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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Jul 08. 2015

1914년, 마지막 여행비둘기의 죽음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828미터

BurjKhalifa in Dubai and Passenger Pigeon,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땅에 떨어진 새들을 먹어치우려고 둥지로 달려드는 돼지들이 서로 밟거나 부딪치며 내는 꽥꽥거리는 소리와 공포에 질린 비둘기들의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합쳐져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괴한 함성을 만들어냈는데, 그 소리는 최소한 1마일 밖에까지 들렸다.

- 도도의 노래, 데이비드 쾀멘, 이충호 옮김, 김영사, p.428.


여행비둘기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왕복하는 철새로 나그네비둘기라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지구 상에서 가장 많았던 새로 삼 일 밤낮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어떤 목격자는 그것을 비둘기 구름이라고 표현했다. 고기가 맛있고 깃털도 쓸모가 많아 식용과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포획이 이어졌다. 부유한 사람들은 여행비둘기 사냥을 즐거운 스포츠로 여겼다. 1명의 사냥꾼에 의해 3만 마리가 학살된 기록도 전해진다. 현지 인디언들은 무자비한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얼마 후에는 여행비둘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막대한 개체 수 때문에 멸종에 대한 우려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여행비둘기, 종이에 연필, 2014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


1890년대 중반부터 보호법이 제정되었지만 여행비둘기는 이미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1880년대 초에 수천만 마리가 한 무리를 이루던 여행비둘기는 1888년에는 겨우 175마리의 무리가 목격되었다. 개체 수가 급격히 줄면서 엄청난 규모로 떼 지어 살던 생존 리듬이 깨졌고 사망률이 번식률을 앞지르면서 종 전체가 붕괴되었다. 한때 50억 마리까지 추산되었던 여행비둘기는 인간의 남획으로 순식간에 멸종했다. 야생에서 발견된 마지막 여행비둘기는 1900년 3월 24일, 오하이오 주에서 총에 맞아 죽었고 1914년 9월 1일, 신시내티 동물원에 있던 마지막 암컷 한 마리가 죽으면서 완전히 멸종했다. 이 여행비둘기의 이름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이름을 딴 마사였고 나이는 29살이었다. 여행비둘기를 연구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학자들은 마사가 죽고 나서야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마사의 사체는 냉동되어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보내졌다.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났고 이제는 박물관의 표본과 동물원의 기념 동상으로만 존재한다. 야생 상태의 여행비둘기 사진은 없지만 동물원에 있던 마사의 사진과 그림을 여러 장 찾을 수 있었다. 여행비둘기는 검은 반점이 있는 회색 날개를 가졌고 머리는 청회색, 목 부위는 다양한 색채를 띠었으며 부리는 작고 가늘며 발은 붉은색이었다. 수컷의 몸길이는 39~41센티미터, 무게는 260~340그램 정도였다. 암컷은 그보다 약간 작았다.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게 가슴 근육이 발달했고 꽁지가 매우 길고 끝이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었다. 


모란앵무 노랑노랑 랑랑이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모란앵무 한 마리를 돌본 적이 있었다. 대형마트 애완동물 코너에서 팔던 새였는데 병들어 버려지게 된 것을 소동물 유통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나에게 가져왔다. 그 모란앵무는 머리 한쪽의 깃털이 쌀알 크기만큼 빠져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우울증인 것 같다고 했다. 앵무새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동물이 아니라서 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병원이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샛노란 녀석을 노랑노랑 랑랑이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새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랑랑이를 처음 만져 보고 함께 지낸 이후로 완전히 반해버렸다. 우울증인 것 같다는 지인의 말과 달리 랑랑이는 붙임성도 좋고 굉장히 명랑해 보였다. 내 머리와 어깨, 무릎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다가 품에 안겨 잠들곤 했고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종종거리고 다녔다. 사료도 잘 먹고 점점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새벽, 그림을 그리다가 랑랑이를 보러 갔더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녀석이 영영 날아가 버린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꺼내 달라고, 같이 놀자고 살랑살랑 새장 입구로 다가왔었는데 따뜻한 생명이 떠나고 차가운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전에는 새를 기르는 사람들이 “죽었다” 대신에 “낙조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횃대에 앉아 있거나 돌아다니던 랑랑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낙조落鳥라는 말이 얼마나 슬픈 말인지 알게 되었다. 새들은 죽기 전에는 바닥에 눕지 않는다. 앵무새는 종종 손 쓸 새도 없이 갑자기 낙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들었지만 랑랑이만은 제 수명을 채우고 가리라 막연히 기대했었다. 표현할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보드랍고 보송보송하던 노란 깃털이 생명이 떠나자 어설프게 박제된 새처럼 거칠고 부자연스러웠다. 랑랑이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새장에서만 살았다. 죽은 후에라도 숲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서 작업실 뒤편의 작은 숲 속 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생명이 떠난 후


랑랑이가 떠난 후에는 새들의 멸종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발에 이름표를 매달고 있는 새의 표본이나 박제된 새를 보면 랑랑이가 떠오른다. 샛노랗게 빛을 내며 살아 있을 때와 생명이 떠난 후 차갑고 뻣뻣하게 변한 모습이 어찌나 다른지 애처로운 랑랑이의 모습이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새뿐만 아니라 우리 곁의 모든 생명체가 마찬가지다. 죽음을 맞아 떠나면 다시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부드러운 깃털을 가졌던 여행비둘기를 거칠고 메마른 표본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슬픈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는 2010년에 준공되었고 지상 163층, 높이는 828미터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며 건축상도 다수 수상했다. 그러나 경이적인 높이의 초고층 빌딩에 얽힌 이야기는 건물만큼 멋있지 않다. 건설 기간에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조건에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를 동원하면서 노동문제가 불거졌다. 또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두바이는 아부다비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겨우 빌딩을 완공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빌딩의 이름이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이자 아부다비 통치자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의 이름을 따서 할리파의 탑이라는 뜻의 부르즈 할리파가 되었다. 원래 이름은 부르즈 두바이였다. 


잊지 않을게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동물을 좋아했으니 아마도 타고난 마음인 듯하다. 동물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도록 지음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2014년은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가 죽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비둘기 한 마리의 죽음은 그리 큰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 때문에 하나의 종이 멸종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미안한 일이다. 나는 여행비둘기 멸종 100주년을 맞아 전에 없이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사라져 가는 동물을 그림으로 기록하자 다짐했다. 생태문제와 동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었을 테지만 복잡한 세상살이만으로도 벅찬 현대인에게 100년 전 사라진 새에게 관심을 두기란 힘든 일이다. 모두가 같은 일에만 관심과 시간을 쏟는다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멸종되는 동물들에 무심하다고 누군가를 탓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소중한 동물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우리의 자연도 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부르즈 할리파를 지나서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는 동물원 안에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하늘 높이 날게 하고 싶었다. 소녀는 열기구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바라보고 있다. 몽골피에 형제가 인류 최초의 비행물체를 만든 220여 년 전에는 수많은 여행비둘기가 하늘을 마음껏 날고 있었을 것이다. 열기구는 속도도 느리고 효율성도 떨어지지만 인간이 가장 평화롭게 하늘을 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속에서 마지막 여행비둘기 마사는 열기구를 탄 소녀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멀리 보이는 부르즈 할리파를 지나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참조

『도도의 노래』, 데이비드 쾀멘, 이충호 옮김, 김영사(2012), p.428.

https://en.wikipedia.org/wiki/Passenger_pigeon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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