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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몬 Dec 26. 2020

[영화 리뷰]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영화 리뷰

통쾌하고 또 통쾌하다!


저수지의 개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팬이 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이다. 이 분은 정말... 천재다.
펄프픽션에서도, 장고:분노의 추적자에서도, 킬빌에서도 그는 언제나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상큼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프랑스.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전부 이어지는 내용이다.




또 보자, 쇼사나!


제1장 오래전 옛날


그 이름도 유명한 유대인 사냥꾼이라는 별명의 한스 대령 등장. 숨어있는 유대인 가족을 찾기 위해 프랑스 어느 농민의 집에 들어온 그는 무력을 쓰지도 않고 온화한 미소만을 지어 오로지 언변으로만 집주인을 조금씩 압박하여 결국 마룻바닥 아래에 유대인 일가족 이웃을 숨겨준 사실을 알아낸다. 그때 한스 대령과 집주인의 대화가 너무 긴장되어 나도 모르게 숨조차 조심스레 쉬게 되더라. 물론 자기 발 밑바닥에 유대인 일가족이 숨어있는 걸 알게 되었으니 한스 대령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에게 총질을 지시한다.



너희 모두 나에게 개인적인 빚을 졌다. 그러니 각자 나치 100명의 머리 가죽을 벗겨와.


제2장 미친 개떼들


전환된 화면에는 미국 남부 사투리를 거하게 쓰는 연합군 소속의 알도 중위가 목청을 높여 병사들을 푸시한다.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정예요원 8인에게 “각자 나치의 머리가죽 100개를 가져와라!”라고 말이다. 그저 비유적으로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정말로 나치군을 습격한 이들이 칼로 머리가죽을 벗겨내는 것을 보고 난 속으로 외쳤다.

‘와, 이건 찐이다!’



전쟁 영웅이시군요. 무슨 일을 했죠?


제3장 파리에서 열린 독일의 밤


위의 1장에서 총알이 쏟아지는 마룻바닥에서 가까스로 살아서 도망친 쇼사나. 4년 후 그녀는 어째선지 다른 신분으로 작은 극장의 주인이 되어 있다.(미모도 갖추었네) 그런 그녀에게 자꾸만 작업을 거는 독일 군인. 알고 보니 그는 나치의 영웅이었던 것. 저격수로 3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나 뭐라나. 그걸로 영화까지 찍은 배우라나 뭐라나. 그걸 들은 쇼사나는 더 몸서리를 치며 상종을 안 한다. 그러자 괴벨스와 친분이 있는 이 300명 저격수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자기가 출연한 영화의 시사회를 그녀의 극장에서 상영하고자 하는데.



병사들과 놀 순 없지. 하지만 장교와 여배우가 게임하는 건 흠이 안 되겠지?


제4장 시네마 작전


억지로 본인의 극장에서 나치의 영화를 틀게 된 현실에 좌절하던 것도 잠시 그녀의 뇌리를 스쳐가는 아이디어 하나. 필름은 인화성이 강해 불을 붙이면 종이보다 3배는 빨리 탄다. 그러면 시사회 날에 이 안에 가득 차 있을 나치를 그걸로 불태우자.

한편 연합군에서는 극비리에 심어둔 이중간첩과 접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개인적으로 이 때 들키지 않으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의 심리전이 제일 인상깊었다.



점점 더 실력이 늘어나시는데요? 내 최고 걸작이야


제5장 거대한 얼굴의 복수


결국 작전이 틀어져버려 알도 중위가 직접 작전에 뛰어든다. 그와 조직원들은 300명 저격수의 영화 시사회가 있을 쇼사나의 극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하기 위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잠입하는데 하필 한스 대령과 맞닥뜨리게 된다. 들키지 않으려 애쓰지만 여러 언어에 능통한 그에게 알도 중위와 조직원들의 어눌한 발음이 귀에 꽂히고 그들은 나치에게 납치된다. 다소 허무하게 잡힌 알도 중위에게 한스 대령은 묘한 요구를 하게 되고 같은 시간 나치 관객 암살 계획을 성공하게 되는 쇼사나.




개인적으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우리나라 버전으로 리메이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고통을 받지 않았는가. 온몸에 총알을 맞아 벌집이 되어 죽어간 히틀러, 괴벨스, 그 외 추종자들처럼 우리도 일본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결말이더라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그려낸 방식처럼 일본의 전범자들에게 이제라도, 허구라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등장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좀 만들어주세요.

*여담이지만 찰진 번역 덕분에  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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