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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Aug 27. 2015

멸종 위기의 말레이 호랑이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451.9미터

Petronas Twin Towers and Malayan Tiger, watercolor on paper, 76 x 57cm, 2014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오늘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내 아이들, 내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엘리너 오스트롬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말레이호랑이는 원래 인도차이나호랑이로 분류되었으나 2004년, 유전자 분석 결과 상이성이 밝혀지면서 독립된 아종으로 인정되었다. 이름은 서식지인 말레이시아를 따랐고 학명은 호랑이 보호 운동가로 유명한 피터 잭슨의 이름을 따서 판테라 티그리스 잭소니로 명명되었다. 독립된 아종으로 인정된 지 10년이 지난 2015년, 국제자연보전연맹은 말레이호랑이의 멸종위기를 취약 단계에서 야생 절멸 직전인 위급 단계로 두 단계나 올렸다. 현재 야생 말레이호랑이는 5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밀렵과 밀매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말레이호랑이는 조만간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말레이호랑이, 종이에 연필, 2014


모피부터 뼈까지 남김없이 거래되다


호랑이는 말레이시아 국장과 경찰 및 여러 조직의 문장에 들어가 있고 국가대표 축구팀의 별칭이자 말레이시아인들의 용기와 힘을 상징하는 국가적 동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피부터 고기, 뼈까지 남김없이 거래되는 거대한 불법 내수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호랑이 가죽을 소유하는 것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고기와 뼈는 약재로 인기가 높다. 말레이호랑이의 서식지가 농경지나 농장으로 전환되면서 가축에 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런 경우 관할관청이나 성난 주민들이 말레이호랑이를 죽여 밀거래 시장에 넘긴다. 가난하고 척박한 지역의 주민들은 호랑이 밀도살과 거래로 이득을 얻는다. 


호랑이 우리에 들어갔던 기억


예전에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갔었다. 그곳의 동물원은 어떤지 궁금해서 친구와 찾아갔는데 놀랍게도 돈을 내면 20분 정도 호랑이 우리에 들어가서 직접 만져 볼 수 있다고 했다. 새끼 호랑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인지 큰 호랑이 한 마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싫다는 친구를 설득해 함께 큰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2명의 사육사가 호랑이 우리 앞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호랑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고 사육사가 함께 있으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와 친구는 사육사들의 뒤를 따라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서 나무 위에 편하게 엎드려 있는 호랑이 앞에 멈춰 섰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나의 눈높이에 호랑이의 눈이 있었다.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앞발은 사람 얼굴만 해 보였다. 그때까지도 무섭지 않았다. 잠시 후 호랑이가 꼬리를 빙글 돌리더니 내 얼굴을 살짝 쳤다. 사육사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완전히 공포에 질렸다. 호랑이가 앞발로 동물을 후려치면 앞발 크기만큼의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간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랑이 우리 안에 있는 4명이 화가 난 호랑이에게 찢기고 물려 죽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손이 덜덜 떨렸다. 사육사들은 이런 나를 보고 피식 웃고는 친구에게 호랑이를 만져 보겠느냐고 물었다. 들어가기 전에 겁을 내던 친구는 의외로 담담하게 아주 느린 동작으로 손을 내밀어 호랑이의 등을 살살 어루만졌다. 호랑이는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귀찮고 짜증스럽거나 그저 하품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난생처음 호랑이를 실제로 만져 본 친구는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사육사들은 지루하다는 듯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상황이 평온해 보였지만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달팽이처럼 느리게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는지 사육사 한 명이 다가와 나가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면서 호기심에 못 이겨 동물원의 호랑이를 괴롭히는 행위를 저지른 데다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알게 되어 부끄러웠다.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


호랑이는 번식기를 제외하면 평생 단독 생활을 한다. 암컷은 한배에 2~3마리의 새끼를 배고 4개월이 지나면 아주 작은 호랑이가 태어난다. 눈도 뜨지 못할 만큼 연약한 새끼는 전적으로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만 생후 1개월 만에 4배의 크기로 자라고 3~5년이 지나면 성숙한 호랑이가 된다. 호랑이의 크기나 털의 색깔은 지역이나 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추운 지방에 사는 호랑이가 더 크고 색도 옅은 편이다. 줄무늬는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다르며 먹이만 있다면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동물이다.

그토록 강인한 호랑이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20세기 후반에 아홉 아종의 호랑이 중에서 발리호랑이, 자바호랑이, 캐스피언호랑이까지 세 아종이 멸종했다. 남은 여섯 아종은 수마트라호랑이, 인도(벵골)호랑이, 아무르(시베리아)호랑이, 중국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그리고 말레이호랑이다. 호랑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무역에 관한 조약에 의해 국내외 거래가 전면 금지되어 있지만 밀렵과 밀매가 끈질기게 성행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0년간, 호랑이 서식지가 93퍼센트 이상 감소했고 야생 호랑이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호랑이 숫자는 약 5,000~7,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지구에서 가장 강하고 멋있는 동물 중의 하나인 호랑이도 언젠가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초고층 빌딩


그림에서 말레이호랑이와 소녀의 뒤로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보인다. 1998년에 준공된 지상 88층, 높이 451.9미터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2004년 타이베이 101이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며 쌍둥이 빌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19년에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보다 높은 KL118 타워가 쿠알라룸푸르에 들어설 예정이다. 지상 118층, 높이 644미터의 초고층 빌딩으로 최근 삼성물산이 수주했으며 프로젝트의 총 공사비는 약 9,500억 원이다. 최근 말레이시아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어 초고층 빌딩이 줄줄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개발은 환영할 일이지만 멸종위기의 말레이호랑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말레이호랑이와 함께 걷는 소녀처럼 자연과 공존하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멈춰야 한다


언제부턴가 경제 발전이 인류 최고의 가치와 목적이 된 듯하다. 경제 발전이 주는 이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척박하고 고된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잠시 멈춰 숨을 고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이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어떤 것은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인류도 잘살자는 목적 하나로 열심히 달려왔지만 언젠가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우리는 모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메마르고 암담한 곳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그만 속도를 줄이고 멈춰서야 한다. 이제 정말 그럴 때가 됐다. 



참조 


『그린 레프트』, 데렉 월 지음, 조유진 옮김, 이학사(2013), p.12.

http://www.arkive.org/tiger/panthera-tigris/

http://www.worldwildlife.org/species/malayan-tiger

http://www.iucnredlist.org/photos/2015


멸종동물, 멸종위기동물,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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