버스는 마을에서 제일 큰 정자나무밑에서 언니와 한참 술래잡기 놀이를 한 뒤에나 탈 수 있었다. 정말 할머니집은 지리산 밑 시골마을, 시골 중에 깡시골이었다.
한 달에 한번 할머니는 언니와 나를 데리고 읍내로 나가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찬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의 몸은 온통 쭈글쭈글했다. 젖가슴은 쪼그라들어 불쌍해 보였다. 우리 큰아빠, 아빠, 막내삼촌, 고모들이 다 먹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우리는 둘 뿐이라 엄마는 참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할머니는 힘이 없어 보였는데도 때를 밀어줄 때는 놀라리만치 아팠다. 볼이 빨간 채로 목욕탕 문을 나서면 할머니는 치마를 허리춤까지 들어 올려야 보이는 빨간색 복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어 맛있는 짜장면도 사주고 장터에 가서 장미담배도 사고 참빗도 두어 개 더 사셨다. 그리고 어느 날은 큰 문방구에 가서 언니 공책도 사고 핑크색 필통도 사고 흰 고무실내화도 샀다. 자꾸 언니 것만 사서 거의 울기 직전인 작은 손녀에게는 색연필 세트를 사줬다. 할머니말로 언니는 내일 핵교에 슨상님 만나러 간다고 했고, 나한테는 슨상님이 아주 무섭다고 안 사준 학용품값을 퉁 치듯 겁을 주셨다. 나는 할머니말을 곧이 믿었고 언니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참 빗으로 언니의 머리를 곱게 빗어 양갈래로 묶어주었는데 양쪽머리가 모양이 맞지 않아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대문밖을 나서면 복식이 할배 막내아들인 지훈이 오빠야가 언니를 데리고 통학을 대신했다. 지훈이 오빠야는 얼굴이 되게 새카맸고 늘 파란색 츄리닝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말라서 항상 바짓단이 땡강하고 올라가 있었다. 언니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는 너무 심심했다. 할머니가 모아두신 달력 뒷 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곧 지겨워졌다. 내가 심심해 뒹구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르신들이 명절 때 손녀. 손자들이 놓고 간 동화책, 영어책등을 하나씩 가져다주셨다. 나는 이미 일곱 살 때 떠듬떠듬 글은 읽을 수 있었다. 언니는 학교 가서 배운것들을 동생에게 가르쳐주며 선생님 놀이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은 영어단어들이 적혀 있는 그림책이었는데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나는 꿀식이를 가리키며 피그으! 우산을 갖고 와서는 옴브뤨라~! 마당에 핀 맨드라미꽃을 보고는 플라워~!라고 혀를 굴리며 말하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보신 어르신들은 모래말 때기 막내 손지가 천재박사라고 했고 복식이 할아버지는 급기야 지훈이오빠야가 보던 두꺼운 표준전과도 갖다주셨다.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는데 그건 좀 오바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